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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git May 10. 2018

문구: 모으기보단 쓰는게 제맛

제 필통속 친구들을 소개합니다.

어릴때는 필기도구를 너무 좋아해서, 중고등학교때부터 큰 필통을 두세개씩 들고다녔다. 색펜과 얇기가 각기 다른 볼펜, 샤프들을 필통마다 다르게 넣고 노트필기를 예쁘게 하고 그림을 열심히 그리기 바빴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저런 문구들을 사서 쓰고 모으기도 했는데, 어느순간 매번 쓰는 필기도구만 쓰고있다는 걸 알게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필기도구를 만나고, 그녀석과 친해지는것은 정말 소중한 경험이다. 


 

1) Pentel 제도샤프 

펜텔제도샤프는 샤프 바디의 색을 다르게 해서 심 두께를 구분한다. 0.3밀리는 갈색, 0.5밀리는 검은색, 0.7밀리는 파란색, 0.9밀리는 황토색 바디를 가졌다. 바디 색이 제일 마음에 드는건 0.7밀리이지만 고등학교때부터 지금까지 0.3밀리 갈색 제도샤프에 정착하고 있다. 0.3밀리 샤프는 조금만 힘조절을 잘못해도 샤프심이 톡 부러져버린다. 적당한 힘, 적당한 긴장감을 가지고 쓰지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별로 힘을 주지않고, 슬슬 쓰다보면 글씨도 흐름도 가장 좋은것이 0.3밀리라고 생각한다. 


 

2) 플래티넘 #3776 UEF 

언니에게 몽블랑 만년필을 물려받기도 했고, 라미와 파이롯트등 다양한 만년필을 써봤지만 가장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는 모델은 플래티넘 #3776 UEF 이다. 어떤사람은 이런 극세촉 만년필은 만년필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쓸때 오랜기간 하나의 만년필을 쓰다보면 나만의 그립감, 필감이 생기는걸 알 수 있다. 똑같은 모델을 세개나 가지고 있는데 사용한 기간에 따라 손에서 느껴지는 익숙함이 다르다. 

만년필을 쓰면서 알게되었다. 만년필이 친구가 될 수 있다는것을. 손에 익은 펜으로 일기를 쓰는것과 필기구통에 있는 아무 볼펜으로 일기를 쓰는것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3) 하마터면 이별할뻔한 깅어가위 

예쁜 칼이나 가위를 보면 지나치지 못하고 꼭 사게 된다. 금색 손잡이의 날카로운 가위날을 가진 깅어 자수가위는 필통속에 항상 넣어다니는 물건이다. 가격과 상관없이 나에겐 소중한 가위라서 가죽가위집에 항상 넣어두고, 혹시 실수로 떨어뜨려 가위날이 휘어지기라도 할까봐 항상 긴장하며 쓰는 물건이다.  

한번은 해외여행을 가면서 필통에서 빼두는것을 잊고있다가 공항검색대앞에서 기억하는 바람에 포장비와 택배비를 엄청 들여서 집으로 보내고 해외여행을 간적이 있다.  

조그마한 가위는 평생쓸것을 찾았지만, 조금 더 큰 문구가위는 아직도 평생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다른 문구들과 어울리고 내 맘에 쏙 드는 가위를 어서 찾고싶다. 


 

4)필기구가족의 집, 필통 

강샘에게 선물받은 녹색 땡땡이 필통은 가볍고 친절한 느낌이다. 어질러진 책상위에도 예쁜 까페에서도 뭔가 모르게 반짝이는 느낌이 든다. 캔버스 천으로 만든 필통일뿐인데 볼때마다 신선한 느낌이 든다. 아마 혜진샘에게 선물받은 예쁜 세월호 리본이 달려있어서 그런것일까? 필기구도 중요하지만 필통도 무척 중요하다. 

어릴땐 어쨌건 많이 들어가는 필통이 좋았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많은 펜을 넣기보다는 내가 함께하고픈 몇개의 펜과 문방구들을 넣을 수 있고 가볍고, 필기구가 훼손되지 않으면서 편안한 느낌이어야 한다. 쓰고보니 내가 참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5)아주 가끔 필요해도 예쁜자가 있으면 좋지. 미도리 황동자 

미도리 Brass 시리즈의 여러물건을 샀었지만, 가장 활용도가 높은것은 이 황동자뿐이다. 볼펜도 연필도 나의 필기구에 대한 까다로운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지만, 이 자는 꽤 오래전에 샀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만족스럽다. 차가우면서 따뜻하고 묵직하지만 부담스럽지 않다. 다만, 사용하고 나면 손에서 묘한 냄새가 난다는것만 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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