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사랑보다 더 귀하다고 여기는 것이 있기에 사랑을 포기한다.
늦은 밤 한강을 끼고 달리던 차 안에서 누군가 내게 물어온 적이 있었다.
“사랑하는데 헤어지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날 명백히 데이트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무 사이도 아닌 관계에서 나올법한 질문은 아니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고 대답했다.
“그건 덜 사랑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핑계죠.’
나는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하고 되물었고 그는 대답했다.
“말도 안 되죠."
우리는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그 질문 때문에 나는 그가 사랑 앞에 도망가는 치사한 사람은 아닐 거라 확신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수많은 만남의 이유와 헤어짐의 이유가 공존한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만남과 삶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헤어짐도 있고, 식사처럼 일상적인 만남과 재채기처럼 간단한 헤어짐도 있다. 그리고 꽤 많은 경우에 만남의 이유가 헤어짐의 이유가 동일시되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처음엔 그의 경쾌한 웃음소리가 좋아서 만났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는 웃음소리에 결국 헤어졌다는 사람도 있고, 과묵한 면이 남자다워 보여서 만났다가 과묵하다 못해 답답해서 헤어짐을 택하는 경우도 꽤 많이 있다.
어쩌면 만남을 시작하게 만든 기대가 헤어짐을 선택하게 만드는 실망으로 대치되는 과정을 우리는 ‘연애'라고 부르는 건 아닐까? (이렇게 결론짓는다면 연애가 좀 시답잖아 지려나?)
사귀던 연인관계를 정리하는 경우, 요즘은 더 흔하게 썸만 실컷 타다가 연애로 넘어가지 못하는 경우에 우리는 사랑을 시작 또는 유지할 수 없는 오만가지 이유를 듣게 된다. 너무 바빠서,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잘해줄 자신이 없어서, 내가 봐도 내가 보잘것없는 사람이라서, 내 맘을 나도 알 수 없어서등 대부분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들이다. 별의별 이유를 다 가져다 대지만 연애를 시작 또는 유지할 수 없는 모든 이유의 뿌리는 어떤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문제를 끝까지 풀어나갈 만큼의 사랑이 없어서다. 그 문제가 사회영역인지, 수리영역인지도 중요하지 않고, 또 그 문제의 배점이 크든 작든 상관없다. 모든 연애는 문제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고 중요한 건 그 문제가 내가 가진 사랑보다 크고 작냐의 문제니까.
이 경우와 반대로 옆에서 보고 있으면 서로 죽일 듯이 미워하고 싸우다가 결국 다시 만나는 사람들도 있다. 오만가지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도 아직 다 못 쓴 사랑이 남아서 그렇다. 그 크고 작은 싸움들이 곳간에 모아둔 사랑을 갉아먹다가 곳간이 비는 순간 그 사랑은 끝이 난다. 그래서 싸움의 빈도나 크기보다 중요한 건 곳간에 얼마나 많은 사랑을 쌓아두었는지다.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억지로 포장하고 또 포장하다 보면 결국 남는 건 거추장스러운 포장지와 그 속에 초라해진 마음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인 것 같다.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은 그 모든 것들을 감당하기엔 너를 덜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말에 불과하고, 세상에 내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건 없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사랑보다 더 귀하다고 여기는 어떤 것이 있기에 사랑을 포기한다.
PS. 아, 그래서 차 안에 있던 우리는 어떻게 되었냐고?
그는 내게 덜 사랑한다는 말 대신 그럴싸한 핑계를 댔고, 나는 그 핑계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거기서 우리 인연 -연애라고 보기에도 좀 모자란- 은 끝났다.
그렇다. 모든 관계는 덜 사랑하기 때문에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