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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Sep 28. 2022

어쩌다 사장

<뜻대로 하세요>, 단편소설 8부작, 1화



딩동, 벨소리가 들려왔다. 마스크를 재빨리 쓰고 현관문을 열었다. 30분 전에 통화했부동산 사장님이 손님을 모시고 들어왔다.

재택근무하시나 봐요?”

그녀가 손님을 안방으로 안내한 후 거실 테이블 앞에 서 있는 내게 물었다. 복합기에서 노트북 화면의  PPT 자료가 드드득, 소리를 내며 받침대 위 내려앉았다.

“아, 네에…

나는 웃으며 말끝을 흐렸다. 두 번째 방문한 그녀의 미소에서 친근감이 느껴졌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던진 ‘재택근무'라는 단어가   마음을 흔들었다.


노트북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잡동사니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비칠까. 휴대폰 거치대, 돋보기안경, 이어폰, 작은 수첩과 문구류, , 프린터가 노트북을 에워싸고 있다. 테이블 옆으로 여섯 개의 의자가 흰색, 갈색으로 짝을 이루었다. 나는 벽을 등지고 노트북을 바라보는   흰색 의자에 즐겨 앉았다. 옆에 놓인 갈색 의자 일곱 권의 책을 층층이 쌓아 올려놓았다. 나머지 의자는 본래의 목적을 상실했다. 6년 전에 이사 올 때만 해도 소파 대신 6인용 테이블을 거실 중앙에 배치하며 팀 스터디할 생각이었다.


부동산 사장님이 자신의 집처럼 손님에게 다른 방들보여주었다. 나는 테이블 너머 거실에 놓인 물건들을  바라보며, 나에 깃든 생각 붙들었다. 거실 창가와 벽면 안쪽에 놓인 안마의자, 공기청정기, TV, 자전거, 5단 책장이 기역자를 그리며 시선을 이끌었다. 사다리 모양의 어른 키높이 책장엔 빼곡히 꽂힌 책들과 C브랜드 생활용품절반씩 자리를 차지했. 시선이 머무는 곳곳추억이 깃들었다.


“잘 봤습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상념에 빠져있는 나를 불러들였. 손님을 뒤따르던 부동산 사장님이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내게 물었다.

“선생님이신가 봐요?”

“아, 네에…”

여전히 웃으며 말끝을 흐렸다. 나는 지금 정체성 혼란에 빠져 있다. 누군가는 선생님이라 부르누군가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정작 내 마음은 어디에속해 있지 않았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기억의 조각들을 불러 모아 앞으로 항해할 인생의 항로를 가늠보았다. 유년시절을 지나 무탈하게 사춘기를 보내 인생의 1막이 평온하게 흘러갔다. 성인이 되어 공부를 마치 직장생활을 했던 인생의 2막도 그만하면 흡족스러웠다. 인생의 3막에 이르자, 기억의 조각들이 이어지지 않은 채 멈추었다. 인생의 변곡점으로 돌아가 스스로를 직면해야 할 때가  것일까.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곳에서 다시 시작해, 라는.  






나는 서른이 되던 해 봄결혼했다. 직장 생활에 지쳐가고 있을 즈음이라 결혼과 육아를 핑계 삼아 전업주부가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동갑내기인 남편은 직장생활 3년 차였지만 모아둔 돈이 없었다.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께 생활비를 보내드리고 학자금을 갚았다. 방 두 칸짜리 빌라 전세보증금과 결혼식 비용을 모두 대출로 충당해 가정을 꾸렸다. 박봉의 급여로  돌이 되어가는 아들을 키우며 살던 어느 날이었다.

거울 속에서 무표정한 얼굴을 한 내가 거울 밖의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장면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기대했던 인생의 항로를 벗어나고 있었다. 뜻대로 나아가지 않는 게 인생일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통증이 일며 온몸을 세차게 흔들었다.


뭐든 시작해야 했다. 거울 속 무채색의 얼굴을  걷어내야 . 남자의 아내, 아들의 엄마라는 배역에 그칠 수 없었다. 그런 마음이 커져가고 있 즈음이었다. 결혼 전에 다녔던 직장 선배가 같이 일을 해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한 번도 꿈꿔보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마치 운명이 준비해  기회로 받아들였다. 서른세 살이 되던 해, 어쩌다 사장이 되었다. 인생의 새로운 무대의 막이 열렸다.




● 단편소설 1화 어쩌다 사장
단편소설 2화 사장의 옷을 입어야지
단편소설 3화 욕망의 덫에 빠지다
단편소설 4화 날개 잃은 추락
단편소설 5화 선택
단편소설 6화 물러섬
단편소설 7화 용기
단편소설 8화 여백 (마지막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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