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결한 당신을 기리며
국화의 꽃말은 지조와 평화, 절개, 고결 등을 담고 있다. 하지만 국화의 꽃말은 그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노란 국화는 순정을 의미하고, 분홍색 국화는 정조를, 빨간색 국화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꽃말을 담고 있다. 또 흰색 국화는 성실과 감사, 진실을 나타내며 특히 흰색에 경건함을 의미하는 것이 내포되어 있어, 생전에 주신 것에 감사한다는 것을 표하고자 장례식장 등에서 사용한다. 물론 이것에는 많은 이견이 있다. 기독교적인 문화가 유입되며 장례식장에서 헌화를 하는 것이 국화와 만나 하얀 국화를 사용한다는 것으로 보인다는 말도 있고, 일본의 영향으로 국화가 차용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보라색 국화는 '내 모든 것을 그대에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이전에 그렸던 피어나는 꽃 시리즈의 연작으로 구성한 그림이기도 한 이 그림을 그리는데 4개월이나 걸렸지만, 그린 시간보다 그리겠단 생각은 훨씬 더 오래 전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고결한 당신을 기리며 그려온 국화 그림에 대한 이야기다.
2010년 5월 밤늦게 막내 형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어릴 적 함께 자라서 친형제처럼 지내온 사촌 형으로 나이 터울이 많지 않은 가장 친한 형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OO야. 큰형이 죽었다.
짧은 한마디에 뭐라고?
다시 물어볼 엄두도, 정신도 없었다. 얼마간 전화를 끊고 멍하게 앉아있었을 뿐이었다.
큰 형은 나보다 13살이 많은 집안의 장손이었다. 늘 집안의 큰형답게 모두를 잘 챙겨주며 다정다감한 성격으로 형제들에게 사랑을 받는 존재였다. 나이 차이가 많았지만, 집안에서 가장 어렸던 나에게도 늘 반갑게 대해주던 형이었다. 건강상에 어떤 문제도 없었고, 슬하에 자식 둘이 있던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런 형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고, 택시를 잡아타고 답십리에 있던 장례식장을 향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가는 동안 멍하게 바라본 창밖 풍경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한참이 지나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말을 듣고 형제들 모두 어떤 말도 하지 못한채 멍하니 주저 앉았다. 너무 비현실적이라 그랬는지 눈물도 잘 나오지 않았다.
얼마 지나서 형의 빈소가 차려지면서 하얀 국화가 잔뜩 들어와 형의 사진 주변을 메웠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정말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가득한 하얀 국화, 어찌나 비현실적이던 풍경이던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중에 보라색 국화가 한 송이 피어있으면 예쁘려나.
아마도 너무도 현실적이지 않은 상황이라 그런 생각이 들었나 보다. 거듭된 그런 생각 탓인지 하얀 국화 사이로 보라색 국화가 선명하게 물들어 보였다. 하얀 국화 사이로 보라색 국화 한 송이가 선명하게 눈에 새겨졌다.
그제야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꼭 형의 문제만은 아니었지만, 여러 가지 문제로 상실을 경험하며 정신적 괴로움이 길어졌다. 후로 꽤나 시간이 지나 병원을 들락날락하다 마지막으로 병원을 나섰을 무렵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작년 5월이다.
후에 몇몇 사람들과 친해졌고, 지인이던 한 분과 수채화로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물어보다가 문득 국화를 한송이 그려볼 수 있겠냐고 물었다. 지인은 선뜻 한번 그려보겠다고 했고, 얼마 후 국화 한 송이를 받았다.
이런 국화를 받아 들던 그날 그때의 국화가 다시 눈앞에 아른거렸다.
이후 수채화든 색연필이든, 연필이나 펜이든 가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다시 그림을 그리며 나는 많은 부분이 좋아졌다. 생각도 더 명료해지고, 감정도 보다 좋은 방향으로 조절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된 지 1년이 지났을 무렵 얼마나 실력이 늘었나 가늠해보고 싶어 졌다.
더 많이 수채화를 공부해서, 6월이 되면 더 좋은 수채화 그림을 보여줄게요.
그리고 6월 12일 국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4개월이 지나 그림을 완성했다.
물론 매일 이 그림만을 그렸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실 4개월이나 걸린 그림은 아니었다.
시작은 정말 금방 완성을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국화를 그리는 동안 형 생각도 많이 나고, 그날 일도 떠오르고, 국화는 힘들고, 자꾸만 우울감에 빠지게 했다. 너무 예민한 성격에 여럿 피곤하게 만드는 편임을 잘 알지만 이런 것도 나인 것을 어쩌겠는가.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 국화에 매달렸다. 너무 우울감에 빠져 한 달간은 어떤 그림도 그리지 못했을 정도이기도 했다.
그렇게 완성한 국화. 이것은 이전에 한번 그렸던 피어나는 꽃, 테디베어 해바라기의 연작이다. 피어나는 꽃으로 그날의 국화가 다시 피어나 새로운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렸다. 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참고했던 사진과는 너무도 멀어진 그림이 되었지만, 나름 의도하였던 대로는 잘 되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아쉽다는 생각도 많이 남았다.
이번 생은 잘게 잘게 쪼개지는 마음을 배우기 위함이었나.
국화를 그리는 도중 몇번이나 이런 생각을 했었다. 잘게 잘게 쪼개진 꽃잎들을 그리며 정말 많은 생각을 했고, 과거를 돌아보기도 했다.
그렇게 4개월. 큰형의 죽음 앞에 높인 수많은 하얀 국화, 그 사이로 보였던 선명한 보라색의 국화를 잘게 잘게 쪼개지던 마음으로 그렸던 날들이 그렇게 끝이 났다.
49제가 지나면 윤회를 한다고 한다. 하얀 국화 사이 놓여있던 형이 떠난 지도 벌써 7년이 지났으니, 어디선가 이 세상에 새로운 삶으로 태어나 다른 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믿고 있다.
국화의 꽃말은 다양하지만, 보라색 국화는 내 모든 것을 그대에게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다시 태어나 새로운 생을 살고 있다면, 내 마음 온전히 누군가에게 전하며 이번 생에서는 꼭 행복하게 오래 살라고 빌어주고 싶다. 하얀 국화가 가득하였던 날을 뒤로 내 마음 온전히 누군가에게 전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4개월간 매달렸더 이 그림을 그만 끝내기로 했다.
고결한 당신을 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