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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 Aug 08. 2017

망쳐버린 그림

망쳐버린 순간에서 배우는 것들



휴식을 그리고 있었다. 스케치 후에 수채화로 열심히 채색을 했었던 그림이었다. 편안한 휴식을 주고 싶은 그런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바람과는 달리 크게 망치고야 말았다.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을 했다.

다시 그릴 것인가. 그렸던 것을 다시 그리는 것이 어쩐지 내키지가 않는다.

그림을 버릴 것인가. 버리는 것은 쉽겠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그리고 싶다던 바람마저 버리는 것만 같았다.


한동안 몇 개의 그림을 그리며 나는 자신감이 붙었고, 그로 인해 당연히 잘될 것이라 생각하며 스케치도, 색감도 더 노력해보지 않은 채 섣불리 수채화를 손댔던 것이 패인이었다.

어째서 나는 더 노력하지 않고, 그렇게 섣부르게 나를 믿어버렸던 것일까.

다 망쳐버린 후에 후회한들 그때는 이미 늦었다.


늘 그리는 그림인지라 익숙하다 느끼며 소홀하게 대했던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겨우 그림 한 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그림 한 장이기도 하다.

다시 그리고 언제나 그릴 수 있다고 해서 이 그림이 소중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또 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흘러 보내 버린 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내 손으로 그리는 그림에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태반이다. 

언제나 최고의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닌 것이다.

내 손으로 그리는 그림도 이러한데, 사람과의 관계는 오죽하겠는가. 

늘 한결같다 생각했던 관계들도 익숙하게 느끼고, 진실되게 대하지 않는 순간들이 누적되다 보면 망쳐지고야 말 것이다. 


혹시 

나는 늘 그곳에 그들이 있다고 익숙하다 느끼며, 소홀하게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더 진실되게 노력하지 않고 섣부르게 그들을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잘 그린 그림에서도 배울 점은 많겠지만, 이렇게 망쳐버린 그림에도 분명히 배울 점이 많다. 

그리고 망쳤다고 해도 그림을 그리려고 했던 최초의 의도나 생각들은 여전히 그곳에 담겨있다.

그림 한 장을 망쳐버리고 그림 그 이상의 생각들을 넘어선 기분이 들었다.


잘 그려진 그림보다 망쳐버린 것들에서 더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해보고, 배울 수 있었다.

다행이다. 이렇게라도 망쳐버린 휴식을 그리는 동안의 시간을 헛되지 않게 기억할 수 있어서.


또 살아가며 틀어질 관계들이 온다면 그때도 그것들 안에서 남겨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망쳐버린 관계에서도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남겨둘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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