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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git Jul 17. 2019

내 할머니

할머니를 보고싶은 계절.

나는 외할머니를 사랑한다.

아마 가장 높은 순도로 할머니를 사랑하는것 같다.

할머니는 몇년전 돌아가셨고, 나는 할머니의 장례식장에도 가지 않았다. 할머니가 없는 곳에 갈 필요가 없고 , 친척들과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짜피 할머니만 사랑하는거지, 친척들은 보고싶지도 않았다. 잘 돌보지도 않았으면서, 할머니가 뭘 좋아하는지도 몰랐으면서 거짓으로 슬퍼하고 봉투를 챙길 어른들이 싫었다.


할머니는 결혼하고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 과부가 되고나서 혼자 아이들을 키우면서 늙어갔다. 남편이 죽고나서 풍요로웠던 상황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외롭고 또 외로운 절벽끝의 인생이었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멋부리기를 좋아하는 여자로 태어났지만, 그럴 상황도 안되었고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저, 상황도 안되면서 엄마는 왜저러느냐는 못된 자식들의 비율이 더 높았다. 그런 자식들밑에서 자란 손주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것이다. 


나는 언니와 남동생 사이에 서로 터울이 많이 지게 태어난 딸이라 친할머니, 그러니까 엄마의 시어머니에게 차별을 꽤 받고 자랐다. 언니는 큰 딸이라, 동생은 남자아이라 차별하셨는데 얼마나 나를 다르게 대하시는지 아주 어린 나이에도 느낄 수 있었다. 어릴적부터 나는 매우 이상한 - 어른을 무서워하지 않고, 궁금증이 많은 - 아이였기때문에 친할머니처럼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 왜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는지 궁금했었다. 아마 철없이 그런걸 직접 물어보기도 했었으려나? 기억은 없지만 가능성이 없는것은 아니다. 


외할머니는 달랐다. 경제적으로는 어려우셨지만, 같이 시장에서 돌아오는길에 기름떡볶이를 사주시거나 떡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떡을 만들어주시기도 했다. 어찌보면 참 별거아닌 소소한 행복인데, 그게 나한텐 무척 소중하고 좋은 기억이었다. 여름에 만들어주신 밑단 장식이 달린 인견 잠옷이나 예쁜 비단 이불같은것을 생각하기만 해도 할머니 냄새가 나는것같아서 기분이 뭉클해진다.


할머니는 내 인생에서 정말 큰 지지대였다. 어렸을때도 항상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면 어떻게하지? 라는 걱정을 하면서 살았던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때는 할머님이 돌아가시는데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며, 내 생명을 나누어서 할머니를 살리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 꿈에서 할머니가 돌아가실까봐 얼마나 울었는지, 꿈을 깨고도 엉엉 울고있던 내모습을, 그 절박했던 감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나이가 들고 할머니한테 서운한 일도 또 기뻤던 일도 많았지만, 할머니가 더더더 나이가 드시고 치매증세가 심해지면서부터는 마음이 정말 복잡해졌다. 나는 할머니가 좋지만, 할머니가 너무 고생하는게 싫었다. 예쁜것을 좋아하고 뭐든 멋부리는걸 좋아하는 할머니를 쓸모없는 살덩이처럼 두는것이 화가 났다. 할머니가 소중하게 아낀 물건들을 아무데나 아무렇게나 버려두고 관리하지 않는것이 싫었다. 여름엔 덥게 겨울엔 춥게 계실 할머니가 너무 불쌍해서 얼른 돌아가시게 해달라 기도를 했었다.

할머니는 몇번의 끔찍하게 더운 여름을 치매속에서 보내시다가 몇년전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감사기도를 했다. 고통스런 상황을 고통이라 인지 하지 못하는,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닌상태로 살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벗어나 예쁘게 기억되기만 하면 되는 우리 할머니로 되돌아가신게 좋았다. 그리고 다음생에는 예쁘게, 할머니가 좋아하는 멋진 옷과 맛난 음식을 먹을수있는 좋은집에서 사랑만 받는 사람으로 태어나길 기도했다. 


이렇게 습하고 더운 여름날엔 할머니 생각이 난다.

할머니, 거기는 시원해? 거기선 멋을 좀 부리고 있어?

사랑해. 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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