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집을 직접 지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사실 저도 처음엔 집을 지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주말이면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집을 보러 다녔지만, 마음에 드는 집은 끝내 없었습니다. 이건 저건 다 좋은데 뭔가 하나씩 부족했습니다. 이왕이면 오래 살 곳인데, 마음에 들지 않는 공간에서 억지로 타협하며 살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가족에게 꼭 맞는 집은, 어쩌면 세상에 없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우리가 직접 지어보면 어떨까.’ 그렇게 가족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했고, 남편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에게 이 말을 꺼내자마자 바로 이런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집을 짓겠다고?” 걱정에서 나온 말이라는 걸 알기에 상처는 아니었지만, 맞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주저할 수 없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말은 내 안의 모든 망설임을 밀어냈고, 그 순간부터 모든 시선과 판단이 달라졌습니다.
집을 짓기 위해 우리는 땅을 찾아다녔고, 결국 마음이 끌리는 한 장소를 발견했습니다. 진입로가 좁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곳엔 설명할 수 없는 끌림이 있었습니다. 풍수지리에 대해 알고 싶어 김두규 교수님을 모셨고, 교수님은 한참 땅의 형세를 살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집이 완성되면, 아마도 예술가가 나올 겁니다.” 그 말이 오랫동안 귀에 맴돌았습니다. 아이가 예술가로 자랄 수도 있는 공간이라니, 그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을 위한 집을 짓기 위해 방향을 잡고 구조를 고민하고, 도면을 그리고,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쉽지 않을 거란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겪어보니 현실은 상상보다 훨씬 더 힘들었습니다. 운동화가 닳아 구멍이 나도록 뛰어다니고, 하루하루 녹초가 되어 쓰러졌습니다. 일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아 잠 못 이루는 날도 많았습니다. 후회가 밀려들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제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왜 이 집을 짓고 있는가?’ 답은 언제나 같았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그 단순한 한마디가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웠고, 다음 날이면 또다시 뛸 힘이 생겼습니다.
그날들은 거대한 파도 같았습니다. 부딪히고 부서지면서도 다시 뭉쳐 일어나는 파도처럼, 나는 그렇게 엄마가 되어갔습니다. 이전의 나는 세상일에 자신이 없었고, 무기력했고, 늘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집을 짓는 과정에서 나는 온몸으로 부딪히며 조금씩 단단해졌습니다. 세상은 쉽게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았고, 돈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도 않았습니다. 땅을 사고 공사비를 지불했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끊임없이 터졌습니다. 마지막까지 발목을 잡은 건 상수도 문제였습니다. 배관 하나만 연결하면 끝날 줄 알았던 일이 좀처럼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누구를 탓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 그냥 집을 청소하자. 그러면 좋은 기운이 들어올 거야.” 남편과 함께 주말 내내 청소했습니다. 수도는 연결되지 않아 이웃집 수도꼭지에서 호스를 끌어와 물을 썼고, 손으로 바닥을 닦고 먼지를 털었습니다. 그렇게 이틀을 보낸 어느 날, 테라스에 앉아 있던 남편이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당신, 괜찮아?” 저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응, 괜찮아. 우리 그냥 이사하자.” “상수도도 안 됐는데?” “그래도 괜찮아. 우리 이렇게 살아보자.” 그렇게 우리는 짐을 쌌고, 이사하던 날 꾸물거리던 하늘에서 이삿짐을 다 옮기자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그 빗소리가 유난히 따뜻하게 들렸습니다.
만약 내가 그때 환경을 원망하고 남을 탓했다면, 우리는 지금도 이사조차 하지 못했을 겁니다. 같은 상황이라도 생각을 바꾸면 다른 삶이 됩니다. 집을 짓는다는 건 단순히 건물을 세우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내 안의 나를 다시 짓는 과정이었습니다. 나는 이 집을 지으며 엄마로서, 사람으로서 단단해졌고, 앞으로도 그 단단함을 바탕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삶을 새로 짓고 있는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은 지금도 잘하고 있어요. 어렵고 힘들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 당신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있어요. 그러니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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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지금, 집을 짓고 있는 중입니다.
살면서 직접 집을 짓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위해, 마음속에 집 한 채를 짓고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당신도 그중 한 사람일지 모릅니다.
처음부터 다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두렵고 막막한 상황 속에서도 “내가 왜 이걸 시작했는가”를 되묻고 다시 한 발 내딛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용기입니다. 누군가가 대신 지어줄 수 없는 삶의 집을, 당신은 매일 조금씩 짓고 있습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무기력해질 때, 외부 환경이 너무 거칠게 느껴질 때, 이 글을 기억해 주세요. 집이 완성되기까지 무수한 파도가 있었습니다. 때로는 부서졌고, 때로는 주저앉았습니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기에, 결국 따뜻한 집이 완성되었습니다.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그 하루하루도, 분명 당신의 ‘터’를 다지고 있는 시간입니다. 잘하고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흔들리더라도 멈추지 마세요.
당신은 지금, 누군가를 위한 집을 짓고 있는 중이니까요.
최남선 해에게서 소년에게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따린다, 부순다, 무너 바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나냐, 모르나냐, 호통까지 하면서
따린다, 부순다, 무너 바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내게는, 아모 것, 두려움 없어,
육상에서, 아모런, 힘과 권을 부리던 자라도,
내 앞에 와서는 꼼짝 못하고,
아모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지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는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나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가,
지금까지 있거던 통기하고 나서 보아라.
진시황, 나팔륜(拿破崙), 너희들이냐.
누구 누구 누구냐 너희 역시 내게는 굽히도다.
나허구 겨룰 이 있건 오나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조고만 산 모를 의지하거나,
좁쌀 같은 작은 섬, 손벽 만한 땅을 가지고
고 속에 있어서 영악한 체를,
부리면서, 나 혼자 거룩하다 하난 자,
이리 좀 오나라, 나를 보아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나의 짝될 이는 하나 있도다,
크고 길고, 넓게 뒤덮은 바 저 푸른 하늘.
저것이 우리와 틀림이 없어,
적은 是非(시비), 적은 쌈, 온갖 모든 더러운 것 없도다.
조 따위 세상에 조 사람처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저 세상 저 사람 모두 미우나,
그 중에서 똑 하나 사랑하는 일이 있으니,
膽(담) 크고 純精(순정)한 소년배들이,
재롱처럼, 귀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오나라, 소년배, 입 맞춰 주마.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