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케이팝이라 부르는 한국 대중가요 최근 트렌트의 노래들 중 내가 즐겨 듣는 곡은 블랙핑크의 노래들이다. 그들의 데뷔곡 '휘파람'부터가 나의 취향을 저격한 노래였고 불장난이라든가 뚜두뚜두같은 곡을 좋아하여 핸드폰 음악 플레이어 재생목록에 넣어두고 줄곧 들어왔다. 몇 달 전 그들이 정규앨범을 발표한다길래 곡이 발표되자마자 그 앨범의 음원을 모두 다운로드하여 듣고 다니고 있는데 역시 나의 귀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들의 곡을 맡고 있는 테디라는 작곡가 특유의 경쾌한 비트와 가수들의 훌륭한 보컬 그리고 악기 하나하나 각각의 매력을 보이지 않게 드러내는 편곡 등 어디 하나 부족한 것이 없다. 이들의 음악은 한국뿐 아니라, 아니 오히려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욱 인기를 끄는 모양인데, 그들이 발표한 뮤직비디오의 조회수는 거의 모든 경우 수억 뷰를 기본으로 하고 심지어 십억 뷰를 넘거나 육박하는 영상도 몇 개나 된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1위를 밥 먹듯 하는 지금의 한국 대중가요의 위상이라는 것은 나에겐 아직도 낯설기만 해서 이런 현상을 도무지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까마득히 어린 시절 산울림 2집을 테이프의 릴이 끊어질 정도로 듣게 되면서 처음으로 대중가요에 입문한 이래로 대중가요를 한창 즐겨 듣던 나의 학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가요의 위상이라는 것은 일제시대의 영향이 남아있는 트로트가 여전히 국민가요로 대접을 받고 있었고 신세대 젊은이들이 들었던 댄스음악이나 발라드도 미국 음악이나 일본 음악을 모방한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일본 음악 표절 사례는 심심챦게 발견되어서 시사프로그램의 메뉴에도 종종 올랐었다.
당시의 일본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로서 미국을 위협할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던 때였다. 그래서 나는 일본에서 혐한이 한창이라는 소식을 듣고 상당히 의아해했었던 것이다. 나의 의식 속에는 옆 나라 힘없는 반도의 분단국 따위에게 공공연히 열등의식을 드러내기에는 일본은 너무나 큰 나라였던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는데 나의 뇌는 30년 전 그대로였다. 내가 걷는 길이 그대로이고 내가 만나는 사람이 그대로라고 세상도 그대로가 아니었다. 먹고사는 일 외에는 그 어느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살다 보니 정작 세계가 변해 있는 줄 몰랐던 것이다. 한국경제는 디지털 시대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며 견실하게 성장했고 IMF 위기를 통해 구조조정을 거치고 때마침 중국의 시장이 부상하면서 공격적인 진출로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고 선진국 대열로 들어서는 과정을 거쳤다. 반면 일본은 최전성기 때 생긴 버블로 잃어버린 10년 혹은 20년이라는 장기침체에 빠져버렸고 디지털 시대에 맞게 성공적으로 체질을 개선하지도 못했으며 때마침 터진 동일본 대지진과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인해 치명타를 입고 허우적 대는 와중이었다. 그때 정치권과 우익 인사들을 주축으로 국내의 불만의 방향성을 돌리고자 등장한 것이 혐한 운동이었던 것이다.
일본의 경제력이 최전성기를 구가할 때 그들의 문화도 아시아 및 구미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듯이 한국도 경제력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면서 문화가 융성하여 해외에 진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나 인터넷의 발달로 문화교류가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지금 같은 시대에는 말이다. 그런데 문화의 여러 요소중 왜 하필 대중가요가 해외에서 크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하는 부분이 내가 궁금해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BTS의 성공을 다룬 책을 구입하여 읽어보기도 하고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속 시원한 결론을 구해주진 못했다. 물론 일찍부터 정착시킨 아이돌 트레이닝 시스템이라든가 인터넷 시대에 적합한 SNS를 통한 소통과 홍보 등의 성공적인 마케팅 등이 효과적이었다는 부분에는 동의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빌보드 1위를 할 수는 없다고 본다. 빌보드는 엄연히 미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차트이다. 동양의 젊은 아이돌이 그렇게 쉽게 넘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다.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런데 불현듯 과거를 되돌아보니 우리나라 가요가 꽤나 경쟁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적어도 90년대 이후로는 말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젊은 층에서는 마이클 잭슨이 상징하는 팝송이 대세였다. 국내에서는 록음악을 기반으로 한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조금씩 대중들의 반응을 얻기 시작한 단계를 거치고 있었는데 그렇게 축적된 에너지가 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발현되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수려한 용모 세련된 음악 현란한 댄스', 지금 케이팝의 원형을 그대로 담고 있다. 서태지뿐만 아니라 여러 뛰어난 실력을 가진 가수들이 봇물처럼 등장하면서 90년대 들어 사람들은 팝송보다는 가요를 더 많이 소비하게 되었고 그러한 기세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도 뮤직 플레이어 재생목록에 팝송을 포함하여 외국곡을 포함시키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한국인 특유의 정서를 표현하는 데 있어 한국 가요만 한 것이 없기에 이런 현상을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음악의 퀄리티도 물론 훌륭했다. 하지만 한반도 어느 구석의 촌부인 나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노래가 저 멀리 인도네시아 어느 섬의 주민의 귀에 같은 효과를 가져다주지 말란 법도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 일찍이 팝송을 압도하는 경쟁력을 가지며 축적해 온 힘이 글로벌 시대를 만나 세계적으로 히트하는 발판이 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한국 대중가요는 어떻게 경제력이 차마 선진국이라기엔 민망할 정도였던 개발도상국 시절부터 팝송을 압도하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는가 하는 부분인데 이것은 그냥 국민성 자체가 음악적으로 뛰어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수업 도중에 지나치듯 '유목민족은 소리에 강하고 농경민족은 문자(그림)에 능하다'취지의 말씀을 하신 것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데, 과연 한국인은 유목민족의 피가 많이 섞여있어서 비트에 유독 강한가 하고 생각할 뿐이다. 또는 중화권 언어와 달리 성조 체계가 없는 것이나 발음의 범위가 매우 협소한 일본어보다 노래 부르기엔 좋은 언어를 가진 이유도 있겠다. 무엇보다도 최치원 선생이 일찍이 기록해두었던 '풍류 지도'라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란 것이 지금의 '흥'으로 남아서 한국인 특유의 '신이 나는'노래를 만들어 부르다 보니 이것이 세계인들에게까지 먹혀들고 있다고 보인다. 뭐 다 검증되지 않은 나만의 해석일 뿐이지만, 이렇게라도 해석하지 않으면 나로서는 지금의 케이팝의 성공을 이해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케이팝의 세례를 듬뿍 받은 블랙핑크의 정규앨범 노래를 즐겨 듣는 요즘이지만 한편으로 새롭게 좋아하게 된 노래도 있다. 베이스와 드럼의 단출한 악기에 소리꾼 보컬들의 판소리로 구성된 밴드 이날치의 노래들이다. 국악과 대중음악을 접목한 시도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이렇게 깔끔하게 만들어지고 대중적으로도 성공한 노래는 없지 않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이들 노래도 좋지만 이전에 결성되었다가 지금은 해체된 씽씽밴드의 노래를 매우 좋아한다. 둘 다 장영규라는 음악인에 의해 주도되어 만들어진 그룹으로 판소리를 대중가요 화한 시도로써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힙합 음악의 대중화로 귀가 랩에 익숙해져서 판소리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데 거기다가 깔끔한 편곡을 더하니 듣기에 너무 좋다. 이런 시도가 왜 이제야 인기를 얻나 싶을 정도이다. 특히 씽씽밴드의 음악들은 음원을 구해서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듣고 다니는 중인데 일반 대중가요처럼 클라이맥스에 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부분은 정말 압권이다. 웬만한 대중음악보다 훨씬 좋다. 밴드가 해체돼서 이들의 음악을 더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물론 개인별로 활동은 계속하겠지만.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씽씽밴드 밴드 이날치, 이들의 노래들은 결은 매우 다르지만 내 기준으로는 모두 '가요'일뿐이다. 한국인이 한국인의 정서를 표현한 노래들이다. 한국인이 한국인의 정서를 표현한 노래들인데 어떤 노래는 빌보드 1위를 하고 어떤 노래는 옛날 사람들이 부르던 방식으로 부른다. 한국인의 특유의 정서 혹은 흥을 표현하는 데 있어 장르나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신이 나는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소리의 여러 요소들을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그 효과를 극대화한다. 이것이 아마 케이팝의 장점이지 않은가 싶다.
80년대 한국인을 열광시켰던 홍콩영화처럼, 한때 아시아를 호령하던 일본처럼 케이팝도 전성기를 지나 언젠가는 시들해질 것이다. 모든 것은 영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에라도 혹은 한때만이라도 한국인의 정서와 한국인의 흥이 담긴 가요가 세계인들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혹은 받았다는 사실 자체는 정말 놀라운 일이다. 한국 대중가요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