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꽂히면 주야장천 한 놈만 패는 사람을 알고 있다. 결단코 좌고우면하지 않는다. 그 무시무시한 의지력과 집중력으로 빚어내는 매질에 대적할 수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있기는 한 걸까 궁금해했던 적이 있다. 어쩌다 자신의 레이더망에 걸린 그 한 놈을 패기 위하여, 오로지 그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언젠가는 대중교통으로 2시간이 넘는 서울 강남 어느 곳을 기꺼이 다녀오기도 했던 사람. 그놈을 팰 수만 있다면, 그 사람에게 있어 거리 따위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렇듯 한번 걸리면 십중팔구 만신창이가 되고 마는 '그놈들'. 불요불굴의 자세로 반드시 뜻한 바를 이루고야 말았던 그 사람이 최근 또 다른 새로운 놈을 정조준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내가 매 맞는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오금이 저려 왔다. 이번에 타깃이 된 그놈을 생각한다. 불쌍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매질계의 일타인 그 사람에게 간택된 것에 대해 오히려 감사의 마음을 가지라 말해줘야 하나. 탄복할 수밖에 없는 고도의 매질. 그러고 보니 언젠가 나도 타격감 좋은 매질로 꾸준하게 한 놈을 팼던 기억이 있다.
대학생 시절, 한동안 동문 후배의 자취방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당시엔 나도 그렇고 녀석 또한 게으름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던 시기였으므로 저녁식사를 해결하는 게 늘 골칫거리였다. 방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귀찮은 일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피자를 시켜 먹는 것. 가까운 곳에 피자를 꽤 맛있게 하는 집이 있었고, 더구나 열 번을 시켜 먹으면 매번 딸려오는 쿠폰 10장을 모아 피자 한 판을 무료로 먹을 수도 있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요즘이야 이 정도는 서비스 축에도 못 끼겠지만, 그 시절에는 나름 경쟁력 있는 마케팅 전략이었으니까.
저렴한 가격에 비해 맛이 참 좋았기에 생각날 때마다 가끔씩 그렇게 피자를 시켜 먹었는데, 급기야 언젠가부터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속으로 피자를 시켜 먹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 기간이 아마 2주 동안이었나 그랬을 것이다. 이런 걸 일컬어 소위 아작 모드라고 할 텐데, 그 당시 나의 주 종목이 순두부찌개였음을 감안하면 그때 왜 그렇게 신들린 듯이 피자를 먹어댔는지는 참으로 의문이다. 미치도록 먹었던 피자는, 위험수위를 한참이나 넘어버린 당시의 게으름 때문에 그저 우연히 선택된 희생양이었을 수도. 아무튼 그때 그 일을 계기로 우리 둘 다 피자에 얼마나 질려버렸는지 그 후로 오랫동안 서로에게 아예 피자라는 말 자체를 꺼내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그 일에 대해 얘기해 줬더니 돌아오는 건 미쳤다는 말과 함께 황당하다는 웃음뿐이었다.
그로부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 오랜만에 그곳에서 피자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지인 몇 명과 관악산에 다녀왔다가 들른 것이었는데, 상호는 피자로니에서 엘노핌피자로 바뀌어 있었지만 주인아저씨와 피자의 맛, 그리고 가격은 예전 그대로였다. 맨 처음 그곳에서 피자를 시켜 먹었을 때는 배달용 오토바이가 한 대뿐이었는데 그새 대여섯 대로 늘어나 있었고 더구나 가게의 한쪽 벽에는 당시 우리가 다녔던 대학교 선정 맛집이라는 글씨가 선명히 박혀있는 액자까지 걸려 있었다. 아무렴, 맛이 있으니 당연히 번창할 수밖에. 후배 한 명과 미친 듯이 먹어댔던 지난 시절의 일탈이 말 그대로 그저 정신 나간 행동은 아니었음을 확인받는 순간이었다. 그래, 우린 미친놈들이 아니었어! 거짓말 조금 보태서 약간 감격스러웠기도.
집요하리만큼 꾸준하게 피자를 공략했던 이력을 상기하며 샌드위치를 시켰다. 그 당시 내 매질의 타깃을 접어두고, 요즘 그 사람이 몰입하고 있다는 그놈을 주문했다. 이쪽저쪽 한눈팔지 않고 줄곧 한 놈만 패는 그 사람의 집중력과 노련한 타격감을 배워보고 싶었다. 익혀보고 싶었다. 맛보고 싶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몸에 좋은 영양가가 듬뿍 담겨 있을 것 같은 비주얼. 더블 에그포테이토치즈 샌드위치가 일빠다. 한 대 칠 듯 노려보는 것으로 기선을 제압한 후 입안에 넣고 매질을 가한다. 소가 여물을 씹듯이 야채와 계란과 감자와 치즈를 버무려 가며 그 맛을 음미한다.
아, 결국 이것이었나. 오로지 한 놈만 패는 그 사람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갔다. 본인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저 씹는 일에만 몰두할 뿐 자연스레 모든 걸 잊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이놈을 패고 또 패고 싶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매질의 숙련도는, 패는 내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 맞는 이놈이 키워주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요즘 이놈 패는 일에 맛 들린 그 사람이여, 무언의 가르침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때려서 미안하지만, 때림으로써 더더욱 사랑이 깊어지는 이놈. 미안하다, 사랑한다. 남은 너희 둘은 긴장 풀고 기다리고 있으렴. 오늘 저녁, 늦지 않게 내가 찾아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