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쩜 이렇게 나약한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하여
출근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교내 카페에 들렀다. 친구가 보내준 쿠폰도 쓰고 나른한 정신도 깨우자는 심산이었다. 카페 일은 처음 하는 티가 나는 직원이 혼자서 주문을 받고 메뉴도 만들고 있었다. 주문이 완료된 후에야 주문이 밀려있다는 얘기를 하는 그의 말을 애써 넘겼다.
가끔은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를 하지 않아서 이후 곤란한 지경에 처한다. 방학이라 여유로운 편이지만 제법 큰 공간을 직원이 혼자 감당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을 때, ‘주문이 밀렸다’는 말을 들은 그때라도 주문을 취소해 달라는 요청을 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주문을 받을 당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던 그를 보며 ‘나는 그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는 넉넉한 사람’이라는 자만심을 뽐내고 싶었을 것이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대기 시간에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책임교수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천천히 오시라는 흔쾌한 답을 받고서도 마음이 불안했다. 절대로 진상 고객은 되지 않으려고, 교양 있는 사람인 체하려고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자꾸 직원에게 눈이 갔다. 이전에 같은 카페에 갔을 때 본 숙달된 직원의 손놀림과 그의 손놀림을 비교하고 있었다. 관상학자도 아니면서 그의 얼굴을 보고 ‘좀 느릴 수도 있는 사람이겠구나.’ 지레 판단을 했다.
지금 글을 쓰려 자리에 편안히 앉은 나는, 내 시선이 폭력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반성을 한다. 그는 밀려있는 주문에 정신이 없었던 와중에도 내 시선을 고스란히 느꼈을지도 모른다. 답답함과 조바심 말고도 짜증이 섞여 있었을 내 시선 때문에 그가 집에 가서 자책 하지나 않을까, 혹시 울지는 않을까 마음이 쓰였다.
실은, 그의 모습 안에서 ‘나의 모습’이 보여 불필요한 감정이 덧붙여졌다. 차분히 시간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은 잘하지만 한정된 시간을 두고 해야 하는 일 앞에서는 긴장을 하는 나. 어떤 상황에서는 손이 느리다는 평을 듣는 나. 매뉴얼이 있는 일에 서툰 나. 그런 나를 보고 여과 없이 말을 내뱉던 이들의 감정을 그대로 안고 있다가 누군가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까딱하다가는 지하실로 몰래 불러 내게 소리를 치던 그 선배처럼 될 것 같았다.
밖으로 나오지 못한 상처와 어떻게든 풀어내지 못한 감정들이 나를 서서히 괴물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 내가 들은 말들이, 내가 받은 타인의 부정적 감정들이 나를 변하게 하고 있다는 두려움이 든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기까지 10분 동안 생각보다 많은 부정적 감정들이 일었다. 나는 어쩌면 괴물이 되기 일보 직전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한 꺼풀만 벗기면 두 얼굴을 가진 괴물로 돌변하는 게 아닐까.
마음속에 해묵은 감정들이 있는데 언어화되지 않을 때가 많다.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을 보면 그런 경험들을 참 잘 풀어내던데 나는 여전히 뭉근하게 때론 예리하게 감정과 상처들을 느끼고만 있다. 부디 나의 상처가 누군가에게 화살로 돌아가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