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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호 Jan 03. 2020

너는 한 달에 얼마 써?

연말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건 실상 유통업계다

돌연 친구가 물었다. ‘너는 한 달에 얼마 써?’ 큰 목돈 들어가는 소비가 아닌 이상은 카카오 뱅크 카드로 쓰고 있으므로 이용내역을 보고 알려줬다. 평균적으로 10만 원이 넘을까 말까 하는 범위에서 쓰고 있었다.

     

이내 이번 달에만 얼마를 썼다는 친구의 투정(? -칭긔야 자랑이니?ㅎㅎ)이 들린다. 나의 ‘물욕 없음’이 부럽다고 했다. 몇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걸 보니 거기서 삐쭉- 하고 싶은 말이 있었나 보다. ‘물욕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냥 형편 따라 사는 거지.’ ‘학교에서 일을 하며 장학금을 받고는 있지만 일을 하고 있는 너와 아직 학생인 내 처지가 어떻게 똑같겠느냐.’는 말도 속으로 해본다.

     

너무 일찍 철이 들어서 뭐를 사달라고 떼를 써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 엄마가 동생 들으라고 한 소리를 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살았다. ‘아빠가 10원을 벌어오는데 네가 20원을 쓰면 어떻게 되겠니?’ 한 배에서 나온 자매지만 동생과 나의 소비패턴은 크게 차이가 난다. 동생은 나보다 잘 쓰는 편이다.

    

나는 어지간하면 쓰지 말자는 주의다. 좀 좀생이 같지만 필요한 게 있어 마트에 가도 그람(g) 당 단위 가격이 낮은 것을 고른다. 남들과 꼭 같이 먹어야 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은 외식도 안 하고 식당에 가도 낮은 가격대의 메뉴를 고른다. 어디 가서 말하면 구두쇠 같아 보일까 봐 말을 삼가지만 어떤 불안감 때문에 돈을 쓰지 못하겠다. 습관처럼 두 발끝을 세우고 앉아 있는데 정착하지 못한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


그런 한편 손에 든 핸드폰에서는 철마다 소비를 자극하는 팝업 광고가 뜬다. 일반 포털 사이트는 물론이고 얼마 전 다운로드한 앱에서도 계속해서 광고 메시지가 온다. 연말이면 연말이라고 신년이면 신년이라고 이것을 사야 인싸가 된단다. 기존 이용내력을 기반으로 ***님을 위한 추천목록도 띄워준다. 데이터 기반 사회인 것을 대변하듯 추천목록을 보면 기가 막히게 내 취향이다.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에서 여우 노릇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 돈을 써보아도 결국은 별 것 없다.’는 이치를 깨달은 게 얼마 전이다. 이렇게 아끼고만 살다가는 욕구불만이 쌓여 고약한 성격이 되겠다 싶어 눈 딱 감고 사본 적도 있지만(그래 봤자 3만 원을 못 넘기겠다) 잘 모르겠다. 처음 살 때나 반짝 기분 좋고 말지 결국 내가 가져다 써보면 별 차이가 없다.


자동 로그인 설정을 하지 않았음에도 성별과 연령대를 파악해서 끝없이 색조화장품을 추천해주지만 눈에 반짝이를 올려도 드라마틱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벌써 오조 오억 년 전에 깨달았다. 집에 향초와 워머를 갖다 놓는다고 해도 내 방 분위기와 그 집 방 분위기는 영 딴판일 것이다.       


수저론을 빌려 와서 '애초부터 내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라고 생각해본다. 집안 사정을 살필 것 없이 '엄마 저거 사줘, 저거 사줘.' 소리를 하는 족족 내 손 안으로 물건이 바로 배달되었다면,  커서도 양 손에 쇼핑백을 가득 들고 귀가했을까?


심리 환경적 원인 탓인지, 친구 말대로 내가 타고나길 물욕이 없이 태어나서 인지, 아직 돈맛을 몰라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지금은 자본주의 앞에서 좀 뻗대고 앉아있고 싶다.


네가 이렇게나 추천해줘도 나는 안넘어 갈거야. 약오르지? 나는 쉽게 혹하지 않는 인간이다. 나를 한 번 굴복시켜 봐라.  흠.칫. 뿡.




유통, 마케팅 등등 업종에 종사하시는 여러분, 많이 못팔아드려서 죄송합니다. 나중에 좀 벌면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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