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검사지에서 다른 선택은 할 수 없었다
나는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아니다. 글 초반부부터 선언적으로 밝혔다고 해서 나에게 어떤 특별 대우를 해달라는 말은 아니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몸의 면역력이 저마다 다르듯이 심리적인 면역력도 제각각인 법이라고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언젠가 글에서 우연히 신청한 교내 심리 프로그램에서 충격적인 결과를 받았다고 적었다. 그 후 두 달 후에는 상품이라는 미끼를 물고 싶어 마친 검사에서 지독한 결과를 받았다. '대학생활실태조사'라는 그 건조한 질문 앞에서도 높은 우울감과 심각한 수준의 불안감이라는 정체성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혹여 내가 픽 죽어버릴까 걱정이라도 되었는지 감사하게도 학교에서 따로 연락을 주셨다. 1회의 상담을 했고 결과를 주신대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저 안 죽어요. 걱정 마세요. 상담은 안 하겠습니다~"라고 연극하듯이 말하려다 낯부끄러워 참았다. 꼭 죽음이라는 방식이 아니라도 세상에서 내가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은 중고등학교 때 종종 했었는데 요즘은 별로 그런 생각도 들지 않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이 역시 코로나의 여파인지 학교에서는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다른 일들을 하느라 그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옅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다시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그런 여타 검사지의 어떤 질문들을 맞이할 때마다 물러설 수 없는 선이 있다는 것을 매번 새삼스레 깨닫기 때문이다.
나도 곧 어떤 연구든지 해야 할 입장이니 동종업계 종사자를 돕자는 마음으로 작은 설문조사에 참여했다. 마침 연구자 전공이 상담심리여서 심리 검사지의 질문들을 다시 마주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부정적 수치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딱 중간에라도 안착하고 싶은데 거기까지 가기가 어려웠다.
어쩌면 심리검사지에서 중간까지 가는 데 평생이 걸릴지도 모른다. 내가 딱히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타고난 기질이 그래서 가치관이 남들과 달라서 마냥 긍정적일 수 없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어떤 검사지에서 '내가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느냐'라고 묻는데 애초에 나는 소소하게 사는 게 편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불안을 옷처럼 입고 살려한다. 그냥 나는 날 때부터 멘털이 좀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말려한다. 지구 넓은데 그럴 수도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