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개인전을 준비하며 흘린 눈물

by 오늘도책한잔

이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 무엇에도 당당해질 수 있었습니다.
‘누가 뭐라 하더라도, 그림을 그리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이 마음 하나가 단단히 붙잡아 주었습니다.
그림을 다시 시작하기 전의 삶과, 그림을 그린 이후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자신감이 자라났습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만들어 줄 수 있는 자신감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그림 앞에서 스스로와 마주하며 얻은,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난 자신감이었습니다.
화실에서 보낸 시간은 위로했고, 동시에 감사의 시간이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유화 특유의 진한 냄새였습니다.
그 냄새 속에는 또 다른 따뜻한 온기가 있었습니다. 사람의 온기, 삶의 온기였습니다. 누군가는 상처로 남은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놓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품듯 들어주며 위로했습니다. 그곳에서 나눈 이야기는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삶에 대한 지혜와 철학이 되어 다가왔습니다.
화가 선생님은 예순이 넘으신 분이셨고, 함께 그림을 그리던 작가님들도 인생의 굴곡을 깊이 경험하신 분들이셨습니다. 대화는 언제나 사려 깊었고, 때로는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다웠습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흠집 내는 말은 없었습니다. 대신 서로의 약함을 이해하고, 부족함을 포용하는 언어가 오갔습니다. 그 시간은 다른 어떤 공간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과 작가님들은 종종 개인전을 열거나 단체전, 공모전에 도전하셨습니다. 저 역시 공모전을 준비하고, 때로는 단체전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전’만큼은 거리가 먼 이야기였습니다.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고, 무엇보다 비용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작가님들의 개인전을 찾아가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네며 마음을 대신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조용히 생각했습니다.
‘나도 언젠가 개인전 하는 날이 오겠지?’
서두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눈을 감고 상상했습니다. 전시장 한가운데 서서, 작품 앞에 서 있는 모습을요. 그 상상만으로도 충분한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여보, 나… 개인전을 하게 될 것 같아.”
남편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을 때, 손을 꼭 잡으며 말했습니다.
“왜 내가 더 떨리지?”
아이들을 키우며 오랫동안 집에 머무르던 동안 그림 앞에 서지 못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그림을 내려놓아야 했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화실 등록비, 재료비, 전시회 준비 비용조차도 결국 남편의 수고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의 무게가 주저앉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언제나 제 편이 되어 주었고, 결국 그의 지지가 다시 붓 앞에 세워 주었습니다.
개인전을 준비한다는 사실은 설렘과 부담을 동시에 안겨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하나 차근차근해 나갔습니다. 리플릿을 만들고, 현수막을 준비하고, 집과 화실에 있던 그림들을 포장해 옮겼습니다. 그렇게 모아진 작품은 총 마흔한 점. 20대 시절부터 시작해 2005년 첫 작품을 그린 이후 20년 동안의 기록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25년 생애 첫 개인전을 열게 된 것입니다.
전시장에 그림을 모두 걸어둔 뒤, 남편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여보, 첫 번째 개인전을 축하해.”
그 짧은 한마디에 결국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수많은 망설임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동시에 남편이 묵묵히 감당해 주었던 시간들, 가족이 보내 주었던 믿음이 고스란히 떠올랐습니다. 그 눈물은 단순히 개인전을 열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지탱해 준 삶 전체를 향한 감사의 눈물이었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개인전이라는 자리가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무대가 아니라는 것을요. 그것은 인생의 여정과 마주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림을 그리며 견뎌 온 시간, 지지와 사랑으로 버텨 온 관계,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이어 온 열정이 한자리에 모여 빛나는 순간이었습니다.

함께 생각해 볼 이야기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가운데에도 자신의 꿈을 잠시 미루고 계신 분이 계시다면,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서두르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멈춘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그 꿈은 여전히 우리 안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언젠가 그 꿈은 반드시 삶의 무대 위에서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첫 개인전에서 흘린 눈물이 결코 끝이 아님을 압니다. 오히려 그것은 또 다른 시작입니다. 그림을 통해 제 삶을 기록하고,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들에게도 말해 주고 싶습니다.
'간절히 원하고 바라면 언젠가는 꼭 이루어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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