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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git Jan 14. 2022

엄마가 미안하네.

같은 이야기, 다른 시각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동시를 발견했다.  

세배를 하고 부자가 되었다 생각했는데 엄마가 그 돈을 도로 뺏어가서 서운하다는 내용이었다. 돈을 청소기로 빨아들이는 엄마와 억울하고 서운해서 울고있는 본인의 얼굴도 너무 귀엽게 그렸다.배경은 만원짜리랑 비슷한 초록색, 마음이 만원짜리로 가득찼다가 - 마치 도널드덕의 삼촌 스쿠르지맥덕이 금화풀장에서 헤엄치는 기분과 비슷하겠지 -  엄마로 인해 무너지는 느낌이었나보다. 봐도 봐도 공감이 가고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설날 예쁘게 차려입고 신나게 절만 하면 어른들의 지갑에서 지폐가 술술 나오는 즐거운 경험은 거의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해봤을거다.  완전히 부자가 된 기분, 뭔지 모르지만 든든한 기분으로 하루종일 맛있는것을 먹고 친척네 동네 골목에서 사촌들과 신나게 뛰어 놀다보면 금새 저녁노을이 진다. 저녁노을이 진다는건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단 뜻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가 돈 맡아줄게.”하시던 비장한 눈빛과 엄한 목소리를 듣는것이 참 싫었다. 어짜피 빼앗길 세뱃돈이겠지만 시간을 엿가락처럼 늘려 그 시간만큼은 오래오래 지난후에 맞이하고 싶었다. 

마음속으로는 ‘아, 이거 내돈인데..’하고 생각했었다. 억울하지만 엄마가 무서우니 일단 엄마께 드렸던 경험. 언니 동생과 억울함에 입을 삐죽대며 서로 눈으로 ‘이건 진짜 아니야!!’라고 말했지만 결국 세뱃돈은 모두 엄마의 지갑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뭐 그러고는 다시 평소처럼 연휴를 즐겼던 기억뿐이다. 

이 시를 엄마, 언니와 함께 수다떠는 톡방에 남기고 다들 “시가 너무 재미있다!”며 즐거워하며 옛 이야기를 나눴다. 이 어린이의 동시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우리 모두가 이런 경험이 있어서 더 공감이 간다는 이야기, “그때 엄마 너무 무서워서 안드릴 수 없었지!”하며 재미있는 추억이야기를 하고 있다 생각했다.

한참 가만계시던 엄마가 “엄마가 미안하네”라고 톡을 보내셨다.

언니와 나는 “응? 뭐가?”라고 다시 물어봤는데, 엄마가 “세뱃돈,  가져가서 미안.”이렇게 다시 쓰셨다. 

갑자기 머리가 띵했다. 우리는 그런 뜻으로 이야기한게 아니었는데, 같은 사건인데도 엄마와 우리는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나보다. 우리에게 세뱃돈을 가져가면서 엄마는 무서운 표정을 지은게 아니라 미안함을 숨기는 목소리와 표정이었을수도 있는데, 우리가 엄마를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언니가 얼른 “엄마, 그땐 그게 너무 당연했지. 친척집 애들한테 세뱃돈 주느라 나가는 엄마아빠 지출이 얼만데.”라고 답을 하고, 나도 “맞아. 우리도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어. 괜히 아쉽고 그런게 다 추억이지 뭐!” 라고 했다.



예쁜 우리엄마, 혜란씨



엄마는 “그땐 좀… 돈이 귀하고 좀 힘들었어.”라고 답글을 다셨다. 

어릴때의 기억이 그림처럼 떠올랐다. 설날 가족행사가 끝나고 난 후 돌아오는 길, 언니와 나, 동생은 엄마에게로 이 돈이 가면 돌아오지 않는다는걸 알고있었다. 세 남매가 뒷자석에 나란히 앉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스텔라88 안,  아빠는 피곤한 얼굴로 운전을 하시고 엄마가 조수석에서 뒤돌아보며 “엄마가 모아줄게, 세뱃돈 받은것 이리 줘.”말하는 장면이 생각났다. 없던 시절에 그래도 아빠의 체면을 살려주시려고, 또 우리가 좀 더 예쁨받게 하려고 어떻게든 지출을 줄여서 만들어낸 돈이었겠지. 아무도 몰랐던 엄마의 노력을 대번에 이해할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른이 되어보니 느끼는 어른만의 어려움이 있다.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고 괜찮지않아도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들. 아이가 좋아하는걸 알지만 그걸 서운하게 해야하는 미안함, 결국 모아주지 못하고 생활비로 쓰겠지만 그걸 엄마가 따로 모아준다 거짓말을 해야하는 상황의 곤란한- 어쩌면 자존심이 상해버린 엄마 얼굴이 어린 우리에겐 화난 얼굴처럼 보였던가보다. 


그런때에 어른이 어린이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이었을까? 예상보다 큰 지출은 어른들이 알아서 메우도록 하고 아무 문제없는듯이 아이가 해달라는대로 해주는것이 맞는것인지 아니면 아쉬운 이야기를 하는데 서툴렀던 우리 엄마처럼 화난듯 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엄마의 마음을 속이는것이 맞는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린날의 나에게 물어본다. 이 돈이 있으면 뭘 하고 싶었는지. 어린날의 나라면 바비인형을 하나 더 사고싶고 심장소리가 쿵쿵 나는 하트베어도 하나 더 사고 싶다고 대답했을거다. 대답을 하고 나서 집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아직도 어릴때부터 가지고 있던 작은 봉재인형들과 어른이 되어서 산 바비인형이 이곳 저곳에 있다. 인형을 좋아하는 나를 기억하고 남동생이 미국에서 사다준 깔깔 웃는 엘모인형도 있다. 

“어린 재준아, 너는 어른이 되어서 가지고 싶은걸 잊지않고 반드시 사게 된단다. 걱정하지 말아! 온 가족이 너를 위해 해외여행을 다녀오면서도 인형을 사다준단다. 세뱃돈이 없다고 서운해 하지 말아.”라고 말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어졌다.

그리고 내 나이의 젊고 가난했던 엄마에게 “혜란씨, 너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요. 아이들이 엄마를 모두 이해하고 있어요 그리고 어린이들은 서운한 마음도 금새 잊는답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엄마의 미안한 마음을 몰랐어서 내가 엄마에게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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