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위해 자연이 있는 시골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말하곤 했지만, 사실 그 안에는 단순히 아이만을 위한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저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뉴스에서 이런 기사를 접했습니다.
“초등학생 가방으로부터 급이 나뉜다.”
가방 하나로, 아이의 등급이 매겨지고, 브랜드로 그 아이의 배경이 추측된다고 했습니다.
사는 아파트, 부모의 직업, 자동차까지.
어른들의 경제력과 소비 습관이, 아이들의 사회적 위치를 결정짓는다는 현실은 참 씁쓸했습니다.
아이들이 브랜드로 평가받고, 어릴 적부터 ‘눈에 보이는 것’으로 줄 세워지는 사회.
그 기사를 보고, 마음 깊은 곳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습니다.
물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물건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닙니다.
누구나 예쁘고 멋지게 보이고 싶어 하니까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겉모습’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짓는 기준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그 무게를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아이의 옷은 대부분 물려받은 것이었고, 신발도 지인에게서 얻거나 할인 매장에서 산 것이 많았습니다.
누군가 주는 옷을 감사히 받아 입히고, 아이도 자연스럽게 그것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남들처럼 똑같은 옷, 똑같은 신발을 갖추지 않으면 불편하지 않을까'
'우리 아이가 혹시 소외감을 느끼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멍 난 양말을 신어도 부끄럽지 않은 곳에서 자랄 수 있다면 어떨까?”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기 기준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자연 가까이, 조금은 느리고 조용한 시골로 이사하게 된 것입니다.
그 선택이 정답이라고 확신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배경엔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지친 일상, 아프고 무기력한 몸,
그 와중에 아이 둘을 돌보며 남들의 시선까지 견뎌내기엔 제 마음이 너무 약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며, 저는 차츰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남들처럼 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걸 조금씩 받아들였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일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평온했던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부족하고 불안하며, 때때로 흔들립니다.
하지만 그런 불안 속에서도
“어떻게 해야 나를 조금 더 편하게 할 수 있을까?”
“이 상황에서 내가 나를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하루하루를 살아냈습니다.
대학생 시절, 참 좋아했던 시가 하나 있습니다.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입니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저는 그 시의 구절을 되새기며 살고 싶었습니다.
세상의 껍데기,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과 눈높이,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드는 시선들.
그것들을 벗고,
내 삶의 알맹이만을 붙잡고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골로 왔습니다.
그 선택이 저에게 껍데기를 벗게 해 주었을까요?
글쎄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삶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그저 지금은,
껍데기에 가려지지 않은, 더 단단한 알맹이로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중입니다.
나와 내 아이가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곳에서
조금 더 편안하게, 조금 더 나답게 살아가고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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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 볼 이야기
나도 모르게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나를 재고 있진 않으셨나요?
내 아이가 ‘남들처럼’이 아니라, ‘자기답게’ 자라는 환경을 고민해 본 적 있나요?
우리는 ‘껍데기’를 얼마나 붙잡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진짜 나에게 편안한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
꼭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내 마음속에 자연 한 조각을 만들 수는 없을까요?
껍데기는 가라.
그리고 이제,
당신만의 알맹이를 꺼내어 살펴보세요.
그 안에 삶의 진짜 온도가 담겨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