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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git Jan 27. 2021

겨울밤엔 밤이 좋아

매일 밤, 군밤을 먹고있습니다.

밤이 맛이 없는때는 없다. 

삶은 밤도, 구운 밤도 심지어는 생밤도 좋다. 

어릴땐 밤을 퍼먹다가 익어버린 벌레를 만나기도 했지만 - 그래서 그 이후로 밤을 싫어하게 되었다는 친구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 밤을 먹는것은 귀찮음과 맛있음을 동시에 느끼는 과정이라 더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수아가 보늬밤과 마롱글라세를 만드는걸 보고 나도 설날즈음 먹게 보늬밤이나 만들어볼까.. 하고 밤을 2킬로 샀다. 그래도 밤을 만났는데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수 없어서 무쇠냄비로 군밤을 만들었다. 


밤에 열십자 모양으로 칼집을 내고 냄비에 맛있게 익으라는 주문을 걸며 밤굽기를 시작한다. 불을 조절해가며 무쇠냄비 사이로 올라오는 연기로 군밤이 얼마나 익었나를 상상하기도 하고 솥을 들어 한번씩 휘휘 흔들어서 밤과 솥이 닿는 부분을 바꿔주기도 한다. 

집안 가득 군밤연기와 냄새가 퍼지면 불을 살짝 끄고 한뜸 들인다. 사실 아무도 뜸을 들여야한다고 이야기 한 적은 없지만 그냥 내 생각에 무쇠냄비 안에서 잔열로 조금더 익히면 좋을거 같아서 하는 나만의 기다림 의식같은것이랄까. 

이정도면 잘 기다렸다.. 싶은 시간 즈음 조심조심 데이지않게 솥을 열면,  맛있게 구워진 밤을 만나게 되는거다. 


세상에나. 구워서 바로먹는 군밤맛을 내가 잊고있었던건가! 따뜻하고 부드럽고 달콤하고 뻑뻑한 이맛! 


군밤은 따뜻할때 율피까지 깨끗하게 까내서 한입에 털어넣고 우유와 함께 마시는게 제일 맛있다. 맨질맨질 노랗게 익은 군밤을 까다보면 손은 까매지고 손톱사이가 좀 벌어지지만 - 군밤을 너무 많이 까서 엄지손톱과 살이 벌어져버렸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밤을 굽고 까서 입에 털어넣는 나를 보면 전생에 다람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속이 노랗게 맛있게 익은 밤



결국 보늬밤을 만들기도 전에 군밤으로 2킬로를 다 소진해버렸다. 그리고 새로 밤을 주문했다. 

아마도 새로 오는 밤도 군밤이 될 확률이 크지만, 내가 맛있게 먹을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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