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수확하지 않으면 벌레가 다 먹어버린다구
올해까지만 운영하기로 한 텃밭은 수확과 정리를 동시에 해야한다.
특별히 지금 식물들을 이사시키지 않더라도, 어떤 식물이 있는지 확인하고 뿌리채 이사시킬 식물과 그냥 씨만 받아갈 식물들을 구별하고 시기나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우리가 이사가고 나면 땅 주인아저씨는 밭을 다 갈아엎을거라서 식물 하나하나가 애틋하다.
텃밭에 갈때마다 이것저것 수확을 하고 있지만 이번에는 땅콩과 콩을 집중적으로 수확했다.
검은땅콩과 우도땅콩을 심었었는데, 땅콩 주변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 예전에 떨어져있던 - 씨앗들이 씩씩하게 자라나는 바람에 나의 기대보다는 훨씬 못미치는 수확을 했다. 차조기가 나무처럼 자라나 땅콩의 성장을 방해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결국 담대한 마음으로 식물들을 정리하지 못한 나의 탓이다.
땅콩은 말 그대로 땅속에서 자라는 콩이다. 아카시아 잎처럼 끝이 동그란 예쁜 잎사귀가 한 줄기에 두개씩 두세트씩 자라는데 이런 줄기들이 여럿 자라면서 줄기 아랫쪽에 노란 꽃이 핀다. 이 꽃들이 있는 줄기를 땅에 묻어주면 더 많은 땅콩을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새로 늘린 땅의 흙이 너무나 딱딱해서 제대로 덮어주지 못한데다 차조기와 세이지가 서로 더 잘 자라겠다 경쟁하는 사이에서 검은 땅콩은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호미로 땅콩이 있을법한 부분 주변의 땅을 파내고 땅콩잎줄기를 움켜잡고 좌우로 슬슬 흔든다. 어느정도 느슨해진 기분이 들면 쑤욱 하고 줄기를 뽑아내는데, 뿌리에 동글동글 땅콩이 달려있다. 흙속으로 장갑낀 손을 넣어 손가락으로 수확을 놓친 땅콩알이 없는지 확인한다. 진짜 땅콩을 찾아내기도 하고 돌맹이를 땅콩으로 오해해하기도 한다.
땅콩은 비가 오기전에 수확을 하는게 중요하다. 수확시기를 놓치면 땅콩이 바로 씨앗으로 변신해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기 때문이다. 이렇게 타이밍을 놓쳐 새로 자라는 식물이 안생기는게 제일 좋다. 하지만 이미 싹이난 땅콩을 하나 발견해버렸다. 겨울에 실내에서 키워보려고 통에 넣어서 집으로 가져왔다.
검은 땅콩은 예닐곱알을 심어 열다섯개쯤 수확했을것 같다. 땅콩껍질을 까서 확인해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수확한 모든 깍지에 알이 제대로 차있을지도 아직은 알 수 없다.
우도땅콩도 방식은 비슷하다. 하지만 땅콩깍지의 크기가 작다. 깍지 크기가 작다는건 땅콩알의 크기도 작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말 맛있는 땅콩이라 물에 씻고 땅콩 깍지만 깨서 풋 땅콩으로 먹어도 맛이난다.
바로 수확한 땅콩을 먹는 신나고 맛난 기분을 글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우도땅콩은 씨앗도 더 많았기 때문에 수확도 더 많았다. 그렇다고 풍년이라고까진 말 할수는 없다. 내년에 새 텃밭에서 제대로 심어봐야지 마음먹는다. 내년에 심을 땅콩을 살려냈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콩과 팥도 무척 많이 수확했다.
콩줄기를 분명히 제대로 훑어가며 수확한것 같은데 자리를 옮겨 다른데서 콩을 따다가 아까 콩을 땄던 곳을 살펴보면 아직 남아있는 콩깍지들이 있다. 분명히 두번 세번 확인하고 자리를 옮겼다 생각하는데 왜 멀리서 보면 아직 남아있는걸까? 이쪽에서 콩을 따고 다시 저쪽으로 가서 남은 콩을 따다보면 여기저기 수확이 덜된 콩이 보여서 신경질이 나기도 한다.
콩 줄기가 애매하게 말라서 손으로 툭툭 따는건 어렵다. 작은 가위를 들고 깍지가 달린 줄기를 잘라내며 수확을 한다. 손이 작아서 대여섯개를 잘라쥐면 바구니에 넣고 다시 따야 하는데, 그게 별것 아닌것 같아도 상당히 귀찮다. 천수관음보살처럼 손이 많으면 여러개의 손을 쓸수 있으니 얼마나 편할까.. 같은 바보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콩은 움켜쥐어도 깍지가 터지지 않아서 안심이다. 하지만 팥은 조금만 세게 쥐면 깍지가 팡 터져 팥알이 이곳 저곳으로 날아가 버리기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팥과 콩, 녹두까지 꽤 많이 땄다.
수확을 하다보니 빗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진다.
가을에 이리 비가 많이 오니 콩깍지들이 얼룩얼룩 안예쁘다.
올해까지만 하는 이 텃밭.
마지막까지 놓치는 씨앗없이 잘 돌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