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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Nov 02. 2022

물러섬

<뜻대로 하세요>, 단편소설, 6화



경희가 지점을 옮겨 일을 해보라얘기을 때 나는 순순이 받아들였다. 그런 가능성을 마음 한 구석에 담아두었는데, 그녀의 제안이  안의 숨겨진 불씨에  불을 지폈다. 리더와의 갈등으로 지점을 옮기는 일은 더러 다. 회사는 개개인과 직접 계약을 , 개인사업자들 간에 팀으로 협업하며 상생할 수 있도록 추천인 제도를 운영했다. 추천인은 팀 리더 역할을 병행하며 팀원들의 자립을 돕는 만큼 수익의 일부를 제공받았다. 그리고 효율적인 개인사업자 관리 위해 계약 철회 후 재계약에 대한 3개월 제한 규정을 명시했다.


경희를 만나고 돌아와 마음이 분주했다. 먼저 남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남편은 흔쾌히 받아들이면서도 내가 다른 일을 하길 바랬다.

"진작에 그만뒀으면 좋았잖아. 거기서 버티는 에너지면 다른 일을 해도 그만큼 못 벌겠어? 이참에 아예 딴 일을 하는 건 어때? 전공 살려서 아이들 글쓰기 과외해도 되잖아."

"아이들 가르치려면 늦은 시간까지 수업해야 하는데, 자기가 매일 칼퇴근해서 애를 챙길 거야?"

남편이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애꿎은 TV 채널만 이리저리 돌렸다.  말이라도 집에서 아이 키우며 살림만 하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작은 방 책상 앞에 앉았다.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르고 화면이 켜지길 기다렸다.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가 후, 하고 내뱉었다.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주방으로 가서 서성거렸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고 머그잔에 커피믹스를 넣은 후 알갱이가 없어진 후에도 한참을 저었다.

'3개월 동안 수입이 없는데 잘 버틸 수 있을까?'

'제품 주문이 들어오면 고객들한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지?'

막상 결정해야 할 순간이 되자 머릿속이 복잡했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더 이상 미루지 말자고, 속엣말로 되뇌고는 책상 앞에 다시 앉았다. 컴퓨터 바탕화면의 회사 홈페이지 앱을 클릭했다. 온라인 쇼핑몰로 자리 잡은 후 고객 관리와 제품 주문 등 모든 것들이 홈페이지 안에서 이루어졌다. 메인 메뉴를 클릭하자 '사업자 코드 탈퇴’ 항목이 눈에 들어왔다. 마우스 왼쪽 버튼에 올려놓은 검지 손가락이 대기 상태에서 머뭇거리다가 딸깍, 버튼을 눌렀다. 마른침을 삼켰다. 다음 화면으로 넘어갔다.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본인 인증을 거치자 화면이 바뀌었다.

‘강미선 님, 탈퇴하시겠습니까?'

눈을 한번 길게 감았다 뜨고는 확인 버튼을 눌렀다.

'강미선 님 탈퇴가 완료되었습니다.'

끝이 났다. 온 몸에 힘이 빠졌다. 3년 반 남짓한 시간과 노력이 딸깍 소리와 함께 닫힌 화면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나는 이제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후련하면서 허전하고 통쾌하면서도 외로웠다. 그런 상태로 3월의 마지막 주를 보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연체' 관련 검색어로 올라오는 기사들을 읽었다. 두세 시간이 흘렀다. 마지막으로 ‘신용회복위원회'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과중채무자 신용회복 지원제도'라는 큰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곧바로 상담 약속을 잡고 상담소를 찾아갔다. 50대로 보이는 머리가 희끗한 남자분이 친절하게 상담해 주었다.

"강미선 씨는 신청 대상에 부합하네요. 제가 체크해드리는 대로 서류 준비해서 접수하시면 되겠어요. 그동안 심리적으로 힘드셨을 텐데, 좀 더 빨리 신청하지 그러셨어요?"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이런 제도가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상황에 주눅 들고 부끄러웠마음이 상담자의  따뜻한 목소리에 녹아내렸다.

다음 날 서류를 준비해서 오후 늦게 상담소에 접수했다. 승인이 되면 한 달 후부터 매달 40만 원씩 5년 동안 상환하는 조건이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숨 가쁘게 보낸 이틀이었다.


긴 터널 하나를 벗어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제야 나는 경희가 소개해 준 분당지역 지점장에게 연락을 했다. 둘째 주 월요일 2시에 미금역 인근 커피숍에서 만났다. 커피숍에 들어서자, 민트 계열 꽃무늬 원피스에 흰 쟈켓을 걸친 중년 여성이 창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먼발치에서 본 적이 있던 터라, 한눈에 알아보고 성큼성큼 다가가 인사했다. 그녀가 활짝 웃으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악수를 청하며 잡은 그녀의 손이 따뜻했다.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았죠?”

“…”

“센터에 들렀다가 경희 씨한테 얘기 들었어요. 미선 씨 만나서 직접 이야기 나누라고 긴 얘긴 안 하더라고요. 이런 일 하다 보면 미선 씨처럼 상처받는 경우가 종종 생겨. 도 미선 씨랑  비슷한 경험을 해본  있어서 어떤 마음일 이해해요.”

"지점장님도 저랑 비슷한 경험이 있으셨어요?"

내가 놀라서 물었다.

"그럼요. 이쪽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별의별 일 다 생기더라고요. 사회생활 짬밥이 있는데 평탄하기만 했겠어요? 사람 관계도 어렵고 인생 참 뜻대로 안 돼요. 그죠?..."

처음 만나는 자리였지만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이어가 친근감을 느꼈다. 한참 만에 나는 고민하고 있던 부분을 얘기했다. 

"저 부탁드릴 게 있어요. 제가 3개월 동안 개인사업자 코드가 없잖아요. 그동안에 고객들이  주문하는 제품을 대신 구매해주셨으면 해요."

러자 지점장이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그야 당연하죠. 그렇잖아도 그 부분에 대해 얘기하려고 했어요. 3개월 동안 공백이 생기면 돈이 안되잖아. 기존에 하던 대로 일을 계속하면 돼요. 미선 씨 코드는 없지내가 매출이 일어나는 만큼 계산해서 따로 챙겨줄게요."

"그럼 제가 너무 죄송해서, 그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되는데요."

"부담 갖 않아도 돼요. 이런 일이 종종 있어서, 우리 지점에서는 이렇게 비공식적으로 챙겨주고 있어요."


일련의  일들이 기쁘면서도 실감 나지 않았다. 내심 두렵고 막막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한 발짝 물러서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인생은 정말 아이러니했다. 온몸에 힘을 주고 허들을 넘기 위해 이를 악물었던 순간들은 무게에 짓눌려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반면에 기대 없이 선택했던 일이 뜻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잡으려 하면 멀어지고 물러서면 다가왔다.




단편소설 1화 어쩌다 사장 
단편소설 2화 사장의 옷을 입어야지
단편소설 3화 욕망의 덫에 빠지다
단편소설 4화 날개 잃은 추락
단편소설 5화 선택
● 단편소설 6화 물러섬
단편소설 7화 용기
 단편소설 8화 여백 (마지막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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