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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ni Jun Jan 19. 2021

우리 아이도 교환이 되나요

나도, 그도 조금 더 어른이 될 수 있기를

2021년 1월 18일에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으로 매스 미디어가 떠들썩하다. 총 120명의 기자들과 함께 약 2시간 동안 진행되었던 만큼, 다양한 토픽들이 마이크 사이를 오고 갔다. 두 전직 대통령들의 사면 문제부터, 검찰총장과 부동산, 재난지원금에 백신, 그리고 북한의 당대회 등. 최근 뉴스 화면을 채워온 이슈들에 대해 대통령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 의견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그러한 자리였던 만큼, 국민 모두에게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16개월 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일명 정인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 또한 빠지지 않았고, 현재 야권의 도마 위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역시 이 사건과 연관되어 있었다.


입양 부모의 경우에도 이렇게 마음이 변할 수가 있기 때문에 일정 기간 안에는 입양을 다시 취소한다든지 또는 여전히 입양하고자 하는 마음은 강하지만 아이하고 맞지 않는다고 할 경우에 입양 아동을 좀 바꾼다든지… (후략)


바꾼다든지


답변의 어느 부분이 논란이 되었는지는 명확하게 보였다. 일부로 말꼬리를 잡으려 하지 않았더라도, 다분히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표현이었다. 요즘에야 워낙 여야를 막론하고 한마디 말만 하면 애써 곡해하고 비난하는 것이 그들의 문화인지라, 어쩌면 누군가는 또 하나 흠을 찾기 위해 귀를 크게 열고 기자회견을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객관적으로, 상식적으로 그리고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민정서적으로 들어도 '아이를 바꾼다'는 어휘는 결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표현이었으니 말이다.


출처: 청와대


점심을 먹으며 식당 TV에서 나오는 해당 장면을 봤을 때에는 나 역시 손이 턱 멈추더라.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그러고는 숟가락을 손에 든 채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래, 그럴 수 있지. 합리적이네.

예상치 못했던 해결책에 잠시 당황했었지만, 이윽고 나는 저 해답에 일정 부분 동의했다.


어쩔 수 없는 차악(次惡)이라고 생각했다. 부모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버려지고 학대받는 아이가 생길 바에야, 차라리 리셋 버튼을 만들어주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혹시 아이에게도 두 번째, 세 번째 기회가 올지도 모르니까. 무책임하고 잔인하더라도 최악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저 아름답기만 한 최선보다는 차악을 선택하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말해서는 안됐다. 결국은 합리적이네라고 말해버린 나였지만, 그것은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기에, 입양을 가본 적이 없기에, 그 생명의 무게와 아픔을 알지 못하기에 내뱉을 수 있는 망언이었다. 하물며 한 명의 대통령으로서, 한 명의 아버지로서, 무엇보다 한 명의 어른으로서 해도 괜찮은 말은 아니었다. 저런 이기적인 해법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니 말이다.


출처: 청와대


아이를 바꾼다? 학대는 입양 가정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답변 내에서도 아동 학대의 가해자는 '양부모'가 아니라 '부모 혹은 양부모'라고 지칭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 이번 정인이 사건이 입양 가정이었기 때문일까 ― 입양의 경우는 따로 덧붙여서 대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 초점을 맞추어야 할 곳이 정말 '입양'일까? 정작 기자의 질문은 이번 일이 언급되었을 뿐, 전체적인 아동 학대 사건에 대한 물음이었다. 중요한 건 정인이가 친자인지 양자인지가 아니다. 그 아이가 학대를 당했다는 그 사실이 무엇보다 중대한 일이지 않을까. 만약 정인이가 친자였다면, 그때는 친자를 바꿔준다고 했을까?


입양도, 출산도 모두 부모와 아이가 만나는 아름답고 숭고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제도적으로는 둘 사이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입양에는 절차가 있고 자격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 결과 이루어지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는 다름이 없지 않은가. 구태여 입양에 대해 추가적인 대책을 마련하고자 했다면 입양 후가 아니라 입양 전, 다시 말해 입양자의 심사에 있어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면 되지 않았을까. 아이를 교환품 취급하는 듯한 말 자체보다, 일차원적인 해소법 밖에 내놓지 못하는 모습이 더 실망스러웠다.


이번 일을 곱씹어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도, 그도 조금 더 어른이 될 수 있기를.

사건을 비추는 엇나가버린 초점이 바로잡혀, 보다 확실한 대책이 마련될 수 있기를, 그래서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본 게시글의 사진들은 공공누리 제4 유형에 따라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들은 '청와대, https://www1.president.go.kr/articles/9787'에서 무료로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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