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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스키 Sep 20. 2022

네가 고기를 안 먹고 산다고? 앞으로 평생?

비건 사람 친구입니다 ep. 두부 케이크


"네가?"

"세상에 네가 고기를 안 먹고 산다고? 앞으로 평생?"


내가 처음 비건이 뭔지 설명하고 앞으로 비건으로 살 거라고 말했을 때 엄마의 반응이었다. 엄마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과 말투로 말했다.


"아니 그래, 그런 이유와 마음가짐 참 좋은데, 네가 제일 좋아하는 게 돈까스잖아"

"흠.. 엄마는 믿기 어렵긴 하지만! 며칠이나 가나 엄마가 세어 보겠어!"


초기 며칠 동안 엄마는 어차피 스스로 포기할 줄 안다는 듯이 별 동요가 없는 눈치였다. 그러나 몇 주가 지나자 엄마는 스멀스멀 나의 결심에 의문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과연 눈앞에 차려져 있어도 안 먹을까?' 하는 생각이 엄마의 변치 않는 의심이었다.

 주말 아침 '엄마가 미역국 끓여 놨으니까 일어나면 먹어~'라고 부엌 식탁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어서 '고마워 피곤해서 뭐 해 먹기 귀찮았는데 엄마 덕분에 잘 챙겨 먹을게!'라고 문자를 보낸 뒤 냄비 뚜껑을 열어 보면 미역 사이사이에 소고기가 빼꼼히 들어있었다. 새해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난 나에게 다짜고짜 떡국을 끓이라기에 냉장고에서 떡이랑 비건 만두를 꺼내며 "엄마 냄비에 물 좀 얹어줘" 하면 이상하리만큼 뽀얗고 하얀 물이 냄비 안에서 끓고 있기도 했다. 의심스러운 마음에 쓰레기통 뚜껑을 열어보면 삼계탕 육수라고 쓰인 파우치가 떡하니 버려져 있기도 했다.


그 뒤로 줄줄이 한도 끝도 없는 엄마와 나의 눈치싸움은 끝날 줄을 몰랐다. 우렁 넣은 강된장 아니 우렁을 잘게 다져 교묘하게 숨겨 놓은 강된장. 분명 젓갈 냄새가 나는데 넣지 않았다고 강하게 부인하는 겉절이 김치. 딱 봐도 말린 새우가 들어갔는데 바득바득 안 넣었다고 우기는 된장찌개. 무조림을 했다기에 신이 나서 뚜껑을 열고 조각조각 양념이 잘 스며든 사다리꼴 모양 무를 국자로 떠 접시에 가지런히 담고 나면 냄비 가장 밑에 토막 난 고등어나 갈치가 숨어 있곤 했다. (무조림은 엄마가 한 반찬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다)


나는 때마다 엄마에게 가만히 물었다. “엄마, 왜 내 결정을 존중하지 않아?" 그럴 때마다 엄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 이렇게 받아쳤다. "야 엄마가 너 옷 입는 거 어디 살지 정하는 거 다 그러려니 했는데 먹는 건 쫌 참견 좀 하자. 너는 체력도 약한 애가 고기도 안 먹고 생선도 안 먹으면 힘들어서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공부해! 너 퇴근하고 올 때마다 쌩쌩하면 엄마가 말을 안 해!"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의 반응은 힘이 빠져갔다. 급발진하던 로켓 엔진 수준에서 고양이 솜방망이 펀치 정도로 차차 누그러졌다. "엄마가 이제 고기 먹으라고 안 할게, 생선이랑 해산물은 먹으면 안 돼?" "아니면 그냥 계란만 먹으면 안 돼?" 나는 늘 단호하게 "응 안 먹을 거야"라고 답했고 어느 날은 엄마의 설움이 폭발했다.

 바람을 쐬러 차를 몰고 교외로 나갔다가 저녁을 먹고 들어가자기에 식당을 검색하던 중이었다. 주차장에 차들이 꽉 들어차 있는 맛집 식당을 몇 차례 지나치자 엄마는 한참 동안 바쁜 나의 엄지손가락을 바라보다 이렇게 말했다.


"남들 다 잘 먹고 잘만 사는데 왜 내 새끼만 실한 거 맛있는 거 먹지도 못하고!! 이렇게 불편하게 살아야 되냐!!!"

"엄마가 전생에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엄마는 거의 '고요 속의 외침' 수준으로 고함을 쳤다. 나는 엄마의 옆모습을 얼떨떨하게 바라봤다. 고기나 생선을 골고루 먹어야 건강하다는 생각이 엄마의 사고방식이니 크게 속상할 만한 일이긴 했다. 우리의 생각 차이는 거기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느꼈다.

 그날부터 나는 채식이 충분하다는 다큐멘터리, 책, 잡지에 실린 내용들을 숙지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엄마에게 브리핑했다. 지나가는 말처럼. 조곤조곤. 거부감 들지 않게.






몇 달 후 여름, 그날은 평일이었고 내 생일이었다. 고단한 일과를 마친 나는 장을 보러 가지 못하고 곧장 집으로 퇴근했다. 발걸음이 모래주머니를 찬 것처럼 무거웠던 걸로 기억한다. 도어락을 풀어 문을 열고 “다녀왔습니다” 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운동화를 벗고 거실로 들어서자 엄마가 “늦었네~ 밥은 먹었어?” 했다.


부엌에서 미역국 냄새가 폴폴 풍겨왔다. 홀린 듯이 부엌으로 다가가자 식탁 위에는 두부를 정사각형 큐브 모양으로 썰고 구워 3단 케이크 모양처럼(그렇지만 약간 피라미드 같이) 쌓아놓은 일명(엄마가 주장한 표현에 의하면) 두부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두부 케이크 주위에는 보라 양파와 애호박 브로콜리 방울토마토를 바짝 익힌 채소 볶음이 장식되어 있었다. 꼭대기에 놓인 두부 조각에는 빨간색 하트 모양 초가 꽂혀 있었다.


엄마는 다른 때보다 수월한 상차림이었다고 털털하게 말했다. 두부를 굽고 야채를 볶았을 뿐인 한 접시로 나는 예쁘고 무겁고 값비싼 비건 케이크를 받았을 때보다 더 찐한 행복감을 느꼈다. 드디어 가장 오래 보아 온 사람에게 지지받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심지어 미역국에는 으깬 두부가 들어가 있었다.


서둘러 손을 씻고 식탁에 앉자 엄마는 말했다.


엄마 : 그래도 언제든 삼치구이 먹고 싶으면 얘기해, 엄마가 안 놀리고 모른 척 만들어 줄 테니까~

나 : (그럴 일 없다는 듯 의아하다는 표정)

엄마 : 너 횟집 딸이잖아. 네 아빠가 만든 초밥이 먹고 싶어질 수도 있고~

나 : (전광석화처럼 훅 치고 들어오는 기억에 언짢은 표정)

엄마 : 그래도 가끔 연어초밥 생각나지 않냐? 너 생일이면 아빠가 상다리 부러지게 만들어줬잖아

나 : 우와. 진짜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네. 엄마가 무슨 정대만이야?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나는 엄마의 저런 면을 좋아한다. 유연한 사고. 엄마는 터무니없는 말이라도 일단 들어보고 "그럴 수 있지" 한다. 그리고 끝내 의견이 다를 때도 시간이 걸릴지언정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할 줄 안다. "너는 그렇구나, 나는 이래" 혹은 "그건 내 편견이었네 미안" 같은 귀중하고 감사한 표현들이 우리 엄마의 언어 창고에 있다. 어린 시절에는 엄마가 내게, 성인이 된 후에는 내가 엄마에게 가르치고 있는 생활문법이다. (대학 때는 교양 시간에 배운 ‘비폭력 대화’ 강의안을 그대로 엄마에게 가져가 브리핑한 적도 있다. a.k.a '충조평판' 하지 않기)


게다가 엄마는 무슨 일에든 희비가 있고 명암이 있다고 알려주는 사람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그래서인지 대화 중에도 속단하는 법이 없고 말을 맺을 때도 문을 닫아 잠그지 않고 열어두는 듯한 어투를 쓰곤 한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야 세상에 그런 어른이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럴수록 엄마의 사고방식을 닮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엄마와 나는 애증의 관계다. 닮고 싶지 않은 점도 많다)



어쨌든 내가 비건을 지향하며 삶의 방식을 통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으로 살 게 된 데에도 엄마의 덕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내 새끼 입에 두툼한 고기 들어가는 게 그렇게도 좋다던 엄마는 두부를 으깨 넣은 미역국과 배스킨라빈스의 아이스크림 케익(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케익)이나 파리바게트의 딸기가 올라간 생크림 2호 케익(내가 제일 좋아하던 케익)을 사지 않고 두부로 피라미드를 쌓았다. 엄마가 처음으로 내 결심을 응원해준 날이었다.








*'고요 속의 외침'은 나영석 PD님이 제작하는 예능에 곧잘 나오는 게임 이름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어린 시절 KBS 가족 오락관에 등장하던 고정 게임입니다. 그렇지만 가족 오락관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 테니 나영석 PD님이 최근에 만든 출장 십오야, 지구오락실 같은 프로그램을 예로 들게요. 두 사람이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쓰고 크게 노래를 틀어놓은 채로 제시된 단어를 설명하고 맞추는 방식입니다. 설명하는 사람도 맞추는 사람도 본인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기 때문에 목청껏 소리를 지르게 됩니다.


*정대만은 시합이 끝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승부사 캐릭터로 만화 <슬램덩크>의 주연 인물입니다. ‘포기를 모르는 남자 정대만’이라고 쓰인 컷이 유명해요.








커버 사진 : 사진은 실컷 먹다 나중에 찍어 가장 아랫부분만 남은 두부 피라미드의 잔해입니다. 이날 두부 큐브를 먹다가 영감을 받아 종종 두부를 에어프라이어에 구워 간식으로 먹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맛있었던 버전은 두부를 냉동실에 꽝꽝 얼렸다가 꺼내 식탁에서 반나절 정도 해동한 후 큐브 모양으로 썰고 물기를 톡톡 제거한 다음 소금 후추 간을 해서 에어프라이어에 30분 정도 굽는 레시피입니다. 바짝 구울수록 겉바속촉의 끝판왕이 됩니다. 두부가 어는 과정에서 부피가 커지고 기공이 생기기 때문에 식감이 정말 좋습니다. 소스를 잘 빨아들여서 샐러드나 파스타에 넣어도 훌륭한 메인 재료가 됩니다. 만약 시도해보신다면 굽는 시간은 취향에 따라 20분 기준에서 줄이거나 늘리거나 하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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