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삿짐보다 무거운 마음

by 오늘도책한잔

4. 이삿짐보다 무거운 마음
이삿짐을 싸던 날, 가장 무거운 건 짐이 아니라 제 마음이었습니다.
아이에게 더 좋은 환경을 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시골로 이사를 결정했지만, 삶은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달라져야 할 것은 집도, 도시도 아닌 바로 저 자신이었지만, 그땐 그것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무너지던 시절, 세상의 모든 것이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작은 일에도 지치고 무력해진 저는 아이에게도, 제 자신에게도 미안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 시기에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이 배움이었습니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독해 수업은 잊고 지내던 제 안의 감각을 깨웠습니다.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는, 아니 이미 조용히 자라고 있던 변화의 씨앗을 느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자연 가까이로 이사를 택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삶이 아니라, 나 자신을 바꾸고 싶었던 마음이었겠지요.
수업을 통해 선생님이 권해주신 여러 책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카를로 로벨리의 《모든 순간의 물리학》,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박경리의 《토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까지.
어떤 책은 어려워도 끝까지 읽었습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특히 과학과 우주는 제게 전혀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었습니다.
지구는 우주의 한 점에 불과하고, 그 위의 인간은 아주 작은 존재라는 사실은
삶의 문제들이 그렇게까지 심각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숨이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그전까지 저는 늘 아팠습니다. 몸도, 마음도.
행복은 멀고, 저는 작고 약한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누군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 같은 봉숭아 꼬투리 같았지요.
그런데 책을 읽고, 세상을 이해하면서 저 자신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진짜 변화는 아마 거기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나도 나를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데, 아이는 어떨까?”
학교에 가는 아이의 가벼운 책가방이 그 순간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겉으론 가볍지만, 그 안엔 말하지 못한 감정과 고민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질문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아픈 엄마 곁에서 자라는 이 아이에게, 어떻게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러던 어느 날, 지역 커뮤니티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악기를 다루지 않아도 지원할 수 있다는 말에 아이와 상의해 도전하기로 했고,
면접 날 요한이는 또박또박 자기 생각을 말했습니다.
며칠 뒤 ‘합격’이라는 문자 한 통이 도착했고, 요한이는 초등학교 1학년, 최연소 단원이 되었습니다.
평소 소리에 관심 많던 아이는 타악기를 선택했고,
결국 가장 작은 몸으로 가장 큰 악기, 베이스 드럼을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아이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함께 연주하고, 호흡하며 음악을 만들어가는 경험 속에서
세상은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곳임을 배워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무대를 바라보며 알게 되었습니다.
이삿짐보다 무거웠던 제 마음이,
책과 배움, 그리고 아이와의 경험을 통해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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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음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삶이 버거워 이삿짐을 싸듯 마음의 짐을 정리하고 싶어 집니다.
더 나은 환경, 더 좋은 사람, 더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떠나보지만,
막상 도착한 그곳에서도 삶은 여전히 낯설고 고단합니다.
그때 우리는 깨닫습니다.
문제는 장소가 아니라, 바뀌지 않은 '나' 안에 있었음을.
이 글 속 저자의 고백처럼
삶이 너무 무겁고, 하루하루가 버티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고,
나조차 나를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조용히 시작되는 변화가 있습니다.
작은 책 한 권에서, 문득 마주친 한 문장에서,
아이가 두드리는 북소리에서,
혹은 나도 모르게 깊이 들이쉰 바람 한 줄기 속에서.
당신도 그런 작은 시작 앞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변화를 향한 한 걸음을 내디딘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어떤 변화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합니다.
무겁고 복잡한 마음을 다 안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가끔은 단지 '내가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작이 됩니다.
당신의 마음도, 괜찮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고,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지만,
그 짐은 함께 나눌 때 비로소 가벼워집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걸음에 조용히 응원을 보냅니다.
변화는 이미 당신 안에서 시작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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