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호 Oct 23. 2019

올해의 첫 귤

상큼하고도 청량한 귤 냄새

요즘에는 과일이 나오는 계절 구분이 없어졌다지만 날이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과일이 있다. 바로 귤이다. 귤은 모습을 보이기보다 향을 먼저 풍긴다. 서늘한 공기 사이로 투명하고 맑은 귤향이 퍼지면 근원이 어딘지 두리번거리게 된다.


어린 시절 소풍을 갈 때면 간식으로 귤을 가져오는 친구들이 꼭 한 명씩 있었다. 버스 안에서 그 아이가 귤을 터뜨리면 텁텁했던 공기가 일순간 청량해졌다. 귤을 가진 친구와 짝이 되어 앉으면 한 조각쯤 얻어먹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런 행운에 당첨되지 않아서 코가 호강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코가 예민한 편이라 음식을 먹을 때가 아닌 때에 음식 냄새가 나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게다가 내가 '음식'이라고 규정짓는 것들은 일반적으로 '음식'이라 불리는 범주보다 넓어서 남들은 별로 불편해하지 않는 상황을 불편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귤만큼은 예외여서 그 냄새를 언제 맡게 되든 좋았다.


올해는 고맙게도 예년보다 조금 일찍 귤을 먹게 되었다. 학교에서 귤 냄새가 나길래 '귤 냄새가 나네'라고 무심히 말했는데 에서 귤을 먹고 있던 동기 선생님이 통째로 하나 주었다. 주변을 살피고 말을 했어야 할 것을 실례가 되는 일이었지만 선뜻 귤 하나를 나누어주는 배려가 감사했다.


아직 제철이 아니라 귤빛이 돌기보다 노르 딩딩한 편이지만 귤은 귤이어서 달고 맛있었다. 내가 귤을 깠을 때 주변에 향기가 퍼져나갔을 것이다. 소풍 길에 귤을 가진 짝을 만나는 일보다 더 큰 행운에 당첨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학여행 추억은 없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