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돔과 고모라. 악덕과 타락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성경 속의 두 도시. 나는 그곳에 살고 있다.
투기. 불로소득. 적폐.
소돔 1번가에 살고 있는 부동산 악마들에게는 뾰족한 꼬리 대신 무거운 꼬리표가 달려있다. 마치 범죄자임을 나타내는 낙인과도 같이. 다주택자, 고가주택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닌다. 악마들의 사정 따위 누구의 귀에도 닿지 못한다. 이야기를 해봤자 투기꾼의 거짓부렁이고, 억울함에 눈물 흘려도 콧방귀 소리만이 돌아올 뿐이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우리를 향한 혐오는 거세져만 간다. 그야 우리는 악마들이니까.
소돔 1번가에는 성실한 악마가 살고 있다. 새벽시장을 전전하며 아끼고 저축하여 내 집 마련의 꿈을 일궈낸 성실한 악마.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기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직 노력뿐이었다. 공부하고 부딪히고 도전하고 실패하며 평생을 달려온 성실한 악마는, 언제부턴가 '소돔 1번가의 주민'이라 멸시받았다. 다주택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동안의 노력이, 노력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다. 투기꾼이다. 불로소득이다. 적폐 세력이다. 그저 성실했을 뿐인데. 그저 절박했을 뿐인데. 열심히 꿈꾸고 열심히 살아왔을 뿐인데.
누군가를 미워하며 원망하고 저주하는 존재가 악마라면, 나는 분명 악마임에 틀림없다.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내 가족을 향해 손가락을 쏘아대는 사람들. 당장의 콩고물에 눈이 멀어 사고를 멈춘 사람들. 흑백논리에 빠져버린 참으로 선량하고 가여운 그 사람들이, 나는 정말로 밉다.
과연 진짜 악마는 누구일까. 소돔과 고모라는 정말 타락의 메카였을까. 세상은 점점 양분되고 있다. 다주택자와 그렇지 않은 자. 탐욕스러운 악마와 순박한 피해자. 그런 프레임으로 되어 있다.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와 과세가 언론을 채우며, 우리는 점점 더 악마가 되어간다. 누가 우리를 악마로 만들었는가. 누가 우리를 악마로 여기게끔 허하였는가. 만일 재산을 가진 것이 죄가 된다면, 우리는 이미 벌 속에서 살아 가고 있다. 성실히 세금을 내러 갔던 순간에조차 우리는 나라에게 배척당했다. 어쩌면 그때부터였으리라. 나 스스로가 악마라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던 게.
그래, 악마니까 도움받지 못하는 게 당연한 거지. 이렇게 사는 게 당연한 거지. 그래서 우리는 또 배웠다. 다주택자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니까. 스스로 배워 스스로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가끔씩은 정말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온다. 지쳐가는 걸까. 우리를 악마라 이름 붙인 그들은 이 모습을 바랐던 걸까. 그렇게 악마들을 몰아낸 뒤, 소돔과 고모라에 자랑의 기본 주택을 세워보아라. 비로소 그 순간 소돔 1번가는 진짜 악마들이 세운 도시로 전락할 테니.
내 집 마련의 꿈을 앗아간 게 정말 우리일까. '행복주택', '임대주택'. 번드르르한 포장 속에도 선의가 들어있을까. 부디 누군가가 아닌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