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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Nov 09. 2022

용기

<뜻대로 하세요>, 단편소설, 7화



마침내 나를 소외시킨 사람들 속에서 벗어났. 안도하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 미처 생각지 못했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어떤 사람들은 굴곡 없이 쉽게 가는 인생길을 나는 왜 이렇게 힘겹게 돌아온 걸까. 나는 왜 좀 더 일찍 그곳을 박차고 나오지 못했을까. 이 시간이 주는 의미는 뭘까.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3년 반이라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우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뒤로한 채 앞으로 나아가는 데는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다.


산책로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선 벚꽃나무 아래로 꽃잎이 휘날렸다. 지점장을 만나고 이틀 뒤에 경희를 만났다. 공원 산책로를 걸었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며 경희에게 말했다.

"요즘 많은 생각이 들어. 드라마 속에 나올 법한 나한테 생긴 거잖아. 믿었던 사람한테 배신당하고  될 거라 기대했는데 빚만 고. 그런 일들나랑 무관하다 생각했거든. 근데 막상 겪어 보니까 살아가 일이 만만치 않게 느껴지더라. 그러면서도 한숨 돌리고 나니까, 사람 마음 참 간사하지? 장애물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드니까, 이제부터 잘 될 거야, 라는 근자감이 드는 거야."

"오~ 근자감 좋은데?"

경희가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경희를 따라 웃으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가까운 벤치에 먼저 앉았다. 경희가 따라 앉았다. 클러치 백에서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눈가에 젖은 눈물을 닦고 손수건을 쥔 채로 말했다.

"경희야, 고마워. 네 덕분에 한시름 놓았어."

경희가 내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잘 됐다니 다행이야. 내가 특별히 애쓴 것도 없는데 뭘. 서울 올라와서 네 얼굴 한번 봐야겠다 생각하던 터에 만났고. 그날 네 얼굴 표정이 밝지 않아서 물어본 거야. 네 얘기 듣다 보니, 우리 센터에 가끔 들리던 센터장 친구가 너랑 같은 회사라는 게 떠올랐고. 나야 너 하는 일은 잘 모르니까. 단순하게 그래도 되는 거 아닐까, 생각한 걸 얘기해본 거야. 선택은 미선이 네가 한 거지."

"실은  전화받았을 때 내 마음속에 작은 변화가 생기고 있었어. 이제 더 이상 머물러있지 말자고 마음먹던 때였어. 그런데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더라. 1년 넘게 혼자 생각하고 견디고 버티는 일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거야. 회사에서 소외당하고 있고 빚 때문에 힘든 상황이라는 걸 누구한테도 드러내 보이고 싶지 않았거든.”

"너도 참 무던하다. 나 같음 못 참았을 거야. 그 선배라는 여자하고 한 판 붙었을 거야. 같이 해보자고 얘기해놓고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경희의 목소리가 커지자 지나가던 할머니가 힐끗 쳐다봤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경희도 따라 웃었다. 할머니가 멀어지자 나는 말을 이어갔다.

그즈음에  전화받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수화기 너머의 네 목소리가 나를 끌어주는 것 같았어. 우연이었든 필연이었든, 그날 네가 내 얘길 들어주고 다른 지점으로 옮기면 안 되는 거냐고 물어봐 준 게 전환점이 되었어."

"너한테 전환점이 되었다니 정말 다행이야."


경희가 잠시 뜸을 들인 후 말을 이었다.

"사람 인연이 참 신기하지? 너를 소개받고 처음 만날 때만 해도 2년 넘게 만남을 이어갈 줄 몰랐어. 나도 실은 너한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어."

"네가 나한테?"

나는 경희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경희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너 소개받고 처음 만났을 때는 제품 몇 가지만 설명 듣고 홈페이지에서 혼자 구매하려고 했어. 그때 남편이랑 시댁 문제로 신경 쓸 일이 많아서 두통이 좀 있었거든. 어떤 비타민을 먹으면 좋을 모르니까  만나서 추천받고 싶은데, 만나면 이것저것 권할까 봐 부담스러운 거야. 근데 널 만나고 마음이 바뀐 거지."

"그런 생각하는 줄 전혀 몰랐어."

경희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게 재작년 10월이었지?"

"응. 그럴 거야."

"그때는 내 마음이 좀 힘들 때였거든. 지금 사는 집, 시댁에서 준 거잖아. 정말 감사하지. 왜 모르겠니. 근데 그게 족쇄더라. 수시로 호출하셔. 토요일마다 가는데도 교회 가는 거 뻔히 알면서 일요일에 또 오라고 하셔. 그 일로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네가 얘기도 잘 들어주고 맞장구도 쳐주고 너무 좋았어."

경희가 내 손에 깍지를 끼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지방에서 대학 졸업하고 올라와서 일찍 결혼했잖니. 외동딸인 데다 가까이 사는 친구도 없고. 심리 상담하면서 실제로 남의 얘기만 들어주지, 정작 내 얘긴 편하게 터놓을 사람이 없는 거야. 너랑은 가족 얘기부터 종교 얘기까지 공통 화제가 많았잖아. 네가 결혼 전에 교회 다녔다는 얘기 듣고 너무 좋았어."

"맞아. 우리 둘이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몰랐지."

내가 맞장구를 치며 웃었다. 그러고는 일어나서 다시 걸었다. 경희가 따뜻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미선아, 지나간 일들은 털어버리고 새로운 곳에서 잘 해 봐. 내가 응원할게."

"그래. 고마워. 용기 내볼게. 지금 모든  불확실해 보이지만,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어제와 다른 오늘이 펼쳐질 거라고 믿어."

우리는 맞잡은 손을 흔들며 산책로를 벗어났다.


서른일곱 봄, 나를 가로막는 장애물에서 벗어 작은 희열감을 맛보았다. 앞으로 나는 얼마나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할까. 두려움과 근자감이 뒤섞인, 수많은 의혹들이 질문에 휩싸여 내 곁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 채로 내버려 두었다. 예측하고 계획한들 부질없는 일이었다. 알 수 없는 내일을 걱정하기보다는 용기 내어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단편소설 1화 어쩌다 사장 
단편소설 2화 사장의 옷을 입어야지
단편소설 3화 욕망의 덫에 빠지다
단편소설 4화 날개 잃은 추락
단편소설 5화 선택
단편소설 6화 물러섬
● 단편소설 7화 용기
단편소설 8화 여백 (마지막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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