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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 Feb 24. 2017

사라질 것들

아침 이슬


어릴 적 나의 등굣길은 참으로 길었다. 이른 아침밥을 먹고 나서 한참을 걸어서야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논길을 따라 즐비한 잎들을 손으로 훑으며 걷곤 했다. 잎들 위로 맺혔던 차가운 아침이슬이 손에 닿아 털리는 것이 좋았다. 아침 이슬의 청량했던 온도와 손에 닿던 감촉, 공중으로 떨어지며 반사되던 순간의 반짝임, 그 모든 것을 아직 생생히 기억할 정도다. 그렇게 한참이나 남은 등굣길의 무료함을 달래며 걷곤 했다. 


 털어내지 마라. 잎들이 무더운 여름의 하루를 싱그럽게 보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밤새 영글었을 이슬이야.
어차피 곧 해가 완전히 떠올라, 지면을 달구면 어차피 곧 사라질 운명.
그 본분을 마칠 수 있게 그대로 머물도록 두어라.


어릴 적의 이야기라 정확하게 떠오르진 않지만 분명히 저런 말이었다. 같이 기나긴 등굣길에 오르던 사촌 형이 말했는지, 아니면 이른 아침 논에 물을 대던 동네의 어르신이 한 것인지, 스스로 저런 말이 떠오른 것인지, 혹은 대지를 떠다니던 삼라만상의 가르침이 들려온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분명 저런 말이었다. 


어릴 때의 나에게 온갖 세상을 표류하는 지표들이 생각의 흐름을 관통하며 무엇인가를 내게 종종 남기던 때가 많았기에, 아마도 그런 이야기들 중에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이었든지 그런 말이 들려온 이후 더 이상 이슬을 털어내지 않았다. 여름의 막바지에 이르던 때였다.


덧없는 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슬의 사전적 의미에는 덧없는 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란 뜻이 있다. 해가 떠오르면 덧없이 사라지는 것.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이 이슬을 그렇게들 보았나 보다. 의미 없이 허전하게 사라지는 이슬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정말 이슬은 덧없이 사라지기만 하는 그런 존재였을까?


오랜 세월을 지나 만난 소중한 인연이 생겼다. 그로 인해 행복한 일상에서 문득 아침 이슬을 털어내던 그때가 생각났다. 아니 털지 않게 된 그 이유가 떠올랐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지금의 행복한 일상이 언제고 사라질지 모른다는 조바심이 행복한 일상의 틈 사이로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 불안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내리쬐는 햇빛에 곧 사라질 존재일지라도 나로 인해 잠시 힘든 날을 식히고 그곳에 내가 있었음에 무덥게 내리쬐는 한낮에도 싱그러운 색으로 지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반드시 사라질 때가 오더라도 지금 당장은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곁에 머물렀던 것이 덧없음이 아니라 반드시 사라질 것이라도 내가 있었음에 하루를 싱그럽게 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와버린 소위 잉여에 해당하는 나란 존재가 이곳에 있었다는 것에, 누군가 하루를 잘 지낼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에게, 혹은 어디에 있을지 모를 아직 만나지 못할 누군가에. 내 그림을 보고 있을 사람들에게. 시답잖은 생각을 함께 읽어줄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가족과 동생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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