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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git Oct 12. 2021

텃밭을 하는 마음은

하마터면 기분나쁠뻔 했어

며칠동안 비가 많이 왔고 오후에는 또 일을 해야해서 새벽같이 밭에 갔다. 

10월이 훌쩍 넘어갔지만 그동안은 날이 따뜻했었다. 도톰한 긴팔을 입었지만 아침의 공기가 무척 차갑게 느껴졌다. 아침 공기만으로는 동장군이 저어기 멀리에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비가 갠 아침의 텃밭은 숨쉬는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세상 맑은 공기가 내 콧속을 지나 폐로, 그리고 온몸으로 퍼지는 느낌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장화로 바꿔신고 가드닝백을 들고 덜렁 덜렁 밭으로 걸어가다보니 나보다 더 일찍 밭에 온 사람이 있었다. 이런 쌀쌀한 날씨에 이렇게 부지런한 텃밭이웃이라니! 반가운 마음이 들어서 멀리에서부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돌아온 반응이 좀 떨떠름 했다. 뭔가 짜증이 가득난 얼굴로 한번 쳐다보고는 네~ 하고는 더 서둘러 작물을 수확하는걸 보고 괜히 의심병이 발동했다. 텃밭에 서리를 하러 오신 분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전초전일뿐… 가까이 가서 보고는 더 짜증이 났다.

계속 아무관리도 안해서 그밭의 풀이 우리 밭으로 계속 넘어오던, 작물정리를 안해서 우리밭으로 그림자를 옴팡 지게 했던 그 밭의 주인이었다. 그 밭에서 넘어온 풀들때문에 텃밭에 갈때마다 잡초를 얼마나 뽑아댔는데.. 좀 짜증이 났지만 그사람의 사정이 있는거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분은 자기 작물을 수확하면서 내 밭의 작물을 발로 밟아 짓이기고 있었다. 

예전에 듣기로는 농사를 매우 잘 짓는 분이라고 들었는데, 일행에게 계속 신경질을 내면서 내 밭의 작물을 밟아재끼는 이 사람이 진짜 이 농장에 어울리는 농부일까? 의심스러웠다. 설마.. 아는 분이 와서 수확해가는거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반대편 옆밭의 농부님이 오셔서는 “오! 오랜만에 오셨네요!”하고 인사를 하시는걸 보니 그분이 이 밭의 주인이 맞았다. 

한참 수확을 하다가 내가 자기 옆밭 사람인걸 이제야 깨달았는지 미나리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기가 들렸는데 뭔말인지 잘 들리지 않아서 몰랐다. 사람들이 더 오기전에 서두르고 싶었는지 급하게 정리를 하고 떠난 후에 보니 밭의 부추와 내 미나리가 밟혀 짓이겨져 있었다. 아마 자기가 밟아버린 미나리를 발견하고 미안해진 모양이다. 하지만 그분은 수확만 열심히 하고는, 머리가 내 밭으로 향해 씨앗을 떨어뜨리는 풀들은 정리하지 않고 서둘러 떠나버렸다. 

기분이 무척 상했다. 뭐 저런 사람이 텃밭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기좋고 햇살좋은 가을아침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때문에 망치고 싶지 않았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배추벌레를 잡고있었는데, 반대편 옆밭의 농부님이 말을 거신다. 


“기러기 소리가 듣기 좋아요. 이제 겨울을 지내러 오나봅니다.” 

“네, 요즘 밤마다 기러기가 오는 소리가 들려요.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텃밭에 와서 만나는 기러기들이 너무 반갑죠. 이런 즐거움에 텃밭을 하는것 같습니다.”


아까의 불쾌했던 기분이 옆밭 농부님 덕분에 싹 사라지고 내가 왜 텃밭을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도 얻은 느낌이다. 서로 밭일을 하며 이런 저런 수다를 더 떨었다. 옆밭 농부님은 나에게 상추와 배추를 넉넉히 따가라고, 요즘 배추가 전 부쳐먹기 딱 좋다 말씀하셔서 나도 내 밭의 아욱을 따가시라고 말씀드렸다. 

나중엔 아예 커다란 비닐봉투를 주시면서 사양말고 넉넉히 따가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먼저 밭에서 떠나셨다. 친구 어머님께 드릴 상추를 조금 따서 챙겼다. 그리고 옆밭 농부님 배추위의 배추벌레를 몇마리 잡아드렸다. 


만약 옆밭의 친절한 농부님이 안계셨다면 오늘 아침은 망한 기분이었을것 같다. 

농사에서 중요한게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수확해서 커다란 작물을 들고오는것이 기쁘고 뿌듯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웃과 좋은 기분으로 농사짓는것, 식물들을 잘 돌보는것, 내것뿐만 아니라 남의것도 소중히 대해주는것, 밭에 사는 모든 생물들을 가족처럼 여기는 마음을 가지는것이 나에겐 중요하다. 

나도 옆밭 농부님처럼 이웃 농부들에게 기분좋은 마음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네. 

옆밭에서 풀씨들이 넘어와서 계속 잡초밭이 되는 내 밭. 하늘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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