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돌의 책 글 여행 Oct 12. 2022

욕망의 덫에 빠지다

<뜻대로 하세요>, 단편소설, 3화



인생의 방향이 뜻대로 나아가지 않을 때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인생결혼, 육아, 경단녀, 빈곤이라는 단어에 휘감기던 순간이 있었다. 충족되지 않은 무엇이 욕망이라는 단어로 이어졌. 돈, 부자, 성공 거리감이 느껴지던  단어들이 마음을 흔들다. 마침  앞에 있던 사장의 옷을 입었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결핍에서 오는 내 욕망을 채워줄 수만 있다면.


본사 교육을 마치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평소에 챙겨 먹지 않던 비타민을 먹고, 얼굴에 바르지 않던 화장품을 골고루 구매해서 써보았다. 가족, 친구, 지인들에게 연락해 방문 날짜를 잡고 집으로 찾아갔다. 비타민과 화장품 몇 가지를 선심 쓰듯 사주며 '아직 애가 어린데', '세일즈 오래 못하던데' 라며 한 마디씩을 덧붙였다. 그마저도 3개월이 지나자 갈 곳이 줄어들었다. 소개받거나 새로운 고객을 만들지 않으면 그만두거나 성과 없이 머무르는 시기였다. 동네에서 아이 엄마들을 사귀고 가게에 브로셔와 샘플을 돌려 보라는 선배의 조언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채 한 달 한 달을 미련스럽게 버텼다. 선배는 매달 1일이 되면 자신이 리쿠르팅한 팀원 두세 명과 함께 전월 실적 우수자로 축하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어느 날 선배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나를 따로 불러냈다.

"요즘 어떻게 하고 있어?"

"약속도 안 잡히고 갈 곳이 없어 고민이에요."

답답한 마음에 선배에게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가만히 듣고 있던 선배가 냉정한 어투로 말했다.

"어떻게 매출을 올려야 하는지  알잖아.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고. 그렇게 일하면 원비랑 활동 경비도 안 나올 텐데 그러다 그만둘 거야?"

"..."

잠시 침묵이 감도는 사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심호흡을 하고 나는 힘주어 말했다.

"어떻게든 극복해 볼게요."


그날 이후 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비용 때문에 미뤄오던 스킨케어와 메이크업 수업 받았다. 그동안 하지 않았던 아이섀도와 볼터치를  립스틱을 짙게 발랐다. 블라우스와 바지 정장으로 깔끔하 갖춰 입고 사람들을 만났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에 왠지 모를 자신감이 솟구쳤다. 줄곧 만나왔던 가족, 친구, 지인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일이 잘돼나 봐', '오래 하니까 되는구나'라며, 회사와 제품 정보에 귀 기울였다. 내가 입고 옷, 스카프, 액세서리, 색조 화장에도 관심을 보였다. 다음에 또 들러달며 제품을 주문하고 소개를 해주었다. 자신감이 생기자, 아파트 단지와 어린이집, 아이랑 가는 병원, 아동복 가게 등 곳곳에서 고객을 늘려갔다.


뒤늦게 성과를 내며 매출을 올렸다. 선배와 대화를 나누고 3개월 만이었다. 100명가량 되는 지점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며 축하를 받았다. 하지만 보이는 이미지에 신경을 쓰다 보니 씀씀이가 커졌다. 오래된 경차를 폐차하고 흰색 싼타페 차량을 장기할부로 구매했다. 매출이 계속 상위권을 유지할 거라고 생각했다. 3개월 이상 높은 실적을 유지하 배가 자신의 에이스팀 모임에 초대했다.


마침 영국 본사에서 창립 10주년 프로모션을 발표했다. 일 년 동안 우수실적을 달성한 팀에게 56본사 초청 티켓을 시상하, 개인 실적 우수자에게 연말 성과급을 두 배로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에이스팀도 팀 프로모션에 도전했다. 선배는 매출 볼륨이 가장 작은 나를 불러 부담이 면 빠져도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용기 내어 함께  도전하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다독였다. 선배의 팀 구성에 이미 내가 들어가 있다는 걸 눈치로 알아채고 있었다. 팀에 민폐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뒤늦게 합류한 에이스팀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은, 인정에 대한 욕구가 충돌했다. 무엇보다도 연말 성과급을 받아서 밀린 할부를 한꺼번에 정리하고 싶었다. 그렇게 욕망이 결핍의 페달을 밟고 걸음 앞서 달려갔다.


일 년 간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팀과 개인의 목표 달성을  집중했다. 늦은 저녁, 주말까지 시간을 활용했다. 남편과 친정 엄마에게 아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턱걸이로 어렵게 목표를 채워가6개월 반환점을 돌았다. 절반의 성공을 자축하며 잠시 안도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7개월째에 이르러 감당해야 할 몫의 매출을 달성하지 못했다. 감기에 걸린 아이 증상이 심해져 폐렴으로 한 달 가까이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 후에도 병원 가는 일이 잦아지면서 일의 리듬이 깨졌다. 


두 달째 실적이 저조하, 선배가 전화를 걸어 답답함을 토로했다.

"혼자만 아이 키우는 거 아니잖아. 속사정 없는 사람이 어딨니. 다들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이런 상황이 생길 까 봐 부담되면 빠져도 된다고  얘기한 건데, 네가 선택한 거잖아."

"미안해요 선배. 애가 아픈 후부터 불안 증세를 보여서 엄마한테도 맡길 수가 없었어요. 어떻게든 일할 상황을 만들어볼게요."

선배에게 변명하듯 늘어놓았다.


남은 4개월 동안 마음을 다잡고 집중하려 애썼다. 친정 엄마가 수시로 집에 와서 아이를 돌봐주었다. 하지만 마음이 예전 같지 않았다. 조급하고 불안했다. 선뜻 구매로 연결되지 않았다. 팀 목표 달성으로 얻게 될 보상이 무산될 위기에 놓이자, 5인 1각으로 함께 달리던 사람들의 시선이 냉랭해졌다. 선배는 어떤 입장도 취하지 않은 채 방관했다. 무언의 압박으로 다가왔다. 직장에서 함께 일하며 쌓아 올린 믿음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얄팍한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결국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매출의 부족분을 재고 부담으 떠안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리하게 제품을 판매한 곳에서 반품이 이어졌다. 이미 완성된 팀 목표 때문에 반품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막막했다. 왜, 이런 상황에 놓여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욕망의 덫에 빠진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단편소설 1화 어쩌다 사장 
단편소설 2화 사장의 옷을 입어야지
단편소설 3화 욕망의 덫에 빠지다
● 단편소설 4화 날개 잃은 추락
단편소설 5화 선택
단편소설 6화 물러섬
단편소설 7화 용기
단편소설 8화 여백 (마지막 회)


매거진의 이전글 #3. 부모에 대하여 (박수홍 아버지 폭행사건을 보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