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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의 기술

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연습

by Vegit

나는 설겆이를 좋아한다.

내가 이사왔을때 모두가 식기세척기 구입을 추천했지만,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설겆이 - 집안일 중에서 그렇단 이야기다 - 를 다른 기계가 대신한다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난번에 이야기 했던것처럼 단기간동안 언니와 조카와 함께 살고있으면서 나의 생활은 뒤죽박죽이 되었다.

나는 냄비 바닥이 반짝반짝 해질만큼 닦아야 하고 건조대에 그릇을 올려두는 형태까지 내 맘에 들어야 하고, 음식을 할때도 재료를 적게 넣고 원재료의 맛을 충실히 느끼며 먹는 편이라고 하면 우리언니는 좋은 재료를 왕창 넣어 건더기가 충분하게 풍성한 맛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설겆이도 후의 그릇들도 쌓는 방식자체가 나랑 다르다. 이렇다보니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규칙이 있는 나만 마음이 계속 힘들어지고, 그 힘듦이 쌓이고 또 쌓이는 느낌이랄까.


언니와 살아보면서 생각한다.

언니는 다른 누군가와 살 수 있는 사람이지만 나는 다른 사람과 살 수 없는 사람임을. 어릴적부터 집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살아온 나도 정리를 잘 못하는 편이지만, 나는 나름대로 규칙이 있다. 아마 언니도 언니만의 규칙이 있긴 할텐데 내 집을 언니만의 규칙으로 만드는것을 참기가 힘들었다. 다만, 언니는 다른사람의 스타일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너는 그렇게 하는구나~' 하고 별로 신경쓰지 않는 반면에 나는 나의 공간에서는 내가 원하는대로 되어있어야 하고, 내가 다른곳에 가면 그 사람 또는 그 공간의 룰을 깰까봐 항상 노심초사한다. 그래서 내 집이 편하고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좋다.


맘편한 언니와 생활하고 있으니 마음급한 나만 더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리고 언니와 조카는 공간과 시간을 마치 베짱이처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라 더더더 내가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조카를 보고있으면 여유있고 다정한 조카의 성품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수있다. 내가 짜증을 내거나 혼을 낼때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이모, 그런데 전번엔 이렇게 말하지 않았어?" 하거나 엄마에게 "오늘 이모 기분 안좋은가봐." 라고 말해서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들때가 있다. 이럴때 마다 마음을 천천히 다스리자.. 마음먹고있지만 그래도 자꾸만 조급해지는 마음때문에 또 난 뭔가, 이게 뭐하는짓인가 싶기도 하다. 어린이 보기에 좀 이상하고 수준이 덜된 어른처럼 보일까봐 그것도 좀 싫다.


사실 나와 맞지 않은 생활 패턴을 가진 사람이 둘이나 함께 있을때는 내가 잠시 그들에 맞추어 내 패턴을 바꾸는게 더 맞는 일이다. 마음속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그게 맞는데도 내 방식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살짝 눈감거나 내가 좀 더 부지런하면 되는데 계속 재촉하게 된다.


결혼하는 사람들, 또는 같이 살기로 한 사람들사이의 다툼이 왜 생기는지 알것만 같다.

사실 아주 표면적인것만 아는것이다. 완전히 다른 세상의 둘이 만나는건 이것보다 더더더 어려운 일이겠지만

내 세상에 다른 세상이 겹쳐진다는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는 경험중이다.


오늘도 언니는 나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수건을 걸고, 옷을 두고, 부엌에서 이것저것을 사용할것이다.

아마 언니도 내 방식중에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을것이다.

타인의 방식을 이해하는것, 그리고 그것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것이 나이들어가는 내게 2020년 1월에 신이 주신 목표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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