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쳐버린 순간에서 배우는 것들
휴식을 그리고 있었다. 스케치 후에 수채화로 열심히 채색을 했었던 그림이었다. 편안한 휴식을 주고 싶은 그런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바람과는 달리 크게 망치고야 말았다.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을 했다.
다시 그릴 것인가. 그렸던 것을 다시 그리는 것이 어쩐지 내키지가 않는다.
그림을 버릴 것인가. 버리는 것은 쉽겠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그리고 싶다던 바람마저 버리는 것만 같았다.
한동안 몇 개의 그림을 그리며 나는 자신감이 붙었고, 그로 인해 당연히 잘될 것이라 생각하며 스케치도, 색감도 더 노력해보지 않은 채 섣불리 수채화를 손댔던 것이 패인이었다.
어째서 나는 더 노력하지 않고, 그렇게 섣부르게 나를 믿어버렸던 것일까.
다 망쳐버린 후에 후회한들 그때는 이미 늦었다.
늘 그리는 그림인지라 익숙하다 느끼며 소홀하게 대했던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겨우 그림 한 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그림 한 장이기도 하다.
다시 그리고 언제나 그릴 수 있다고 해서 이 그림이 소중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또 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흘러 보내 버린 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내 손으로 그리는 그림에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태반이다.
언제나 최고의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닌 것이다.
내 손으로 그리는 그림도 이러한데, 사람과의 관계는 오죽하겠는가.
늘 한결같다 생각했던 관계들도 익숙하게 느끼고, 진실되게 대하지 않는 순간들이 누적되다 보면 망쳐지고야 말 것이다.
혹시
나는 늘 그곳에 그들이 있다고 익숙하다 느끼며, 소홀하게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더 진실되게 노력하지 않고 섣부르게 그들을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잘 그린 그림에서도 배울 점은 많겠지만, 이렇게 망쳐버린 그림에도 분명히 배울 점이 많다.
그리고 망쳤다고 해도 그림을 그리려고 했던 최초의 의도나 생각들은 여전히 그곳에 담겨있다.
그림 한 장을 망쳐버리고 그림 그 이상의 생각들을 넘어선 기분이 들었다.
잘 그려진 그림보다 망쳐버린 것들에서 더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해보고, 배울 수 있었다.
다행이다. 이렇게라도 망쳐버린 휴식을 그리는 동안의 시간을 헛되지 않게 기억할 수 있어서.
또 살아가며 틀어질 관계들이 온다면 그때도 그것들 안에서 남겨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망쳐버린 관계에서도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남겨둘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