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도면 굿이지.
1.
집에 돌아와서 태풍전 준비를 위해 사온 식재료을 냉장고와 찬장에 넣고, 무심코 바깥을 바라보았는데 세상에나! 달이 뜨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보름달. 우리집 부엌의 통창, 담장 너머로 뜨고있는 노랗고 동그란 달.
이집으로 이사오고나서 '정말 이사오길 잘했어!'라고 매번 느끼는 그 달을 오늘도 본다.
사진으로 찍으면 그 풍성하고 부드럽고 차가우면서 따스한 그느낌이 왜 남지 않는걸까?
다락방에서 봐도 예쁘고, 데크에 나가서 봐도 예쁘고, 계단을 올라가며 봐도 예쁜 달.
오늘 다시한번 생각한다. 이집에 이사오길 잘했어.
2.
계획하지 않고 하고싶은것들을 하면서 살았다. 반대에 부딪히면 직선은 아니더라도 쭈욱 둘러가더라도 하고싶은건 왠만치 다했던것 같다. 엄마말씀으론 '뭔가 징한데가 있는' 아이라고도 하셨지. 근데 착착 계획을 세운대로 어떤 기준에 맞춰 살지 않은것은 참 잘한일 같다. 뒤죽박죽 좌충우돌 살면서 이상한일도 어려운일도 많았지만 결국 그런일들을 해결하고 또 그 다음단계로 넘어가고 하면서 그런것들을 즐기는 사람이 된것 같다. 온실속 화초의 삶보다는 인디아나존스의 삶을 택했다고 보면 되려나. 더 나이들면 어쩔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진 뭐 이대로도 즐겁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3.
책이 마무리 되었다. 이제 진짜 인쇄만 남은것 같다.
내가 할수있는 일은 없고, 이제 다음으로 달려가거나 좀 쉬거나 하면 되는데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뭘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뭐 그렇다고 특별히 달라질것도 없으니, 그냥 예전처럼 그림그리고 놀고 풀뽑고 동물들 밥주고 하면 되지 뭐.
4.
텃밭에 심어놓은 모종에서 흙수박 한개가 작게 달렸다. 집에서 키운 수박이라니. 그것도 흙수박. 몇개가 더 달렸으면- 하고 바라기도 하고 옆에 심은 사과참외도 주렁주렁 열리기를 기대해본다. 그전에 세마리 닭들이 쪼아먹지 않도록 신경써야겠지만. 새로운 작물을 키우는건 기분이 너무나 새롭다.
5.
샤워를 하고 나와서 집이 너무 더운것 같아서 에어컨을 틀까마까 하면서 포털사이트를 들락날락거렸다. 누군가가 오늘 너무 시원하다는 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창문만 열면 되는데, 그걸 남이 쓴 글을 보고서야 알게되다니. 비가 오는것도 창밖을 보지않고 휴대폰의 날씨앱을 보게된 습관. 바깥이 시원한지 더운지를 인터넷을 통해서 알게되는것. 이러지는 말아야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