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이사 간 집에서 얼마를 걸으면 동네 시장이 나왔다. 시장으로 가는 길목에는 시티백화점도 있었지만 나는 시장 구경 가는 일을 더 좋아했다. A문구사와 R아동복점과 이름 모를 장난감 가게. 그중에서도 장난감 가게를 지날 때 가장 행복했는데 그 앞을 지나기만 해도 장난감들이 내뿜는 번쩍번쩍한 빛이 느껴져 가슴이 설렜다.
산타할아버지의 진위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던 무던한 어린애였지만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무언가를 기다렸다. 설레면서도 어딘지 모를 센티한 기분이 들어 초겨울이 되고 날이 우중충해지면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해가 쨍쨍한 한여름이더라도 장난감 가게 앞을 지날 때는 그런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안의 장난감을 다 갖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걸 너무 빨리 알아서 곁눈질만 일삼으며 의젓한 척 지나갔다.
장난감 가게에는 사시사철 장난감이 쌓여 있었다. 친구 집에 가서 갖고 놀아본 조립식 로봇도 재밌었고 옥스퍼드 블록놀이도 좋아했지만 분홍색 상자로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코너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누가 다 함께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꼭 같은 빛깔의 분홍 상자 안에는 다양한 시리즈의 미미인형, 똑순이 인형, 각종 만화 캐릭터 인형, 캐릭터의 요술봉 등이 들어 있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속에서 꿈틀꿈틀 알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온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끌었던 장난감은 원활한 공주놀이를 위한(?-직접 입을 수 있는) 드레스·왕관 세트와 웨딩피치 액세서리, 각종 요술봉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거기 달린 장식이나 보석 등은 색 입힌 플라스틱일 뿐이지만 당시엔 금은보화와 같이 느껴졌다. 가지고 놀다 떨어진 보석을 나만의 보물상자에 고이 모셔놓고 몰래몰래 꺼내봤다. 보석 뒷면에 양면테이프를 붙이고 이마에 달면 내가 공주라도 된 것 같았다.
요술봉은 집에 몇 개 있었는데 드레스 세트는 가게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공주 콘셉트는 바뀌지도 않는지 드레스 세트는 어린애가 커서 성인이 될 때까지 포장 디자인만 조금씩 바꿔서 출시되었다.(요즘은 엘사와 안나라죠?)20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것들을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흥미를 잃었다. 공주옷을 입는다고 해서 공주가 될 리가 없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던 것 같다. 요술봉은 휘두른다고 악당이 개과천선 하지도 않을 거라는 사실도 너무 잘 알고 있다.
더 이상 그만큼 설레지 않으면서도 요즘처럼 어둠이 일찍 드리우는 날이면 가끔 장난감 가게가 생각난다. 장난감 가게를 떠올리는 것은 어린 시절의 추억 때문일까, 이루지 못한 환상 때문일까? 장난감을 사다 줄 조카아이도 없으므로 이 마음을 확인하기까진 오래 걸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