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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호 Nov 18. 2019

 저는 공무원이 될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걸까요?

몇 년 전 개명을 하러 철학관에 갔었다.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나의 아픈 과거를 줄줄 맞추는 철학관 선생님 덕에 창피한 줄도 모르고 눈물을 줄줄 쏟았다. 그때 그분은 내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면 빠르면 1년 안에 늦어도 2년 안에 합격을 한다고 하셨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내게 줄곧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를 종용하셨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늘날의 취업난과 나의 현재 상황을 진단하며 '시험만 보면 붙는다는데 왜 안 하냐.'라고 하셨고, 심지어 공부하지 말고 그냥 응시를 한 번 해보라고도 하셨다.


배부른 소리 같겠지만 나는 공무원이 되고 싶었던 적이 없다. 직장을 다니다가도 공시 준비에 뛰어드는 분들이 계시고,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진학 대신 공시 준비를 하기도 한다. 브런치 메인에도 '공무원'관련 글이 자주 올라온다. 현재 공시족이 몇 명인지를 알려주는 통계를 굳이 찾아보지 않더라도 공무원 열풍이 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쯤 되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망하는 자리이므로 '공무원 준비를 한 번 해볼까?'라고 생각했을 법도 하다.


그러나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공무원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공무원 관련 글 중에는 '애써 공무원이 되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 하는 글도 종종 보인다. 공무원이 된 지 오래 지나지 않았는데 스트레스가 심해 퇴직을 했다는 사례도 있다. 그런 글들 안에 묘사된 공무원의 삶을 들여다보며 '역시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었겠다.'는 생각을 한다. '회사가 적성에 맞아서 다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그래도 안정적인 공무원이 최고다.'라는 반론이 나오겠지만 '내가 들어갔으면 퇴사까지 한 달 잡는다'는 판단이 서는 걸 어쩌겠는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평탄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삶을 살았다. 일이 생기면 일단 내면으로 파고드는 성격이라 '나'라는 사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나는 공직생활을 견디지 못할 것 같다. 그동안 나의 학습 패턴으로 봤을 때 공무원 시험 유형이 잘 맞는다고도 할 수 없다. 단편적으로 한 가지 예시만 들자면 '객관식'보다 '서술/논술형'을 선호하고 점수도 잘 나온다. 공무원 시험에는 많은 내용을 세부적으로 암기하고 푸는 문제가 나온다는데 그러한 공부엔 젬병이다.


이름을 바꾸자고 철학관에 데려가셨지만 평소에는 '그런 건 믿을 것이 못된다'라고 못을 박던 어머니이다. 그런 어머니가 태도변화를 보인 것은 그저 철학관 선생님의 말이 어머니의 희망사항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앞서 나의 힘들었던 과거를 너무 잘 맞춰서 놀랐다고 했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예측 가능한 상황이다. 멀쩡하고 행복하게 잘 살던 사람이 갑자기 개명을 한다고 올 확률은 낮을 것 같다. 어릴 적부터 개명 협박(?)을 받았지만 꿈쩍도 않던 내가 거기까지 찾아갔으니 그 당시 내 온몸의 세포가 우울을 머금고 있었을 것이다.


고집을 부려 대학원에 입학했다. 부모님의 지원 없이 그동안 안 먹고, 안 입고, 안 바른(사고 싶은 로션이 있었어요...뚀륵) 돈으로 등록금을 냈고 감사하게도 조교자리를 구해 이번 학기 걱정은 덜었다. 스스로 골로 가고 있는 건지 모르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행복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깟 공부 더 해서 뭐하냐, 나잇값을 해라.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말을 들어도 할 수 없다. 이상스럽게 '굳이 안 해도 될 발표'를 하겠다고 자원을 하고, 교수님이 뭘 해오라고 하면 해가는 과정이 재밌다. 평소에는 상처를 잘 받는 성격이지만 수업시간에 팩트로 얻어맞는 건 겁이 나지 않는다.


공시 준비를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일이 있어 구청에 갔다가 공무원분을 만나면 '흠, 부러워해야 하나? 이거 지금 '여우와 신포도'인 상황인가? 아닌가?' 고민도 하지만 그 자리에 앉고 싶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내 삶에는 어머니의 그늘이 지나치게 드리워져 있으므로 정서적 독립을 위해서라도 엄마 생각 대신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한 것이 잘한 일 같기도 하다. (키워드가 핫해서 글의 수준과는 별개로 다음 메인에 걸리면 어쩌나. 엄마가 볼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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