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웅 지음
오월의 봄 펴냄
2018.03.09 초판.
북한에 굶어죽는 사람이 많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오히려 한국사회를 걱정했다. 공산주의와 체재경쟁이라도 해야 이 사회에서 자본주의가 폭주하는 것을 제어할텐데, 북한이 저렇게 망해버리면 그 역할을 무엇이 대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승만때 '이익균점권'같은 공산주의적 제도도입이 논의되거나 박정희때 북한의 무상의료에 자극받아 만든 의료보험제도가 지금 한국의 자랑거리중 하나가 된 것을 보면 말이다. '우리가 더 힘이 쎈 나라다'보다는 '우리가 더 살기좋은 나라다'라면서 경쟁하는 쪽이 국민들한텐 이득이지 않은가. 힘쎈 사람이 행복해하는 경우는 싸움질 하면서 힘자랑 할때뿐인거 같은데.
나의 세대는 어릴 때 북한의 전성기와 그 영향을 받은 한국에서의 활발한 학생운동을 접해왔고, 조금 더 자라서는 한국이 막 세계무대에 데뷔하는 것을 지켜봤으며, 그 후 북한의 처절한 몰락과 한국의 전성기를 향유한 경험이 있는 세대이다. 저물어가기 시작하던 학생운동에 투신하던 부류도 있었고 X세대로 통용되던 자본주의의 첨병 역할을 한 부류가 동시에 있었다. 물론 개중엔 나같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서 포스트모더니즘 운운하던 회색분자도 유행하던 때였다. 이 책의 저자도 나이로 볼 때 딱 그런 세대에 속한다. 나랑 나이차가 얼마 나지 않는다.
나는 기본적으로 윗세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너무 이분법적이고 흑백논리에 매몰된 경향성이 짙다. 아랫세대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바가 없다. 어려서부터 학원에 끌려다니고 경쟁에 익숙하며 최악의 취업난을 겪고 있는, 공무원이 꿈인 세대, 라는 정도 밖에. 내가 최근에 관심을 두게 된 북한이라는 주제에 관해서는 특히나 이 두세대에게서는 기댈 바가 별로 없었다. 윗세대에게 북한은 주로 저주와 증오 박멸의 대상이요, 아랫세대에게 북한은 주로 경멸과 조롱의 대상일 뿐이었다. 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나에게 북한을 알려줄 것을 찾고 있었을 때 친구의 추천으로 이 책의 첫장을 보았고 [들어가는 말] 맨 첫머리에 [필자가 대학에 입학한 1992년은..]이란 구절을 보자마자 주저없이 책을 구입하게 된 것은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감이 들어서였기 때문이다. 과연 이 책은 나의 그런 기대를 조금도 저버리지 않았다.
내가 북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최근 두세달 사이이다. 태영호 공사나 주성하 기자가 쓴 책도 사보고 논문도 몇편 다운받아보고 했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인 것은 탈북자들의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물론 이만갑이나 모란봉클럽같은 탈북미녀 운운하는 방송은 아예 쳐다도 보지 않았는데 이념의 고상함을 추구하는 공산주의와 거기서 탈출한 사람들과 천박한 자본주의 성상품화가 만나면서 만들어내는 기괴하기 짝이없는 선정성에 혐오감만 들었기 때문이다. 탈북민들이 유튜브 방송에서 하는 말은 대부분 '한국천국 북한지옥'이었는데 물론 북한이 싫어서 떠나온 분들이기도 하거니와 남한의 이분법적 사회분위기 때문에라도 북한을 긍정하는 말 한마디 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것에 대해 뭐라 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단지 나는 그들의 말속에서 행간을 읽으려 애를 썼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 내가 찾고자하는 북한의 진짜모습을 스케치 해보려고 했다. 일정부분 성과는 있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많은 의문들은 남아 있었다. 게다가 탈북자는 어쨋건간에 북한을 떠나온 사람들이다. 그 수백배 수천배에 달하는 사람이 여전히 북한에 남아있고 그 체재는 여전히 견고해 보인다. 극우인사나 탈북자들의 말을 들으면 골백번 망해고도 남을 법한데.
이 책은 그점에서 많은 답안들을 나에게 제시했다. 나는 북한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이다. 하긴 평생 살면서 국민학교때 반공교육이나 미디어로만 북한을 접해온 것이 전부였기에 당연한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비로소 북한사람들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령 그들에게 '조국'은 나의 '조국'과 어떻게 다른 것인지등. 물론 이 책을 통해 바라본 북한이 북한의 진짜모습과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국도 경제대국이기도 하고 헬조선이기도 하고 자살률 1위의 국가이기도 하거니와 대단한 민주주의적 성취를 한 나라이기도 하다. 북한도 역시 보는 입장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나라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시야이다. 그 시야를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이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부터 시작해서 북한 건국과정과 전쟁,, 김일성유일체계 그리고 이후의 세습및 고난의행군등을 거치면서 북한주민들을 어떻게 쇄뇌시키고 그에 따라 북한 주민들의 의식이 어떤식으로 형성되어 가는지를 사회주의 민족주의 유교사상 해체주의등의 관점으로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친북적 성향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북한의 무상시스템이 북한정권의 목적을 위해 어떤식으로 작동하는 지를 까발리는 반북적(?) 성향에 더 가깝다. 하긴 뭐 지금의 북한의 한심한 모습을 보면, 정상적인 사람으로써 북한을 좋게 볼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그러니까 그냥 정직한 책이라는 것이다. 백발이 성성한데 군복입고 다니는 어르신들이 김일성이 만주에서의 항일투쟁이나 북한의 한때 우수한 의료체계를 서술한 부분을 보고서 종북이니 빨갱이니 길길이 날뛸 여지도 있겠지만, 내가 몇달동안 공부하면서 어렴풋이 스케치한 북한이라는 나라의 모습과 별로 다른 부분은 없었다. 이 책을 통해 그 어렴풋한 북한 스케치에 데생을 입힐 수 있었다. 정밀묘사는 혹 통일되면 그때가서 하는 걸로.
PS.
고향을 간다는 말은 보통 서울이나 도시를 떠나 지방이나 시골로 가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나는 고향을 찾아 서울로 간다. 왜냐하면 서울이 내 고향이고, 직장과 결혼때문에 서울 인근 도시에 터를 잡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살다가 힘이 들거나 가끔 센치멘탈 해지면 나는 어릴때 뛰놀던 동네나 다니던 대학의 교정을 찾아가곤 한다. 그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질 수 있다.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고향이 있기에 나는 이 땅을 사랑하고 이 나라를 사랑한다.
통일이 되든 안되든 나는 별로 관심이 없다. 물론 되면 더 좋겠지만.
북한주민들의 인권이 바닥이든 아니든 내가 그것을 위해 할 수 있는게 없다. 아니, 사실 할 마음도 별로 없다.
김정은이 핵미사일을 쏘든 말든 금강산의 절경이 아름답든 말든 백두산이 화산폭발하든 말든 이설주의 치마가 섹시하든 말든 다 나에겐 따분한 소재일뿐이다.
그러나 딱 한가지 남북한 문제에 대해 바라는 것은 있다.
탈북민들이 고향을 자유롭게 다녀올 수 있는 것. 그냥 어떤 식으로라든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고향을 사랑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도 고향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에겐 통일 북한인권 북핵등은 그 다음 문제이다. 탈북민들의 방송을 보면서 줄곧 해온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