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장편 소개
무덥다. ‘우천 영화제’라 불렸던 이전과 달리, 올해의 BIFAN은 대체로 맑고 더웠다. 상영관들의 간격이 한 블록 정도라 걸어서 5분이면 이동이 가능했지만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걷자니 그 5분조차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다행히도 올해 내가 관람한 대부분의 영화는 중동 현대백화점에 위치한 부천 CGV에서 상영되었기에, 백화점의 지하 식당가를 통해 밖에 나가지 않고도 점심이나 저녁을 해결할 수 있었다. 여름에 열리는 행사이기 때문에 항상 더웠다는 것은 변함없지만, 올해는 유난히 더 덥게 느껴졌다. 지구 온난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머리뿐만 아니라 몸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1편에서 단편 여섯 작품들에 대한 감상을 남겼듯이, 이번에는 관람한 장편 영화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이번에는 네 편만 뽑아 소개하고 특별히 인상 깊었던 작품은 따로 글을 쓰고자 한다. 영화제 상영작들 중 일부는 이미 VOD 서비스를 통한 공개가 확정되어 안방에서도 관람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또 일부는 수입되어 극장 스크린을 통해 정식 개봉될 것이다. 비록 아래 감상평에는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있지만 이 영화들을 접할 기회가 오게 된다면 꼭 직접 보기를 추천한다. 부천 영화제 상영작들은 글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강렬한 시청각적 에너지를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주인공 ‘베이요’는 보수를 받고 동물을 안락사시켜주는 사람이다. 그가 받는 보수는 주인이 동물에게 한 학대의 강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돈을 받지 않는 대신 어떠한 행동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좁은 우리에 동물을 가둬놓았던 사람을 마찬가지로 우리에 잠시 가둬놓는다던지, 동물을 자기만족의 도구로 이용하는 사람에게 설교를 하는 식이다. 사실 영화가 처음 시놉시스를 읽고 예상했던 내용과는 달랐다. 동물 애호가인 주인공이 학대범들을 잔혹하게 처단하는 유혈 낭자한 스릴러를 기대했으나, 실제 영화는 이와는 달리 철학적인 메시지에 더욱 중점을 두고 있다. 영화의 전반부에서 베이요는 위와 같은 애교 수준의 대가를 요구한다. 하지만 후반부 어떠한 사건이 그에게 심리적인 트리거로 작용하여 그가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케 하고, 이를 통해 그의 신념이 드러나게 된다. 그는 정말 동물 애호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 내에서 그가 타인에게 ‘벌’을 주는 이유, 그가 지닌 신념은 ‘동물을 지키자’가 아니라 ‘고통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인지하든 하지 못 하든,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기심과 분노로 인해 고통을 주고 업보(카르마)를 쌓아간다. 영화의 주인공은 남에게 준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는 것을 통해 업보를 청산하려 하지만 이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것인지 단언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 이는 해소와 동시에 업보를 재생산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휘두르는 것이 양날의 검임을 알고, 고통과 업보의 연쇄를 끊는 것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정직한 제목 그대로, 주인공인 ‘짐’이 동정을 졸업하기 위해 그의 친구와 함께 어떤 자매와 더블데이트를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대소동을 다루고 있다. 시놉시스에서 드러나는 대략적인 플롯이나 ‘동정’이라는 소재만 보면, 이 영화도 특별할 것 없이 전형적인 ‘Boy meets Girl’ 스토리라 생각될 수 있다. 때문에 이 영화를 예매하면서도 획기적인 스토리나 캐릭터 활용보다는 그저 19금 코미디를 최대한 잘 살려주기만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 ‘피 터지는’ 도입부는 이 영화가 지닌 특색을 강렬하게 보여주며 성공적인 자기 PR과 함께 관객에게 흥미와 기대를 유발하였다. 초중반부의 장르적 익숙함이 중반 이후 캐릭터의 변주, 액션과 오컬트적 요소의 추가로 인해 해소되었고, 걸 크러쉬를 강조하여 기존의 비슷한 작품들과 차별점을 두고 있다. 물론 기대를 완벽히 충족시키지는 못 했다. 주연보다 조연 캐릭터의 개성이 더 두드러졌으며, 캐릭터의 변주가 있었음에도 주연인 두 인물은 ‘참 착하지만 어리숙한 남성’과 ‘강해 보이지만 사실은 여리고 착한 여자’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또한 작중 언론에서 살인자 자매를 칭하는 표현인 ‘맨 이터(Man eater)’라는 표현은 남성을 유혹해 잡아먹는 악한 여성이라는 ‘요녀(妖女)’ 프레임의 연속이고, 남성의 사랑이 여성을 구원한다는 식의 결말 역시 남성주의적인 시선의 한계로 보일 수 있다. 영화는 분명히 많은 부분에서 장르적인 클리셰나 영화 속 가부장제를 답습하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이를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 해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주고자 한 점이 느껴지고, 액션과 유머에 있어서는 기대 이상이었으니, 기회가 된다면 관람을 추천하는 작품이다. 작년 상영작인 <68KILL(역제: 킬러의 보이프렌드)>은 VOD 공개가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비슷한 느낌의 작품이니 함께 추천한다.
무려 ‘하이틴 좀비 뮤지컬 영화’라는 쌈박함으로 무장한 이 영화는 나의 올해 부천 영화제 기대작 Best 3 중 하나였다. 좀비 뮤지컬이라고 해서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 뮤직비디오처럼 캐릭터들이 좀비와 춤을 추는 것은 아니다. 좀비는 좀비대로 달려들고 학생들은 그들 나름대로 할 일 – 도망치거나 싸우거나 – 을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실망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인간과 좀비의 구분을 더욱 확실히 하는 느낌을 받아,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크리스마스 날, 작은 마을에 좀비 사태가 벌어지며 그 속에서 각 인물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인물들의 심리적인 불안이나 고민, 그리고 성장은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에서 드러난다. 영화 초반 주연 아이들은 자신들이 처한 현재 상황 – 진로나 가족, 인물관계 등 – 에서 ‘벗어나고 싶어’라고 노래 부르지만, 후에 좀비들에 의해 가족과 떨어져 고립되자 ‘사람 목소리가 필요해(듣고 싶어)’라고 노래하며 진심과 마주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 속 나오는 노래들의 가사가 모두 충분히 공감되고 배우들의 노래 실력 역시 매우 뛰어나서 뮤지컬 영화로서는 손색이 없었지만, 다른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전체적으로 이전에 소개한 적이 있는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새벽의 황당한 저주>와 유사한 부분이 많았다. 커튼에 비친 좀비 그림자, 속도감 있는 화면 전환, 무기로 쓰이는 크리켓 배트 등 오마주라 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가져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무엇보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에서 ‘숀’이 좀비 사태를 눈치 채지 못 하고 아침 거리를 걷는 장면은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라는 주제의식을 내포한 장면이지만, 본 작품에서는 단순히 노래를 부르면서 걷느라 알아차리지 못 하는 것이기에 임팩트에 차이가 느껴졌다. 이를 포함해 몇몇 장면들에서 두 영화가 굉장히 큰 유사성을 보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둘을 비교하게 되고, 결국 ‘에드가 라이트의 영향을 받은 하위 호환’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지난 2017년 개봉했던 <23 아이덴티티>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안야 테일러 조이’와 올해 상반기에 대중문화를 향한 찬사를 보낸 <레디 플레이어 원>의 사만다(아르테미스) 역 ‘올리비아 쿡’ 주연의 스릴러 영화로, 원제는 <Thoroughbreds(서러브레드)>이다. ‘경주용으로 개량된 말 품종’이라는 뜻의 ‘서러브레드’처럼 두 주연 인물들은 인생이라는 레이스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주위로부터 요구를 받는다. 주연인 ‘릴리’와 ‘아만다’는 서로 정반대의 인물이다. 릴리는 너무 많은 걸 느끼고 생각하며, 반대로 아만다에게는 감정과 공감능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둘은 서로 타의에 의해 만나게 되지만, 릴리는 자신과 다른 아만다에게서 무언가를 느끼고 둘의 교류는 이어진다. 마치 연극처럼 영화는 챕터 별로 나뉘어, 극이 진행될수록 작품 속에 흐르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격해진다. 계부를 살해하기 위한 두 소녀의 만남은 어떠한 화학반응을 일으켰고, 이는 그들에게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모든 것에 반응하면서도 진짜 자신은 감추던 소녀는 솔직하며 대범해졌고, 무감정한 또 다른 소녀는 스스로가 자신이 죽였던 말이 되는 꿈을 꾸거나 거울을 보며 미소를 짓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들에게 일어난 변화는 진화일까, 아니면 죄악일까. 영화를 보고 결말을 마주한다면, 이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