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주말마다 카페 알바를 시작했거든. 혹시 근처 오면 한 번 들러보라구. 디카페인 커피도 맛있단다.
-너무 좋은데! 카페 위치랑 너 있는 시간 알려줘!
시작은 이러했다. 커피를 좋아하는 친구가 동네 카페에서 직접 커피 내리는 일을 배웠고, 맛있는 드립 커피를 내려주겠다며 커피를 좋아하는 나에게 연락해 온 것이다.
보름 정도가 지난 여름, 근처에 갈 일이 생긴 나는 친구가 있는 카페에 들렀다. 가오픈 기간이었던 카페는 조용했다. 친구는 사장님과 함께 키오스크에 올릴 커피 메뉴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하얀 배경과 키 큰 조명 두 세트가 설치된 테이블 옆에 선 친구는 니콘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며 커피가 놓인 쪽으로 조금 다가갔다가 고개를 기울여 실체를 보고, 살짝 물러섰다가 다시 뷰파인더를 보며 구도를 잡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친구와 나는 대학 시절 각자의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출사를 다니곤 했다. 해가 노랗게 기운 선유도 공원, 빨갛게 단풍이 들었던 이촌 한강변, 크고 작은 화분이 늘어서 있던 연희동 골목의 풍광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쳤다. 서로의 사진을 보며 멋지다는 감탄을 주고받던 날들도.
분주한 친구와 사장님에게 짧게 인사를 전한 후 구석 자리에 앉았다. 오전에 들었던 의견을 복기하며 원고를 읽었다. 글이 인쇄된 종이에 연필로 퇴고할 내용을 끄적이다 결국 블루투스 키보드를 꺼냈다. 스마트폰에 메모 앱을 켜두고 문장을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곧 사진 촬영을 마친 친구가 '디카페인이야' 하며 드립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친구의 말을 믿고 기대를 했는데 기대보다 더 맛있었다. 보통 기대를 키워두면 실망하게 되는 법인데. 하여 기대와 실망은 내 언어 창고에서 실과 바늘처럼 붙어 다니는 단짝이기도 한데. 맛이 있다니. 커피를 좋아하지만 카페인에 민감해서 오후엔 커피를 마실 수 없거나, 특정 시점부터 어떠한 연유로 아예 카페인을 섭취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공감할 것 같다. 디카페인 드립 커피가 향긋하고 맛있는 카페는 흔치 않다. 그래서 나는 이곳이 썩 마음에 들었다. 어차피 한 달에 한두 번 근처에 올 일이 있으니 그때마다 오게 되겠구나 생각한 참이었다.
-작가님! 혹시 주말 오후에 카페 일 도와줄 수 있으세요?
손님이 방문해 잠시 저쪽 테이블에서 대화를 나누던 사장님이 다가와 물었다. 친구가 내 소개를 하며 카페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설명하던 장면이 기억났다. 다짜고짜 받은 질문이었지만 긴 고민은 하지 않았다. 2023년 올해 나의 목표가 ‘에라 모르겠다! (일단 해보자)‘였기 때문이다.
-주말에 고정 일정이 있는데 시간 조율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고 가능하면 도와드릴게요!
시간 조율은 생각보다 쉽게 되었다. 가능할지 타진하려 했던 질문이었는데 일사천리로 일정이 오전으로 변경되었다. 애를 쓰지 않았는데. 이렇게 술술 풀릴 수도 있구나. 오랜만에 느낀 감각이었다. 마치 나더러 주말마다 이곳에 있으라고 온 우주가 돕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란 인간이 정기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투여해야 하는 일을 이렇게 경쾌하고 간단하게 결정한 적이 있었던가. 인생을 통틀어 없었다. 문득, 한해 목표와 별개로 나의 직관을 너무 믿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점검해 보았다.
1. 커피가 맛있다. 그냥 맛있는 게 아니라 굉장히 맛있다. 디카페인이 맛있을 정도면 다른 원두의 퀄리티는 보장되어 있다. 맛없는 커피는 권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오케이. 2. 친구가 이곳을 좋아하고 아낀다. 현재 나의 조촐한 관계 집단 안에 남아있는 사람은 오랜 세월에 걸쳐 나와 비슷한 결로 크게 어긋나지 않고 서로 일정한 거리에서 안녕을 확인하며 잘 공존하여 살아온 귀한 인간들이다. 이들이 애정한다면 그게 무엇이든 나도 대체로 애정할 가능성이 높다. 3. 사장님이 커피에 진심이고 자부심이 있다. 무언가에 진심이며 그것을 사랑하는 데 공을 들이는 사람의 얼굴에 드러나는 활기와 반짝임을 나는 좋아한다. 그런 사람이 있는 곳에는 오래 있을 수 있었다. 소속되어 있던 곳을 뛰쳐나오는 일을 거듭하던 이십 대 시절을 돌이켜 보면, 비교적 장기간 머무를 수 있던 곳은 늘 배우고 싶은 반짝거림을 지닌 사람들이 있는 공간이었다.
삼십 년 넘게 데리고 살면서 나는 이제 나를 조금은 알아가고 있는 것일까. 예상대로 나는 주말마다 맛있는 커피를 마실 생각에 기분 좋게 일어나 출근한다. 매주 새로운 원두를 경험할 기대와 함께 출근길에 오른다. 커피 내리는 일이 즐겁고 낯익은 단골손님이 하나 둘 늘어가는 것도 뿌듯하다.
아직은 손님 없는 날이 잦은 우리 카페의 앞날을 위해 친구와 함께 전략을 도모하는 일이 즐겁다. 덕분에 먼지 쌓인 카메라를 다시 꺼내서 들고 다니고 있다. 사장님이 지키려는 가치와 철학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고 실행에 옮겨보는 모든 시도와 시행착오들이 재미있다.
사장님은 로스팅이나 강의 일정으로 매일 바쁘기 때문에 아주 가끔만 마주칠 수 있지만 사장님에게 듣는 커피에 대한 이야기나 사장님이 여러 일을 거쳐 커피에 닿게 된 삶의 궤적을 듣는 일이 감사하고 좋다.
쓰고 보니 다 좋다고만 썼다. 다 좋을 순 없고 안 좋은 순간들도 물론 있다. 무례한 손님이라든가 갑자기 나만 조선시대에 떨어진 건가 싶을 정도로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손님을 만나게 되는 날도 있다. 그러나 이십 대 초반에 카페에서 일하던 나와 달리 지금의 나는 그들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그 상황을 통과한 나를 어떻게 정화해야 좋을지 알고 있다. (이렇게 쓰면 몹시 무적 같지만 그렇진 않다. 언제든 다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고, 다쳤을 때 나에게 잘 드는 약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뿐, 다치는 일은 늘 피하고 싶다. 나으려면 시간과 에너지가 평소의 배로 들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리하여 지금은 아주 좋다. 매 순간 좋기만 할 순 없겠지만,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들을 체에 잘 걸러 좋은 것들만 모아 보관해두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친구와 같이 매거진을 쓰는 일도 사진을 찍어 굿즈를 만드는 일도 실은 아주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취미를 되찾은 느낌. 나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이 아니라 나의 시선으로 일상을 꾸리는 삶에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