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도 조금 더 어른이 될 수 있기를
2021년 1월 18일에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으로 매스 미디어가 떠들썩하다. 총 120명의 기자들과 함께 약 2시간 동안 진행되었던 만큼, 다양한 토픽들이 마이크 사이를 오고 갔다. 두 전직 대통령들의 사면 문제부터, 검찰총장과 부동산, 재난지원금에 백신, 그리고 북한의 당대회 등. 최근 뉴스 화면을 채워온 이슈들에 대해 대통령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 의견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그러한 자리였던 만큼, 국민 모두에게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16개월 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일명 정인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 또한 빠지지 않았고, 현재 야권의 도마 위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역시 이 사건과 연관되어 있었다.
입양 부모의 경우에도 이렇게 마음이 변할 수가 있기 때문에 일정 기간 안에는 입양을 다시 취소한다든지 또는 여전히 입양하고자 하는 마음은 강하지만 아이하고 맞지 않는다고 할 경우에 입양 아동을 좀 바꾼다든지… (후략)
바꾼다든지
답변의 어느 부분이 논란이 되었는지는 명확하게 보였다. 일부로 말꼬리를 잡으려 하지 않았더라도, 다분히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표현이었다. 요즘에야 워낙 여야를 막론하고 한마디 말만 하면 애써 곡해하고 비난하는 것이 그들의 문화인지라, 어쩌면 누군가는 또 하나 흠을 찾기 위해 귀를 크게 열고 기자회견을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객관적으로, 상식적으로 그리고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민정서적으로 들어도 '아이를 바꾼다'는 어휘는 결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표현이었으니 말이다.
점심을 먹으며 식당 TV에서 나오는 해당 장면을 봤을 때에는 나 역시 손이 턱 멈추더라.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그러고는 숟가락을 손에 든 채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래, 그럴 수 있지. 합리적이네.
예상치 못했던 해결책에 잠시 당황했었지만, 이윽고 나는 저 해답에 일정 부분 동의했다.
어쩔 수 없는 차악(次惡)이라고 생각했다. 부모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버려지고 학대받는 아이가 생길 바에야, 차라리 리셋 버튼을 만들어주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혹시 아이에게도 두 번째, 세 번째 기회가 올지도 모르니까. 무책임하고 잔인하더라도 최악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저 아름답기만 한 최선보다는 차악을 선택하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말해서는 안됐다. 결국은 합리적이네라고 말해버린 나였지만, 그것은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기에, 입양을 가본 적이 없기에, 그 생명의 무게와 아픔을 알지 못하기에 내뱉을 수 있는 망언이었다. 하물며 한 명의 대통령으로서, 한 명의 아버지로서, 무엇보다 한 명의 어른으로서 해도 괜찮은 말은 아니었다. 저런 이기적인 해법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니 말이다.
아이를 바꾼다? 학대는 입양 가정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답변 내에서도 아동 학대의 가해자는 '양부모'가 아니라 '부모 혹은 양부모'라고 지칭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 이번 정인이 사건이 입양 가정이었기 때문일까 ― 입양의 경우는 따로 덧붙여서 대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 초점을 맞추어야 할 곳이 정말 '입양'일까? 정작 기자의 질문은 이번 일이 언급되었을 뿐, 전체적인 아동 학대 사건에 대한 물음이었다. 중요한 건 정인이가 친자인지 양자인지가 아니다. 그 아이가 학대를 당했다는 그 사실이 무엇보다 중대한 일이지 않을까. 만약 정인이가 친자였다면, 그때는 친자를 바꿔준다고 했을까?
입양도, 출산도 모두 부모와 아이가 만나는 아름답고 숭고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제도적으로는 둘 사이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입양에는 절차가 있고 자격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 결과 이루어지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는 다름이 없지 않은가. 구태여 입양에 대해 추가적인 대책을 마련하고자 했다면 입양 후가 아니라 입양 전, 다시 말해 입양자의 심사에 있어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면 되지 않았을까. 아이를 교환품 취급하는 듯한 말 자체보다, 일차원적인 해소법 밖에 내놓지 못하는 모습이 더 실망스러웠다.
이번 일을 곱씹어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도, 그도 조금 더 어른이 될 수 있기를―.
사건을 비추는 엇나가버린 초점이 바로잡혀, 보다 확실한 대책이 마련될 수 있기를, 그래서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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