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생활은 타타타
아니, 10월에 한파가 왠말인가.
갑자기 새벽기온 0도라는 예보를 보고 함께 농사짓는 텃밭농부들이 걱정을 하고 또 했다. 다른 분들은 고구마는 다 수확해서 내가 '으익.. 고구마 아직 안캤어요!'라고 말할때 별 반응이 없긴 했지만(아직까지 안캐고 뭐했나? 생각할 수도 있을것 같다), 그동안은 따스한 날씨여서 이렇게 갑자기 날씨가 추워질 줄 상상도 못했다.
고구마를 여태까지 수확을 하지 않은덴 이유가 있다. 지난 초가을 혼자서 경작하는 새 밭의 풀을 정리해주시고 어떤 작물이 있을까 좀 지켜보았더니 고구마 순이며 파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풀머리들이 잘려도 생장점이 살아있고, 알맞은 햇살, 알맞은 기온, 적당히 내려주는 비와 영양가득한 땅들이 얼른 얼른 새 순이 자라게 해준거다. 파들은 확인이 될때마다 모종삽으로 파서 한쪽으로 조로록 옮겨 심었더니 멋지게 자라고 있다. 고구마는 잎이 다 잘려나가서 더 무성하게 잎을 내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원랜 며칠만 더 있으면 더 맛난 고구마를 먹겠지.. 하고 마음속 계산은 하고 있었지만, 자연의 뜻이 나와는 달랐다. 내가 자연의 뜻을 몰랐다고 하는게 더 맞겠지.
아침 일찍 든든하게 옷을 챙겨입었다. 겨울용 청멜빵바지를 입고, 얇은 옷을 여러겹, 거기에 스웨터, 패딩조끼까지 챙겨입었다. 공기가 차가웠지만 옷을 든든하게 입어서 춥지는 않았다. 밭에는 벌써 들깨를 터는 분들이 계셨다. 고구마는 처음 캐보는거라 약간 두근두근한 마음이 있었다. 항상 무언가를 수확할때 처음엔 실수할까봐 정말 소심해진다.
고구마 줄기를 살짝 들어보면 자주색 얇은 뿌리들이 보이는데, 이게 나중에 고구마가 되는 부분인가? 생각이 들었다. 뿌리 주변의 흙을 호미로 살살 파보았는데 뭐가 있는지 알기는 어려웠다. 새 밭의 흙은 영양분이 많아서 포실포실 촉촉한 느낌이 들고, 건강한 흙 향기가 난다. 호미로 흙을 파고 한쪽으로 긁어내며 고구마를 찾는다. 드디어 손가락 같은 고구마를 발견했다. 커다란 고구마가 아니어도, 자줏빛의 작은 고구마를 보니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내 마음이 말풍선같은걸로 보이고 이웃의 농부들이 그걸 본다면 깔깔 웃겠지만, 그때 그 마음은 정말 그랬다. 고구마를 부러뜨리지 않도록 흙을 살살 긁어내서 안전하게 흙에서 꺼냈다. 이런 작업들이 너무나 즐거워서 힘이 솟아난다.
처음엔 소심하게 살살 진행하던 작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터프해진다. 이젠 대강 어떤식으로 하면 될지 감을 잡았달까. 먼저 고구마줄기들을 걷어낸다. 뿌리가 단단하게 잡고있는곳엔 고구마가 있을수 있으니 흙의 움직임을 보면서 고구마 줄기를 쑤욱 뽑는다. 주변의 흙을 긁어내며 고구마들이 있는지 확인한다. 고구마가 부러지지 않도록 주변 흙을 살살 긁어내듯 제거하며 고구마를 꺼낸다.
커다란 고구마도 두개 찾았다. 제일 큰 고구마를 찾았을땐 너무 기뻐서 얼른 사진을 찰칵 찍었다.
손도 느리면서 월척에 대한 세레모니는 잊지 않는다. 처음부터 내가 키운건 아니지만, 잘 자라기를 수확의 기쁨이 있기를 항상 바랬는데 결과가 있어서 기분이 좋다. 아침 일찍 시작한 고구마 캐기는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서까지 계속되었다. 한평땅에 있는 고구마를 캐는데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릴 일인가 싶다가도, 나만 즐거우면 된거지! 라는 생각을 한다.
흙을 호미로 긁어내다보니 두더쥐 굴도 있다. 아마 고구마를 먹으려고 붙어있던 굼벵이를 잡아먹기위해 두더지가 출동한 것 같은데, 굴 근처의 고구마는 중간을 파먹은듯 패여있다. 누가 먹었든 잘 먹었으면 된거다. 두더지 굴은 파먹혀진 고구마를 중심으로 세갈래로 나뉘어있었다. 이곳에서 먹고 여기저기로 놀러간 두더쥐를 만나고 싶어졌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땅속으로 들어온 개구리도 발견했다. 손에서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흙속에 넣어주려다가 해가 좋아서 양상추 위에 올려주었다. 해있을때 얼른 놀고 땅속으로 들어가야할텐데.
고구마 줄기는 70리터쯤 되보이는 비닐봉투 두개에 가득 들어갈만큼 많았다. 고구마는 열댓개쯤 수확했다. 큰것도 있고 손가락같은 것도 있다. 수확을 마치고 나서 뒤를 돌아보니 흙위에 부전나비들이 앉아있다. 흙의 습기같은것을 빨아먹는것일까? 궁금해졌다.
고구마 수확을 마치고 우리집 콜라비와 브로컬리, 양배추에 붙어있는 배추벌레들을 잡았다.
지난번에 몇시간을 잡고 갔는데.. 오늘은 더 통통하게 살이 올라있다. 곧 고치를 지으려나 싶기도 하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밭에서 이렇게 작물들을 수확하고 있다보니, 타타타 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벌은 걸치는것, 나는 완전 수지 맞은 삶을 살고 있다.
텃밭을 한다는건 여러모로 행운이다.
계절을 알고 잊고있던 동물과 곤충도 만나고 맛있고 건강한 작물을 수확하는 기쁨이 있다.
물론, 이런 기후변화를 보면서 자연이 얼마나 다정하고 엄한지 느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