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선정 기준
대학원 진학 결심이 서자마자 나는 영국 대학원들을 알아봤다. 보통 한국이나 그도 아니면 미국으로 많이 가는데 영국 대학원을 선택한 이유들이 몇 가지가 있다.
한국 대학원? 일까지 그만두고 한국에서 석사를 나오기에는 균형의 무게가 어긋났다. 득 보다 실이 더 클 것이란 얘기다. 한국에서 학부를 나왔을 때 얻은 것도 많고 배운 것도 많았으나 석사 인생이 예상이 갔다. 똑같은 교수님, 비슷한 수업, 그리고 무엇보다 비슷한 커리큘럼. 학부 때와는 물론 비교도 안 되게 어렵고 험난하겠지만 그래도 우물 안 개구리인 것은 비슷할 것 같았다. 더 큰 세계를 경험하고 더 큰 학위를 따고 싶었다. 그리고 색다르고 험난한 도전을 하는 것이 해가 바뀌면 바뀔수록 더 어려워질 것이 자명했다. 한시라도 빨리 세상에 몸을 부딪혀보고자 했다.
미국 대학원? 상당히 매력적인 선택지다. 풀도 많고 인맥도 많고 나중에 연줄로 사용하기에도 미국 대학원 나오는 게 더 유리할 것이다. 거기다 수백 가지 대학들에 박사를 갈 경우 장학금도 더 잘 나온다 (물론 몇 개의 대학 한정). 그러나 기간이 문제다. 나는 이미 한국 나이로 스물일곱. 빠르다면 빠른 나이지만 박사까지 생가한다면 나는 이르면 30대 중반 들어서야 박사 학위를 따게 된다. 거기에 조교 기간까지 더하면 이미 나는 결혼도 못하고 안정적인 자리도 잡지 못한 때늦은 인간이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신사의 나라, 영국이다.
영국은 석사가 1년, 박사가 4년 정도 된다. 물론 박사의 경우 길어질 거면 훨씬 더 늦어질 수 있다. 그리고 작은 나라. 포쉬 한 영어발음. 조금 더 심적으로 끌렸다. 물론 비용은 많이 든다. 월세랑 물가가 하늘을 찌르는 나라니까. 그래도 후회 없이 몸을 던질 거면 확실하게 던지고 싶었다.
나라를 정했으니 대학을 정할 때였다. 미디어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들을 알아봤다. Cambridge, KCL, UCL, Warwick, LSE 정도로 추려졌다. 그중에 제일 가고 싶었던 곳이 Cambridge와 LSE였다. 캠브리지는 미디어 과가 따로는 없지만 사회학과 안에 미디어를 부가적으로 가르치는 커리큘럼이 있었다. LSE는 대놓고 과 이름이 Media and Communications였다.
유학원을 이용하지는 않았다. 괜히 돈만 나가고 큰 도움은 안 될 것 같았다. 무료 상담을 통해 여기 있는 대학들을 지원해도 괜찮은지 물었고 30만 원 주고 기본 템플릿만 얻어왔다. 여기 대학들 다 넣을 거면 300만 원 넘게 깨지더라. 그 정도 값어치는 못할 거라 확신했다.
그리고 교수님들께 추천서를 부탁했다. 하루는 휴가를 쓰고 학교에 직접 찾아가서 부탁드렸다. 졸업한 지 3년 넘었고 교수님들 수업 들은 지는 5년도 더 됐다. 추천서를 부탁드리기 민망했으나 어떡하겠는가. 싹싹 빌면서 부탁드려야지. 그렇게 두 명의 교수님들께서 너무나도 감사하게도 날 도와주시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안 그래도 바쁘셨을 텐데 감읍할 따름이다. 그 은혜는 두고두고 갚아야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퇴근 후에 그 당시 남자친구와 카페에 가서 12시까지 Research Proposal과 Statement of Purpose (SOP), CV, 그리고 과제 에세이를 작성했다. 생각보다 꽤 오래 걸렸다. KCL과 Warwick의 경우 과제도 내줬기에 조금 더 걸렸다. 퇴근 후 피곤은 했지만 열정이 컸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었기에 더 가능했다. 그때의 남자친구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2021년 9월부터 준비해서 12월까지 서류들을 냈다. 그리고 2022년 1월, Cambridge, KCL, Warwick, LSE에서 합격 통지서가 날아왔다. UCL만 떨어지고 나머지는 다 붙었다. IELTS의 경우 7.5가 나왔는데
Reading과 Listening에서 높은 점수가 나오고 Writing이 6.5가 나왔다. Cambridge는 모든 점수에서 7을 최소 단위로 두기 때문에 조건부 합격이긴 했다. 그래서 2월 말에 바로 다시 봐서 IELTS를 8로 올리고 모든 점수를 7 이상으로 받았다. 그렇게 모든 조건을 다 맞췄다.
합격한 대학들 중에 어디를 갈까 고민을 많이 했다. Cambridge와 LSE 중에 고민이 됐다. Cambridge는 명실상부 세계 제일의 대학들 중 하나다. 대신 사회학과 안에 미디어가 있어서 커리큘럼이 예상이 안 갔다. LSE의 경우 레벨은 조금 떨어질 수 있으나 미디어 관련 학습체계와 교수진이 확실했다. 4월까지 고민이 계속 됐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과도 과지만, 세계 최고 대학이 어떤지 한 번 경험이라도 해보자. 석사는 어차피 1년. 짧고 금방 갈 거다. 사실 Cambridge의 경우 석사 프로그램이 9개월로 엄청 짧았다. 짧고 굵게 시도를 할 거면 모험이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2022년 가을, Cambridge 캠브리지 대학으로 석사를 가기로 했다.
은행은 2022년 9월 중순까지 다니고 9월 19일에 바로 한국을 떴다. 지점에는 8월 초에 퇴사를 통보했다. 혹시 몰라 휴직을 하고 싶었으나 은행 인사부에서는 안 된다 통보했다. 휴직이 안 된다면 퇴사를 해야지 어쩌겠나.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은행을 다니고 모두의 응원 속에 퇴사를 하게 된다.
짜릿한 순간이었다.
퇴사를 해서 짜릿했다기보다 내 인생에서 다가올 최고의 순간들이,
그 기대감이 짜릿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