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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보라 Sep 08. 2020

가장 추한 모습으로 사랑받고 싶어요.

사랑은 등가교환이 아닌데.


내 연애도 암흑기가 있었다. 남의 맘은 물론이고 내 맘도 내 맘 대로 되지 않고 제멋대로 널뛰어 내가 봐도 내가 참 사랑스럽지 않았던 그때, 어쩌면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할 만큼 더욱더 사랑에 매달렸었다. 사치스럽게 이상형 같은 걸 만들어 놓을 여유도 없이 나이가 많던, 좀 못생겼던, 성격이 지랄 맞던 그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면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었달까. 그런데도 참 이상하게 그땐 그렇게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 한 명이 없었다.  


 그때 나는 사랑해달라고 말하는 것이 사랑 앞에 가장 추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봐도 사랑스럽지 않은 나를 사랑해달라고 조르는 게 억지라고 생각했고 진심과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은 나를 다 내던지지는 못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제대로 상대방의 마음을 물은 적이 없었다. 그땐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확증을 받는 것이 꼭 사형선고처럼 두려웠으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상대방의 마음과 상황을 온전히 알 수 없다는 것은 언제나 나를 약자로 만들었다. 모든 상황에서 언제나 나 혼자서 추측하고 염려했다. 더이상 답장이 오지 않는 멈춰버린 채팅창에 놓인 내 마지막 문자를 보며 이렇게 보냈으면 답장이 왔을까? 이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나? 그렇게 조사 하나, 단어 하나, 이모티콘 하나까지 쪼개어 나를 책망하기에 이르렀다. '나의 마음은 무시당했고 그럴만 하다’라는 결론으로 귀결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채 이틀도 되지 않았다. 그러면 내가 먼저 상대방을 쳐내기에 이르렀다. 상대방에게 제대로 해명할 시간도 주지 않고 내 멋대로 관계를 정리해버렸다. 꼭 가족 오락관에서 시간이 되면 터지는 시한폭탄을 들고 자기 할 말만 하고 상대방에게 넘겨버리듯 조급하게 굴었다. 그 거절감이라는 폭탄이 나에게서 터지지만 않으면 살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지울수만 있다면 지워버리고 싶은 그 시간을 지금 돌이켜보니 뭐가 그리도 치열했는지 모르겠다. 그때 나는 사랑받고 싶어하는 만큼 자꾸만 추해졌던 것 같다.  


 연애를 하면 이상하게 나의 마음은 어렵게 결정하지만, 상대방의 마음은 쉽게 판단하여 삶의 문맥을 오독하기 마련이다. 연애의 속성은 참으로 간사하다. 언제나 더 잘하고 싶을 때 더 실수를 하게 되고, 더 사랑받고 싶을 때 내게 있는 가장 덜 사랑스러운 모습이 발현되곤 한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진정한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내 가장 추한 모습을 비춰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개구리 공주의 이야기처럼, 미녀와 야수처럼 말이다. 뭐 꼭 동화 속에만 존재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만약 내 가장 나약한 모습조차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의 사랑이라면 나 역시 기꺼이 그를 사랑할 만 하니까. 그래서 나도 모르게 가장 못난 모습을 하고 사랑을 갈구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하면 꽤 설득력 있는 이론이다. 사랑이란 게 세상을 구원하는 정도라면 내가 가진 추하고 못난 모습쯤은 가장 사랑스럽게 만들어 줘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가끔 사랑의 힘을 지나치게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와 생각해보니 왜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냐며 떼를 썼던 그때의 나는 언제나 나보다 조금 부족한 사람을 찾아 헤맸던 것 같다. 사랑은 등가교환이 아닌데, 나는 내가 더 큰 걸 가지고 있으면 이 게임에서 이기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거절감이 쌓여가고 자존감은 낮아졌다. 상대방이 어떠해도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나는 사랑받을만한 자격요건을 갖추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모순된 마음과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사실 지금도 이 못된 버릇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신데렐라 이야기보다 평강공주와 바보온달 이야기가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보다 한참 잘난 사람이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해주는 신데렐라의 사랑 이야기는 내겐 여전히 먼 동화속 이야기일 뿐이다.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이 더 편하고, 연애를 갱생 프로젝트 쯤으로 생각하고 상대방 좋은 일만 시켜주고는 ‘넌 참 좋은 여자야’ 하는 말로 위안을 얻는 것도 여전하다. 하지만 언젠가 정말 세상을 구원할 만큼 대단하다는 그 사랑이 내게도 온다면, 내가 아무리 모자라고 못나도 더 큰 사랑으로 덮어줄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난다면 그때야 비로소 진정한 사랑의 힘을 깨달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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