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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git Mar 01. 2021

할아버지의 오래된 태극기

삼일절이라 태극기를 꺼내보았지

나에게는 귀한 태극기가 하나 있다.
내 취미이자 욕심은 역사가 있는(그것이 내 가족의 것이든 내 주변의 누군가의 것이든) 옛 물건들을 얻어와서 쓸 만큼 쓰거나 잘 두는 것인데 남 주기는 그렇고 집에 놔두자니 그런 할머니 할아버지의 옛 물건들이 우장창 나에게로 넘어오면서 발견하게 된 것이 바로 이 태극기다.

나는 외할아버지와 친할아버지 두 분 다 일찍 돌아가셔서 나에게 할아버지라는 존재는 그냥 상상 속의 용 같은 것일 뿐이었다. 아니 용보다는 좀 가깝겠지만 그래도 할아버지와 나눌 수 있는 대화나 추억 같은 것들이 상상이 가지 않는 상태랄까. 어쨌건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교류 없던 친척들이 할머니 물건 가지고 싶냐고 하시는 바람에 얼른 '보내만 주시라!' 고 하고 받아보니 쌀뒤주부터 이것저것 아무렇게나 보관되어 곰팡이 냄새가 나는 물건들 중에 태극기가 하나 있었다. 여러 가지 물건을 얻어 온 것들을 나중에 엄마가 놀러 오셔서 보시더니 '어머 이거 우리 아빠 태극기네!'하고 반가워하셨다. 할아버지 인생의 짧은 조각을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할아버지는 이 태극기를 가지고  짧은 기간 독립운동에 참여하셨더란다. 그래서 중국, 만주까지 가셨지만 어렵기도 어려웠을 거고, 또 편지를 할머니한테 보내고 답신을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를 않자 걱정되는 마음에  할머니한테 무슨 일이 있나.. 하고 다시 먼길을 돌아왔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숙소의 중국인 주인장이 할머니 사진이 이쁘니까 편지를 전달하지 않았던 것........(할머니는 정말 미인이다. 나는 할머니의 예쁜 점을 전혀 닮지 않았다. 왜지?) 이 중국인 숙소 주인장 놈 때문에 우리 할아버지의 독립군으로서의 역사는 그렇게 마무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여하튼 예전엔 '할아버지 사랑꾼이네~' 하고 말았었던 그 이야기를 오늘 다시 생각해본다. 짧던 길던, 한순간이나마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고 마음먹었던 사람들 중의 하나가 우리 할아버지였고, 그 손녀인 나는 할아버지처럼 불의를 못 참고 개기는 어른이 되었다. 아마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같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을 것 같다. 짧게 또는 길게, 목숨을 걸고서 정의를 지키려던 사람들이 이 나라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비굴하게 돈이나 권력에 빌붙어 먹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있어도 결국 우리의 정의로운 DNA가 남아있는 사람들에 의해 더디더라도 꾸역꾸역 정의롭고 바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엄마는 가끔 '너 우리 아빠 태극기 잘 보관하고 있지?'라고 물어보신다. 엄마도 잊고 있던 태극기를 딸이 챙겨놓는 것이 좋으신 듯하고 또 태극기 이야기를 하다가 지금 있는 미친 떼기 같은 친일파들 욕까지 쭈욱 이어지는 끝나지 않은 독립운동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다. 엄마도 할아버지가 하고 싶던 그 일의 마무리를 짓고 싶으신 거겠지.

여하튼 인간답게 살고 싶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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