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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호 Jan 02. 2020

새해 인사를 못했다

삐딱한 글: 말하는 대로 과연 이루어질까?

새해 인사를 건네는 것이 멋쩍다. 지인들에게 새해에 행복하시라는 인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와 다른 수다는 한참 떨고도 "행복한 새해 돼라."는 말 한마디를 못했다. 원래부터 이렇게 인사성도 없고 싹쑤가 노란 사람은 아니었다. 오래 지난 이야기지만 학생 때는 고마운 분들에게 직접 손편지를 써서 하나씩 건네드렸다.


그런 인사들에 으레 들어가는 '행복한', '편안한', '즐거운', '하시는 일 잘 되시길...' 등등 말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겠다. '행복의 기준이 뭘까'라든가 '그런 인사를 한다고 해서 정말 행복해지기나 할까?'라는 냉소적인 생각들이 든다. 하시는 일이 '잘'되시라고 할 때 '잘'이 도대체 뭘까. 어디까지 '잘' 되어야 '잘' 되는 걸까? 하는 생각도 한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부터 주변에서 새해라고 분위기를 돋우면 '태양은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데 무슨 새해냐'며 애답지 않은 소리를 종종 했었다. 원하는 대로 혹은 축복의 인사를 건네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삶이라는 사실을 너무 일찍 깨달은 탓인지, 흥성거리는 들뜬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싶은 심술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아이가 자라서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와 비슷하게 지인이 터놓은 삶의 무게 앞에서 함부로 '힘을 내'라거나 '다음에는 잘 될 거야' 등의 말도 못 하겠다. 위로라고 건네는 말들이 과연 위로가 될까. 누군가 삶이 정말 힘든데 내가 위로라고 건네는 말들이 행여 방해는 안 될까. '괜찮냐'는 말을 건네고도 마음 깊이 미안해져 한참을 후회했다.


딱히 뭐라고 내릴 결론도 없이 칙칙한 생각들만 든다.

양심상 새해 벽두부터 이런 기운 빠지는 얘기는 올리지 못하고 하루 지난 지금에서야 발행한다.


오래 브런치를 쉬었다. 자의로 쉬었다기보다 도저히 글 쓸 엄두가 나지 않아 글을 쓰지 못했다. 거의 매일 발행하다시피 하다가 하루를 건너뛰었을 때는 큰 일이라도 난 것 같더니 그 이상을 비워둔 시점에 이르자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오래 비워뒀다 글을 쓰려 앉으니 드는 가장 큰 감정은 '부끄러움'이다. 며칠을 쉬었으니 더 좋은 결과물을 내야 할 거 같은데 실상 별것이 없다. 별 것이 없음에도 지금 쓰지 않으면 이후 더욱 부담스러워지니 억지로 끄적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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