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가슴을 짓눌렀던 그 시절, 눈을 감고 미래를 상상하며 기도하곤 했습니다.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으니까요.
수술실로 향하는 8kg도 채 되지 않는 아이를 바라보며, 눈을 감고 생각했습니다.
‘저 작은 등이 언젠가는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신나게 걸어가는 날이 오겠지.’
병원 복도 한편,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바다를 만들며 기도했습니다. 매 순간이 간절했습니다.
그 무력한 시간 속에서, 그저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 학교에 가는 상상을 반복하며 버텼습니다.
병원에서 아이를 안고 젖을 물리고, 조용히 책을 읽어주는 일이 어느덧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 시간들이 쌓이고 나니,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더 깊은 고민이 찾아왔습니다.
‘나는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은가?’
무엇보다, 자유롭게. 그 마음이 컸습니다.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 엄마’였던 저는 큰 결심을 했습니다.
시골에 집을 짓고, 자연이 가까운 시골 학교로 아이를 보내기로요.
초록 들판이 넘실대는 시골 마을. 아이는 매일 걸어서 학교에 갔습니다.
책가방을 덜렁이며, 웃으며 걸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산도 초록빛 하나로만 보입니다. 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뱀도 있고, 벌레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던 다양함이 숨어 있지요.
자연 학교도 그랬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자율성’, ‘생태 교육’이 강조되는 이상적인 공간 같았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갈등과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만 성장한 게 아니었습니다.
저도, 엄마로서 함께 배웠습니다.
그 성장에는 아프고 힘든 시간도 있었습니다. 기댈 곳 없이 혼자 감당해야 했던 순간들도요.
하지만 결국,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내 삶으로 소화해 나갈지는 내 몫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학교는 배우는 곳이었고, 집은 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픈 엄마는, 그 편안함조차 제대로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그래서 집을 짓고 이사했는지도 모릅니다. 자연 속에서 나부터 다시 살아나고 싶어서요.
제가 중심을 두었던 육아는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을 선택했습니다.
뛰놀다 집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책을 읽는 생활.
TV도 없고, 주변에 편의시설도 없는 이곳에서 가장 재미있는 놀이는 책이었습니다.
요한이는 한글도 스스로 깨쳤습니다.
유치원 시절,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요한이만 아직 한글을 몰라요. 가르쳐 주셔야 할 것 같아요.”
책 육아를 해왔기에 한글은 일찍 떼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가르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책 육아로 친해진 ‘똘방이맘’이 추천해 준 학습만화 목록을 받아 중고책으로 채워 나갔습니다.
20세트가 넘는 책들이 하나둘 책장을 메웠습니다.
여름방학 전까지 한글을 모르던 요한이는, 방학이 끝나고 여자친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필요를 느껴야 움직이는 아이구나.’
그 후, 요한이는 책을 아주 맛있게 읽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프란치스카 비어만의 『책 먹는 여우』처럼요.
옆에서 말을 걸어도 들리지 않을 만큼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그렇게 요한이는 스스로 책 속 세계를 탐험해 나갔고, 손을 놓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할 일은 점점 줄어들었고, 대신 책을 사들이는 일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54평 집의 1층과 2층 벽면은 모두 책장으로 채워졌고, 그 안은 책으로 가득했습니다.
주말이면 도서관에 가서 다양한 책을 접했습니다.
대부분은 학습만화였지만, 점차 줄글책으로 넘어가기를 바랐습니다.
그럴 때는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기 책을 대출해 왔습니다.
호기심이 생기면 읽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글밥 많은 책으로 넘어갔습니다.
또 하나, 저만의 방법이 있었습니다.
요한이가 책을 읽을 때, 오디오북을 함께 틀어두는 것입니다.
『월든』, 『노인과 바다』, 『레미제라블』, 『햄릿』, 『맥베스』, 『일리아드』…
서울대 선정 세계문학 만화 시리즈도 함께 들여, 오디오북과 책을 연결시켰습니다.
소리로 먼저 익숙해지고, 그림으로 내용을 다시 확인하며
세계 명작들이 아이의 삶 속에 스며들게 했습니다.
자연에서 뛰놀고, 책을 통해 세계를 만나며 자란 아이.
그리고 그 곁에서 엄마로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선택하고, 실천하며 살아낸 시간들.
그것이 죄책감 많고 미안함이 컸던 엄마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었던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아마, 가장 큰 사랑이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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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 볼 이야기
우리는 아이를 위해 어떤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중심에 두고 있는 육아 방식은 통제일까요, 아니면 기다림일까요?
아이의 속도를 존중하며 진심으로 기다려준 적이 언제였는지도 돌아보게 됩니다.
자연과 책처럼, 우리 가족에게 회복과 연결감을 줄 수 있는 자원은 또 무엇이 있을까요?
일상 속에서 작지만 단단한 ‘우리만의 환경’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