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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호 Nov 09. 2019

잘 쓰려는 과한 욕심

소소한 글쓰기 팁이라고 쓰고 '아무 말 대잔치'라고 읽는다

글쓰기를 방해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너무 잘 쓰려는 욕심'이다. 잘 쓰려고만 하다 보니 너무 깊이 고민을 하다가 첫 문장조차 쓰지 못하고 글쓰기를 놓아버리는 경우가 많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늘 일정한 시간에 발행을 하려 노력하는데 평소 같으면 마지막으로 글을 수정보고 있어야 할 시간까지 다른 글을 쓰고 있었다. 과제로 글 하나를 써야 했는데 과한 욕심이 들어 하루 종일 붙들고 있었다.


아침부터 앉아서 개요를 짜고, 자료를 찾느라 책도 좀 읽고, 공책에 옮겨 적었다가 컴퓨터에 적었다가 애를 썼다. 앞서 밝힌 대로 잘 쓰고 싶어서 쉬운 길로 가기보단 어려운 구성을 택했다. 순차적으로 논리만 맞게 써도 될 것을 반대 주장을 패기 있게 던지고 역 반박하는 방법으로 글을 썼다. 그런데 왠지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내내 붙들고 있다가 겨우 완성을 했다. 결과물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마지막으로 퇴고를 거치려는 찰나 뭔가 대단히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 네 가지의 가치가 담긴 명제에서 하나를 골라서 쓰면 되는데 A에 대한 반박글을 쓸 것을 C에 대한 반박글을 쓴 것이다. 크게 보면 A를 선택하나 C를 선택하나 내주장은 같다. 하지만 A는 완전히 틀린 주장이라 그냥 잘 패면 되는데 C는 중의적 가치를 품고 있어서 C가 틀렸다고 말을 하려면 C를 쪼개서 여기까진 맞는데 여기부터는 틀리고, 이게 어떻게 돼서 틀린 것인지를 하나하나 따져가며 써야 했기 때문이다. -> 길게 썼는데요, '쉬운 길을 어렵게 갔다. 그런데 문제를 잘못 읽어서 수고한 게 헛수고가 되었다' 그 소립니다.


'마감은 두 시간 남았는데 어쩌지? 그냥 처음부터 문제를 잘 못 읽은 건 몰랐던 척 그냥 낼까? 어쩔까?' 하다가 처음부터 다시 썼다. 어찌나 맥이 빠지고 화가 나던지. 그런데 애초에 내 실수이므로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내는 데에 의의를 두자며 식음을 전폐하고 달렸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쓰긴 썼다.


첫 번째 글을 아침부터 썼으므로 중간에 다른 일을 한 시간을 빼더라도 3,4시간을 걸렸을 텐데 두 번째 글은 한 시간 만에 썼다. 완성이 안되면 큰일이 나므로 되는대로 그냥 막 썼다.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읽어줄 만은 한 글이 나왔다. 쓰는 데에 들인 시간까지 따져 보면 급하게 다시 쓴 글을 더 잘 썼다고도 볼 수 있겠다. 개인 저작물이 아닌 시험 글쓰기는 시간 안에 쓰는 일도 중요하므로.


그리고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브런치에 들어왔다. 매일 쓰기로 약속한 건 아니지만 글쓰기 때문에 글쓰기를 포기하면 브런치한테 미안하니까. 그리고 날짜를 보니 작가로 선정된 지 한 달 되는 날이어서 더 안 쓸 수 없었다. (그런데 솔직히 지금 머리가 멍해서 내가 뭐라고 쓰고 있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안 쓰느니만 못...읍읍)


결국 과한 욕심 때문에 시간은 시간대로 잡아먹고, 그 긴 시간을 투자해서 쓴 글은 정작 날리고, 브런치에는 아무 말 대잔치를 하고 있다.(밥도 늦게 먹고. 또르륵..)


브런치의 분류 기준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지난번에 본문에 '글쓰기'라는 단어를 몇 번 썼더니  '글쓰기 코치'코너에 내 글이 들어가 있었다. 넋두리일 뿐인데 글쓰기 코치라니 오늘도 그럴까 불안하다.


하루 종일 고생하고 얻은 팁을 드리자면 너무 고민하지 마시고 일단 쓰세요. 정도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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