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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호 Nov 15. 2019

글쓰기에 관한 소견

아무래도 내게 글쓰기는 '행복'이다

글쓰기는 예술활동이다.

글쓰기도 예술이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을 꺼내서 언어화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므로 창조적 행위이고 예술에 속한다. 흔히 문학활동 이라하여 시를 짓고 소설을 쓰는 일을 예술이라고 칭하지만 나는 브런치 작가들도 다양한 글쓰기로 예술활동을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마다 고유한 경험은 다르며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도 저마다 다르다. 같은 사람의 글을 오래 읽다 보면 그 사람의 특성을 알게 된다. 자신의 것들로 고유한 저작물을 만들어내는 일이 예술이 아니고 무엇일까.


다른 장르와 다르게 '예술'을 말할 때는 유독 타고난 재능을 강조한다. 어떤 측면에서는 공부도 재능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공부에는 '재능'이 따라붙지 않고 예술에만 붙는다. 음악적 재능이 있는 신동이어서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된다. 어떤 분야든 예술적 재능이 보이면 그 길로 나가기를 종요하는 이들이 꽤 많다. 예술은 밥벌이가 힘들다는 말과는 별개로.


미술도 예술이고 재능을 필요로 하므로 미술학원 선생님들은 원생 중에 감각이 있는 이를 눈여겨봐 두었다가 미술계열로 진학하기를 권한다. 그런데 또 재밌는 것은 미술에 '입시'라는 두 음절이 붙으면 그림 가치가 덜한 양 여기기도 한다는 것이다. 종종 미술에 재능이 있는 이들의 그림이 온라인 상에 올라오면 '미술을 가르치지 말라.'는 의견이 나온다. 입시 미술을 해서 대학에 가야 미술가로 먹고살 수 있는데 배우지 않은 티가 나는 야생의 그림이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글쓰기 교육이 필요할까?

글쓰기는 어떨까. 나는 앞서 글쓰기도 예술이라고 표현했다. 글을 잘 쓰려면 배우는 것이 좋을까. 타고난 재능을 갈고 닦도록, 고유의 자기 색을 내도록 놔두는 것이 나을까. 성인이 되어 글쓰기 강좌에 등록해 다니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피아노나 발레, 미술 같은 예술은 기왕이면 어릴 때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하니 글쓰기도 그렇게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이미 한국말을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따로 글쓰기를 배우는 것은 불필요한 일일까.


나의 경우 최초의 글쓰기 교육은 동네 친구들과 그룹으로 모여서 하던 '까치 글짓기'였다. 딸이 누구보다 돋보이길 원했던 어머니는 학교에 일기장을 내야 하는 시기부터 일기를 불러주셨다. 혼자 쓰게 되는 날 어머니의 구미에 맞지 않는 글을 썼다가 들켜서 쥐어 박힌 적도 있는데 그런 글쓰기는 도움이 되었을까. 그리고 당시 나의 또 다른 글쓰기 선생님이었던 새롬이 언니. 새롬이 언니의 책은 도움이 되었을까.(새롬이와 일기쓰기라는 책인데 요즘도 나오더군요. 반가웠습니다.)


지극히 나의 이야기지만 그러한 글쓰기 교육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 당시 배웠던 어떠한 규칙들이 지금의 쓰기 생활을 방해하고 있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어머니께 쥐어 박히며 쓴 일기는 일기를 쓰려는 내 열정을 갉아먹어버렸다. 글짓기 선생님은 내가 '때문이다', '말이다'를 많이 쓴다며 '때문말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셨는데 거기에 신경을 지나치게 쏟다 보니 편안히 글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어쩌다 '-때문이다.' 혹은 '-말이다'라고 쓰게 되면 깜짝 놀라며 다른 표현을 찾는다. 전체 글에서 보면 그리 많이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글쓰기의 목적은 무엇일까?

물론 언어를 자유로이 구사하며 문장을 매끄럽게 쓰고 자신의 생각을 뚜렷이 나타낼 수 있는 필자가 되기 위한 교육은 필요하다. 어린이 독서논술 학원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으며 대학 입시 전형이 바뀌어도 논술 영역은 건재하다. 대학마다 기초 글쓰기 강좌를 개설하어 어떤 전공이든지 반드시 글쓰기 교과목을 수강하도록 하고 있다. 글쓰기가 그만큼 중요하고 교육도 필요하다는 방증이다. 어느 정도 글쓰기에 자신이 붙으면 자신의 글에서 반복되는 문장 구조를 발견하기도 한다. 필자 고유의 문체라기엔 어색한 문장이나 글의 흐름을 해치는 문장은 다듬어 주어야 한다. '때문말이'도 그런 의도에서 나온 별명이다.


하지만 교육이 지나치게 이른 시기에 그리고  강도가 높게 진행된다면 필자가 되는 일을 너무 일찍 포기할 것 같다. 성격검사를 해보면 나는 태생이 여리고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나온다. 약간의 우울을 달고 사는 성향이라고도 한다. 심리검사를 해서 '들어 알고 있는'것이지만 브런치를 시작하고 지속적인 글쓰기를 하면서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이었음을 깨닫고 있다. 초겨울이 다 되어가 햇볕에 누렇고 뿌연 빛이 깃들면 우울해지는 일도 더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나를 알고 나니 오히려 편하게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글쓰기에 지레 질려 쓰는 일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못 느꼈을 편안함이다.


글쓰기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실적인 글쓰기 기술을 익혀야 한다. 밥벌이를 하기 위해 이력서를 쓰고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서, 층간소음으로 고통받다가 위층에 편지를 써야 할 때도 '설득하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으면 편하다. 생각보다 글쓰기를 잘해서 삶이 용이해지고 윤택해지는 일이 많다. 그러나 글쓰기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 내면을 기록할 줄 아는 필자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재가 없을 때는 죽을 똥(-맞춤법에 안 맞다지만, 시적 허용!! _죽을 '둥'이 맞대요. 브런치가.. )을 싸고 앉아 있기도 하지만 글을 쓰면서 얻는 소득은 생각보다 많다. 지독히 우울했고 불안에 떨던 내가 글쓰기를 생각하며 아주 가끔이지만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줄 누가 알았을까. 그래서 또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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