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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호 Nov 21. 2019

나에게 엄마란

떠올리면 물속에 잠겨 있는 것 같은 감정

어떤 경험은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감정일으킨다. 시간이 오래 흐른 지금도 물속에 잠겨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물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참고 있는 느낌이 든다. 슬픔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 


세 살 터울의 동생이 있다. 동생을 낳을 날이 가까워지자 엄마는 인근 대학병원에 입원하셨고 시골에 계신 외할머니가 와서 나를 돌봐주셨다. 엄마와 떨어지는 일이 처음이었던 나는 엄마가 보고 싶어서 매일매일 울며 보챘다.

      

할머니 때문에 엄마와 떨어지게 된 것도 아닌데 할머니에게 서운했고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미움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엄마를 보러 가기 전 할머니는 머리를 묶어주셨고, 손질이 끝나고 나면 손을 모으게 한 뒤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셨다. 손에 물이 고이면 양손을 비빈 뒤 앞머리에 바르라고 하셨다. 잔머리 깔끔하게 정돈하려는 할머니의 방법이었는데 그마저도 엄마의 습관과 달라서 불만스러웠다.

    

엄마를 보러 병원에 가면 나는 더 큰소리로 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민폐인데 고작 세 살가량의 어린애였고 서러움이 복받쳐서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환자복을 입고 누워있는 엄마를 보니 엄마가 어디 아픈 것 같아 더 울었다. 한 번은 그렇게 우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건너편 침대에 누운 아주머니가 '오렌지 맛 쌕쌕'을 주셨는데 그걸 받고 좀 눈물을 그쳤는지 어쨌는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그저 그즈음의 기억을 떠올리면 몇몇 장면이 떠오르고 물속에 잠긴 것처럼 숨이 막힌다.  

   

커서도 한참을 그때의 감정을 가지고 살았다. 어릴 땐 마냥  슬픔에 겨워 엉엉 울었지만 기저에는 엄청난 두려움이 있었다. 엄마가 언제 다시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래서였는지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 한참이 돼서도 엄마에게 집착했다. 외삼촌이 결혼하기 전 내가 3학년 때까지 삼촌 차를 타고 할머니 댁에 다녔다. 대문에서 차 빼는 걸 봐주느라고 엄마가 잠깐 나가 있을 때도 엄마가 사라질까 봐 불안해할 정도였다.  

    

글을 쓰며 몇 번 밝힌 적이 있지만 엄마는 다정한 성격은 아니었다. 엄마는 어린 시절의 결핍이 큰 사람이었고 첫째 딸을 통해 부족한 무언가를 채우려 하셨다. 딸이 생각한 만큼 따라오지 못하자 엄마가 보인 말이나 행동은 지금도 상처로 남아있는데 그런 기억이 짙으면서도 애착이 크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엄마와의 갈등이 생기면 집착과 억울함, 화, 서러움 등 그 모든 감정들이 혼재되어 분출된다. 엄마 앞에서는 감정을 꺼내지 못하고 어디 올리지도 못할 글을 쓰고 있으면,  글 안에서 어린 시절 엄마가 했던 말 행동들이 생생하게 살아나 나를 찌른다.

  


엄마가 내게 서운해하시는 일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엄마는 자궁에 작은 물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으셨다. 엄마가 퇴원하고 집에 오셨지만 나는 마중을 나가지 않았다. 상황만 나열하면 납득이 되지 않는 이야기지만 현관문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나이를 열여섯이나 먹고서도 어릴 때의 물속 같은 감정이 휘감았다. 걱정이 되고 두려워서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책상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지금도 가끔  엄마가 멀리 나갔다 오면 이불속에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있는다. 열에 아홉은 쫓아나가 짐을 받지만 한 번씩은 이불을 목까지 뒤집어쓰고서 엄마가 나를 찾나 안 찾나 시험해본다. 글로 쓰고 보니 나이를 어디로 먹은 건가 싶어 낯부끄러워지지만 엄마에 대한 혼란스러운 감정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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