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보라 Sep 08. 2020

연애는 가끔 우리를 성장시킨다

연애는 좀 더 인간적이어서 성장통을 이길 수 있는 진통제도 함께 준다.

 나는 연애지상주의자다. 팍팍한 삶에 연애 한 스푼 정도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렇다고 해서 연애가 무조건 행복과 동의어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연애는 행복보다 고통을 좀 더 수반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맨몸으로 겪은 연애 쓰나미의 수재민 중 한 명이니까. 모두가 내가 연애를 시작했다고 하면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드는 걸 보면 내 연애의 모양새는 빤하다. 나는 연애를 시작함과 동시에 눈물이 많아지고 어리광이 늘며,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성적인 충동이 더 잦은 사람이 된다. 


 이처럼 연애가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연애를 한다. 그렇게 연애를 통해 끊임없이 상처받고 또 위로받기를 반복하면서 말이다. 이 끊을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는 아마 신이 우리에게 준 망각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아마 연애할 때의 모든 기억을 오롯이 기억하고 있다면 그 누구도 연애가 끝난 후 다시 연애를 시작하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연애의 끝은 아프고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을 만큼 괴롭다.


 하지만 연애지상주의자로서 내가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우리는 분명 연애를 통해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명제가 참이라면 이별의 아픔쯤은 일종의 성장통으로 퉁칠 수 있다. 우리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연애로 인해 평생 몰라도 될 누군가의 삶을 온 힘을 다해 이해해보기도 하고, 상대가 원하지 않아도 기쁜 마음으로 희생을 감당하는 법을 배운다. 서툴지만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꾹꾹 눌러 손편지를 쓰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상대방의 뿌연 마음을 소매깃으로 열심히 닦아가며 보려고 안간힘 쓰기도 한다. 그렇게 깨져버린 유리 조각처럼 날 선 이별의 아픔이 조금 무뎌지고 나면 분명 이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된 시간들이 쌓여 있음을 문득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단순히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만이 연애는 아닌 것 같다. 상대방을 위한 좀 더 깊은 고민과 성찰, 기꺼운 마음으로 하는 배려와 헌신,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통해 내가 느끼는 가장 순수한 질감의 기쁨까지. 이 모든 것을 수반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그리고 해야 하는 진짜 연애가 아닐까? 


 때론 서로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조금씩 자기 울타리를 양보해야겠지만 연애는 좀 더 인간적이어서 성장통을 이길 수 있는 진통제도 함께 준다. 물 한 모금과 함께 꿀꺽 삼키고 내일은 손가락 한 마디쯤 더 자란 자신을 마주하길 바란다. 사랑의 힘을 빌어 내가 아닌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 그건 생각보다 꽤 뿌듯하고, 또 보람직한 일이니까.




이전 21화 어른스러운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