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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책한잔 May 26. 2020

삐뚤어졌지만, 000처럼 쓸 것이다


낚시 갔다가 안나가 소리쳤다.


“오빠, 거북이!”


요한이가 거북이를 잡았다. 낚시를 많이 다닌, 요한이는 거북이를 놔주자고 했지만 안나가 고집을 부려 집에 오게 되었다. 요한이는 저녁부터 거북이 집을 검색했다. 정원에 구덩이를 파고 플라스틱 통을 넣었다. 거북이 집이 완성됐다. 거실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잔디 위로 엉금엉금 기어 다녔다. 외출했다 들어왔는데 거북이가 사라졌다. 집 주변을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자전거를 타고 찾아다녔다. 모심기 위해 물 받아 놓은 논에 유유자적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호기심 많고, 모험심 강한 거북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거북이를 발견하던 날, 옆에 낚시하던 이가 지나가는 말처럼 했다.



모험을 즐기는 거북이



“저 위에 용봉탕 집이 있어요.”


거북이는 탈출한 것일까? 하는 것을 보면, 누군가 방생한 거북이가 아닌, 탈출을 시도한 쪽에  기울어진다. 정원에서 놀던 아이가 소리쳤다.


“엄마, 거북이 머리에서 피가 나요.”


머리에서 피가 맺혀 있었다. 동물 병원에 가야 하나? 애들 병원도 제대로 가지 않는 내가? 생각만 하다 시간이 지났다. 어제 누군가의 입으로 상처를 입었다. 물속으로 들어가 깊이 생각했다. 그리고 알았다. 내가 글 쓰는 진짜 이유를... 사는 것을 기록하고 싶었다. 또한 보여주고 싶었다. 살아온 날들이 찬란하지 않았지만, 비겁하거나 비굴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삶을 살았고 걸었다. 유리맨 탈이라 쉽게 깨져도, 다시 일어나 걸었다. 어쩌면, 부모님도 그런 나를 알았기에 더 강하게 키우려고 하지 않았을까? 30대 후반, 지친 나에게 글이 손 내밀었다. 깨진 유리조각을 밟으며 걸어 나왔다. 아침에 병원 갔다, 도착하니 오후 3시가 다 됐다. 정원으로 나가 거북이에게 말 걸었다.


약 바른 거북이


“거북아, 얼마나 아팠어. 엄마가 치료해 줄게.”


거북이가 말을 알아 들었을까? 포비돈 요오드 소독하고, 리도 맥스를 발라 주었다.


'아픈 이가 아픈 이를 알아보는 것일까?'


외조부는 독립운동가였고, 518 민주화 운동 총소리를 들으며 뱃속에서자랐다. 그래서일까? 자궁 속에서 빨간 띠를 두르고 저항했다. 살아온 동안 타협이 아닌,  저항과 분노가 가득했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종교전쟁, 프랑스 시민혁명, 독일의 파시즘, 일본 제국주의, 권력에 민중은 저항했다. 나도 저항한다. 온당치 않은 것을 비틀고, 분노하며 살 것이다. 이것이 엄마로 살며 글 쓰는 이유다. 거북이도 한 걸음씩 나가 탈출했다. 나 박지은도 그렇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피로 쓰라고 했다. 나탈리 골드만은 제목에서부터 말한다 <뼛속까지 내려가 써라> 그렇다. 쓰기 는 살아 있는 육체다. 사는 동안 나는 쓸 것이다. 누구도, 어떤 이유로도 글 쓰는 것을 막지 못한다. 독자의 비난에도 감사할 것이다. 이것이 작가의 예의가 아닐까?


거북이는 뚝배기를 탈출했다. 다만, 약을 바르는 동안 머리를 넣지 않았다. 목을 내밀고 눈만 깜박깜박했다. 나도 그렇다. 삐뚤어졌지만 글 쓰라 한다면 목 내민 거북이처럼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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