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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호 Dec 04. 2019

버스를 보고도 뛰지 않는다

선택의 결과를 감내하기

비가 오고 있다. 비가 오고 있는데 우산은 없다. 길 건너편에 타야 할 버스가 왔고 마침 초록 신호등이 켜졌다. 횡단보도까지는 7미터 남짓. '뛰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묻는다면 당연히 '뛰어야 한다'는 대답이 나올 것이다. 좀 뛰면 버스도 바로 탈 수 있고, 비도 덜 맞을 수 있다. 그런데 뛰지 않는다.


가만 보면 나는 가끔, 지금 이 선택을 하면 나중에 곤란해질 것을 알면서도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뭉개고 있는다고 해야 하나. 합리적으로 살자면, 그래서 내가 좀 더 편해지려면 다른 편을 택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다. 어쩐 일인지 선택을 바꾸면서 해야 할 일들이 하기 귀찮다. 한 번은 수강신청을 잘못한 거 같은데 책을 바꾸러 가는 게 번거로워 학기 내내 수업을 들었다.(참고로 교내서점입니다) 오늘은 그저 뛰고 싶지 않았다.


꽃병에 물을 채우기 전에 꽃부터 꽂는 것은 거꾸로 된 순서라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지만, 특별히 큰 문제도 아니었다. 일단 꽃을 옮겨놓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고,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땐 일을 바른 순서대로 하지 않는 법이다.

 

이언 매큐언의 '속죄'에 나오는 구절이다. 저 문장들이 내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유명한 작가가 저리 말해주니 나만 그런건 아닌 거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며칠 째 일이 밀려있다. 앞선 일들이 하나하나 마무리되고 현재는 대략 두 가지 큰 과제를 앞에 두고 있다. 그중 한 가지는 답이 나오지 않아 계획을 뒤집고 뒤집으면서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세 번째 단계까지를 짜 놓으면 첫 번째 단계가  어그러진다. 과제를 하면서도 매 단계마다 '버스를 앞에 두고 뛰지 않는 선택'을 했던 걸까. 꽃을 꽂은 채로 꽃병에 물을 주려 했던 걸까. 선택과 노력의 방향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들인 노력에 비례해서 결과 좋으면 얼마나 좋을까.

의미 있는 시도나 무의미한 시도나 다 똑같이 '같은 노력'으로 차곡차곡 쌓이면 얼마나 좋을까? 방향이 틀어져도 그 노력들이 모여 어떻게든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면 얼마나 좋을까? 매 단계 경과를 보면서 마주하는 건 족함일 이다. 러면서도 한편 이 과제의 결과가 엄청나게 좋길 기대한다. 좋은 평가를 받길, 희대의 역작이 나오길 허황된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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