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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 Oct 10. 2017

머물러 있던 풍경

사소했던 풍경 속 인상적인 순간들


햇빛이 잘게 바스러지면서 맑고 푸른빛을 내던 나뭇잎 사이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일전에 친구와 함께 걷던 울음 숲이었다. 울음 숲을 낮에 만나니 그때의 풍경과 너무나도 달라 보였다. 


https://brunch.co.kr/@vegadora/12


억새와 이름 모를 풀이 잔뜩 있었다고 기억하던 곳을 푸른빛의 나무가 가득 메우고 있었다. 


요 근래 일상이 조금씩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던 순간들이 가슴에 남기 시작했다. 매일 똑같이 돌아가던 일상이라 생각했었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안에 무수하게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대낮에 만난 풍경이라고 해도 볼품없긴 매한가지였다. 날벌레가 붕붕 때를 이뤄 날아들고, 나무엔 자벌레나 알 수 없는 이름의 벌레들도 많았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은 지표면의 흙을 날라 공간 위로 흩뿌리고 햇빛은 눈을 찌푸리게 만들 정도로 눈부셨다. 


그런 곳을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함께 산책을 하던 친구가 사진으로 찍어서 내게 보여줬다. 친구는 그대의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왜 나를 사진으로 남겨두었던 것일까.


보내준 사진 속에 머물러 있던 풍경은 곱고 가는 채로 좋지 않았던 것들을 걸러내고 인상적인 순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햇살을 한껏 받아 투명해진 푸르름이 겹쳐지며 다양한 녹색을 머리 위로 수놓던 그날. 바람의 흙냄새가 아련히 나부끼고, 한낮의 여유는 공감을 점층적으로 가득 채워 인상적인 풍경에 나를 머물도록 놓아두고 있었다. 


일상이 조금씩 행복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머물러 있던 풍경들과 사소했던 순간들이
어느새 인상적인 순간들로 하나씩 기록되고 있다. 



나는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를 오랜 기간 고민해왔다. 

날 때부터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힌 삶을 살아가는 존재는 아닌가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런 것을 증명하듯 기억이 나지 않을 때부터 남겨진 얼굴의 화상이 낙인처럼 나를 매번 짐 지웠다.

그렇게 스스로를 비관적으로 몰아가고, 부정적인 면으로만 매사를 바라보게 만들며 일상을 우울하게 갉아먹고 있었다. 


자승자박.


그날 머물러 있던 풍경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행복한 순간들을 보내고 있었도 되는 걸까. 다시금 나를 곤두박질치게 만들진 않을까.


사진 속 모습을 바라보며 그날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런 걱정들은 날벌레 떼나 흙을 흩뿌리던 바람, 눈을 찌푸리게 만들던 햇빛과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채로 걸러지고 인상적인 풍경에 나를 머물도록 놓아둔 것처럼 달리 보면 불행하다 생각할 것들보다 훨씬 많은 순간들이 반짝이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일었다. 


매번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일상 속에 반짝이는 순간들을 잘 담아둔다면 다시 곤두박질치는 때가 오더라도, 금세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며 연필 스케치를 하는 동안 다짐하듯 되뇌었다. 


또 언제 다시 우울에 빠져 허우적거릴지는 몰라도 

요즘의 나는 조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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