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돌의 책 글 여행 Oct 05. 2022

사장의 옷을 입어야지

<뜻대로 하세요>, 단편소설, 2화



그렇게 운명이 준비해  기회라 믿었다. 차선책이 없었다. 내가 만족할 만한 회사에서 경단녀뽑아줄 리 없었다. 현실에 대한 사태 파악이 되어가고 있을 즈음, 선배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선배는 결혼 전 함께 근무했던 회사에서 최연소 마케팅 팀장이 될 만큼 실력이 출중했다. 3개월 열애 끝에 퇴사했지만 그 후에도 오랫동안 여직원들 사이에 롤모델로 회자됐다. 영국에서 가정을 꾸린 후, 가끔 이메일로 안부를 전해오던 선배 국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들어왔.


더위가 한풀 꺾인 8월 말 선배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5년 만의 만남이었다. 다음 약속이 있다며 잠시 안부를 나눈 후, 브로셔를 꺼냈다. 영국에 본사가 있는 다국적 기업 전경과 생산라인, 기초화장품, 비타민 제품 사진이 실려 있었다. 선배 남편이 연구원으로 재직했던 회사 했다. 회사에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개개인이 독립된 자영사업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일이었다. 3년 안에 연봉 1억에 도전한다는 선배의 열띤 목소리와 눈빛이 낯설었다. 그러면서도 두려움과 기대감에 섞인 감정이 요동쳤다. 제안을 받아들이든 거절하든 선배는 잘 해낼 것이 분명했다.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보다 선택하지 않았을 때의 막막함크게 다가왔다. 남편은 선배에 대한 얘기를 들어왔던 터라 은근히 잘해보길 기대하는 눈치였다.


고민 끝에 선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일주일 후부터  여의도에 있는 본사에서 교육을 받기로 했다. 아이는 동네 어린이집에 시간을 늘려가며 적응시켰. 주말을 보내고 교육을 받으러 가는  날이 되자,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 떼를 썼다. 방바닥에 드러누워 발버둥 치며 울었.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아이를 달래느라 기운 뺐다. 어린이집에 겨우 맡기고 버스 석에 앉아 숨을 돌렸다. 구색을 갖춰 입고 나온 흰 블라우스에 아이의 눈물자국이 얼룩져  검정 바지는 구깃구깃했다.


여의도역에서 내리자 우뚝 솟은 고층 빌딩시야를 가로막으며 시선을 압도했다. C사의  1층 로비에서 선배를 만났다. 회색 쟈켓과 검정 슬랙스에 파란색 힐을 신은 선배의 날씬한 이 사람들 속에서 돋보였다. 선배가 내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이른 아침부터 오느라 애썼다."

선배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5층에서 내렸다. 왼쪽은 본사 사무실이고 오른쪽은 지점 사무실이라고 알려주었다. 본사 사무실 안에 있는 교육으로 들어가 앞에서 세 번째 자리에 앉았다. 캐주얼 정장에 색조 화장을 진하게 한 여자들이 선배를 보고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괜스레 주눅 들고 움츠러들었다. 마침 교육을 시작한다는 강사의 진행 멘트가 들리자, 책상 위 안내 책자로 시선을 떨구었다.


"... 회사는 여러분에게 최상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드릴 것입니다. 여러분을 리쿠르팅한 분들의 도움을 받아 고객을 만들고 직접 판매를 통해 개인사업자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교육이 끝나고 인근 식당에서 선배와 점심 식사를 다. 일주일에 세 번, 본사와 지점 교육을 듣고, 두 번은 자신의 그룹원들과 함께 아이템 공부를 하자고 했다. 수첩에 일정을 메모하고 일어서려는데 선배가 나를 붙들었다.

"혹시 한 시간 정도 여유 있니? 길 건너 백화점에 쇼핑하러 갈 건데, 같이 갈래? 요즘  세일 기간이잖아." 

"아, 그래요, 선배." 

로비에서 얼룩진  블라우스를 흘낏 쳐다보던 선배의 시선이 떠올랐다. 백화점 입구로 들어가며 다음 달 카드 비용을 걱정하는 자신이 서글펐다. 선배는 지하 1층 세일 매장으 이끌더니 이 옷 저 옷 골라주었다. 가격표에 자꾸만 눈길다. 세일 가격인데도 골라놓은  가격이 상당했다.  벌을 뺄까 말까 망설이다가 카드를 내밀었다. 6개월 할부로 결제해달라고 직원에게 말했다. 입구에서 기다리던 선배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으로 올라왔다. 선배는 3층 브랜드 매장에 사려고 봐 둔 옷이 있다며 먼저 들어라고 했다.


양손에 쇼핑백을 들고 백화점 회전문을 돌아 나왔다. 뒤돌아보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선배의 모습이 보이다가 이내 사라졌다. 여전히 진취적이고 당당한 선배가 부러웠다. 발걸음을 옮기며 잠시 잊었걱정거리가 살아났다. 아이는 잘 놀고 있을까. 두벌의 옷과 카드 명세서를 보면 남편이 뭐라고 할까. 아침저녁으로 역할 옷을 바꿔 입으며 잘 해낼 수 있을까. 


고개를 저으며 복잡한 생각을 털어냈다.

'이제, 사장의 옷을 입어야지. 몸도, 마음도.'

속엣말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뚜벅뚜벅 걸어갔다.  있던 욕망이 꿈틀대며 깨어나고 있었다.




단편소설 1화 어쩌다 사장 
● 단편소설 2화 사장의 옷을 입어야지
단편소설 3화 욕망의 덫에 빠지다
단편소설 4화 날개 잃은 추락
단편소설 5화 선택
단편소설 6화 물러섬
단편소설 7화 용기
단편소설 8화 여백 (마지막 회)



매거진의 이전글 #2. 믿음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