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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독후감.  추리소설 백권읽기

by 무념무 Nov 28. 2020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시공사 펴냄


 요코미조 세이시는 1902년에 태어난 일본 추리소설 작가이다. 물론 지금은 고인이다. 일본에선 나름 에드가와 란포라는 작가와 함께 일본 추리소설계의 거장으로 통하며 그의 필명을 딴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호러 대상'이란 명칭의 상이 있을 정도이다. 그의 추리소설의 탐정 역은 주로 '긴다이치 코스케'란 캐릭터가 맡고 있는데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에서도 긴다이치 코스케가 사건을 풀어나가는 탐정으로 등장한다.


 소설의 시대 배경은 태평양전쟁이 일본의 항복으로 끝나면서 막을 내린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 일본 도쿄다. 태평양 전쟁 때 일본의 수도 도쿄가 미군의 공습으로 폭격을 많이 당했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는데 바로 그 당시의 그 지역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이다 보니 당시를 살았던 일본인들의 모습과 도쿄의 풍광을 조금 엿볼 수 있는 재미가 있다. 등장인물들도 물론 제국주의 전쟁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 묘사들을 보면 과연 전쟁이라는 것이 피해국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가해국의 국민들에게도 수많은 고통을 남긴다는 점에서 과연 전쟁이라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부분은 소설의 주제나 스토리와는 크게 관계가 없다. 이 소설은 잘 짜인  플롯으로 독자의 뇌를 즐겁게 하는 추리소설일 뿐이다. 


서양의 성을 연상케 하는 대저택에 사는 츠바키 가문에서 서양의 계급 명칭을 따온 자작으로 불리는 츠바키가 실종되어 시체로 발견되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츠바키의 딸 미네코의 요청으로 사건에 합류하게 된 긴다이치 코스케가 점을 치는 의식에 참여하기 위해 가문의 저택에 처음 방문하게 된 날, 첫 번째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그것도 밀실에서 발생한 사건인데 피해자는 같은 저택의 별채에서 사는 츠바키의 아내의 외 외종조부 다마무시이다. 가문의 특이한 인물들과의 관계나 과거 이력 등을 조사하던 중 코스케가 방문한 고배의 아와지시마란 섬에서 두 번째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피해자는 젊었을 적에 첫 번째 희생자 다마무시 백작의 가문에서 일을 하던 중 가문의 한 남자와 원치 않는 관계로 아이까지 낳았던 비구니 고마. 그리고 이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도쿄의 츠바키 자작 저택에서 세 번째 살인사건의 소식이 들려온다. 피해자는 츠바키 아내의 아키코의 친오빠 신도 도시히코.  도대체 이 가문에서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인물들의 관계와 과거사의 내막을 조금씩 풀어가던 중 마침내 츠바키의 아내 아키코마저 살해당한다. 그러고 나서 밝혀지는 사건의 전모와 범인은 조금 충격적이다. 내가 한국사회에서 평범하게 살아온 감각으로는 예측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지점에서 사건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조금 막장이란 표현을 써도 무방할 듯하다.


 아무래도 70년 전에 쓰인 작품이라서 그런 건지 몰라도 캐릭터 묘사가 너무 딱딱하다. 추리소설이라 해도 캐릭터의 특성을 잘 표현해서 등장인물에게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근래의 경향과는 사뭇 다르다. 등장인물들은 그저 웃고 화내고 놀라고 할 뿐 그 내면의 생생한 감정은 표현되지 않는다. 심지어 주인공 긴다이치 코스케란 캐릭터조차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그가 사건을 풀어가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는 특징 외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알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여운이라는 것이 크지 않다. 물론 요즘의 것과는 다른 근대적 문체와 서사적 구성에서 나오는 여운은 남다른 맛이 있긴 하지만 감정을 이입할 요소가 너무 적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재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좋은 문장력과 독특한 문체 덕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나에겐 다소 충격적인 범인의 배경에서 오는 여운도 상당하다. 또한 총 30장으로 1장당 페이지 분량이 20~40페이지로 잘 쪼개져 구성되어 있는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내 독서 스타일은 한 곳에서 진득하게 앉아 읽어나가는 쪽이 아니라 이동시간이나 짬이 나는 시간 등 틈틈이 시간 내어 읽어나가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한 장 한 장 마무리해가며 읽어 나갈 수 있는 이런 스타일의 책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대체적으로 캐릭터의 생생함이 부족한 일본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번역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이는 장황한 묘사 때문에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영미권 소설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잘 쓰인 한국소설이 최고인데 아쉽게도 한국의 추리소설 풍토는 상대적으로 열악해서 내가 쉽게 구해볼 수 있는 범위가 좁다. 그러다 보니 일본 추리소설 쪽을 기웃거리게 되는데 아무래도 일본어가 한국어와 상대적으로 가깝다 보니 번역본이라 할지라도 읽기가 편하다는 장점도 있고 일본의 추리소설 문화가 잘 발달되어 접할 수 있는 범위도 크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천 년대 들어 한류나 케이팝의 부흥으로 한국문화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데 추리소설 같은 대중문학 쪽도 그 못지않은 역량을 구축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인이 한국인의 정서로 한국어로 쓴 소설만큼 읽기에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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