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모메 식당, 2007>
멀쩡하게 생긴 한 핀란드 청년이 헬싱키 선창가 근처에 위치한 카모메 식당에서 무료로 커피를 마신다. 일본문화에 관심이 있으며 초급 수준의 일본어 회화까지 가능한 그가 어떻게 하여 일본인 여성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평생 무료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는지 찬찬히 들여다 보기로 하자. 순진하고 어수룩한 태도 이면에 감춰진 실리 본위의 처세술, 그리고 때때로 난처한 상황에 직면했을 경우 어떤 방법을 동원하여 그 순간을 모면하려 하는지 등등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처음으로 카모메 식당을 찾았을 때 청년은 고양이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냐로메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실마리가 되어 그는 평생 무료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된다. 고양이 한 마리로 득템을 하는 상황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기에,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에 앞서 잠시 고양이에 대해 좀 살펴봐야 할 듯싶다.
영화의 초반, 식당 운영자 사치에는 자신이 어렸을 때 키웠던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살이 뒤룩뒤룩 찐 깡패 기질의 고양이 나나오. 화면 가득 클로즈업되는 헬싱키 선창가 뚱땡이 갈매기들을 배경으로, 그 옛날 10킬로그램이 넘는 나나오에게 어떤 애정을 쏟았는지, 그리고 녀석이 숨을 거두었을 때 어떤 슬픔을 흘렸는지 담담하게 회고한다. 이렇듯 영화 속에서 고양이는 사치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이 분명한데, 이런 사실은 통통한 고양이를 품에 안은 어느 이름 모를 핀란드 할아버지가 선창가를 배회하는 장면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왜냐하면 영화 속 미도리와 마사코가 고양이를 안은 이 할아버지와 스치듯 만나면서 결국엔 사치에가 운영하는 카모메 식당에 모여 함께 일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사코는 이런 말까지 하지 않던가. 그 낯선 할아버지가 자기에게 고양이를 떠맡기는 바람에 핀란드를 떠날 수 없게 됐으니 이젠 어쩔 수 없이 이곳 카모메 식당에 남을 수밖에 없다고. 다소 엉뚱한 감이 없지 않으며 때로는 기묘하기까지 하지만, 100분가량의 러닝 타임에서 드문드문 튀어나오고 있는 이 같은 에피소드들이 오히려 영화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카모메!"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이 한마디를 건네는 핀란드 청년 토미 힐트넨. 초면에 자신이 일본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을 내비침으로써 일본인 식당 주인으로부터 친밀감을 유발하려 하고 있다. 고도의 전술이다. 이내 커피 한잔을 시킨 후 그윽한 시선으로 사치에를 바라보는 토미. 표정을 보아하니 그럭저럭 시작은 괜찮았다며 스스로 만족해하는 듯하다. 자, 다음이 중요한데 말이지. 커피를 가져온 사치에가 바로 자리를 뜨지 않고 셔츠에 그려진 고양이 냐로메에게 관심을 보인다. 토미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성공했군! 친밀감 유발 단계를 지나 이제 그는 환심 사기 작전에 돌입한다, 뜬금없이 갓챠맨 노래 가사를 알려달라고 하면서.
사실 그도 처음부터 무료로 커피를 마실 수 있으리라 100% 확신을 하고 카모메 식당을 찾은 건 아니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그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준다는 파울로 코엘료 표 연금술이 시의적절하게 작렬하는 행운이 있었을 뿐. 커피를 다 마신 후 계산을 하려는 토미에게 사치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식당에 처음으로 온 손님이니 커피는 무료라고. 그 순간 토미의 얼굴에 화산처럼 폭발하던 미소가 참 인상적이었다.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을 주체하지 못한 토미는 식당 문을 나선 후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청바지 속으로 동전을 집어넣고 있는 그의 얼굴에 만연하는 기쁨. 커피값 굳었다!
두 번째 등장부터 토미는 곤니찌와맨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도장을 찍기 시작한다. 사치에가 미도리를 가리키며 갓챠맨 노래 가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하자 겁나게 반갑다며 껴안을 기세로 다가서는 토미.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핀란드 청년이 환한 표정을 지으며 막무가내로 들이대자 무척 놀라는 미도리. 눈 튀어나오지 않은 게 다행이다. 경기 일으키지 않은 게 다행이다. 하지만 사치에와 미도리는 까맣게 모르고 있다. 토미가 이렇게 반가워하는 것은 단지, 사치에의 주변 사람들까지 제대로 포섭하여 어느 여름 해맑은 아침나절, 100%의 무료 커피를 만나기 위한 매조지 작업의 일환이라는 것을.
세 번째 등장에서 그는 살짝 시치미를 떼는 용의주도함을 보인다. 왜 그랬을까. 미도리가 일본어가 적힌 메뉴판을 가져다 주었을 때(사실 이건 쓸데없는 일, 왜냐하면 토미는 무조건 무료 커피만 마시기 때문) 토미는 가능하면 빠른 시일 내 서로 친하게 지내기 위한 일념으로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써달라고 부탁한다. 그 순간 미도리는 방금 전 메뉴판을 만들면서 여백에 돼지를 그려 넣었던 것을 회상하며 토미 힐트넨의 이름을 다음과 같이 써준다. '돼지 몸뚱이가 날마다 기도한다.' 그런데 대체 무슨 내용으로 기도를 한다는 걸까. 지금처럼 앞으로도 계속 별 탈 없이 공짜 커피 마시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는 걸까. 초급 일본어 회화가 가능한 토미가 이름에 담긴 말 뜻을 모를 리 없다. 미도리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뜨끔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돼지가 뭐야, 돼지가. 하지만 화내지 않는다. 왜? 잘 보여야 하니까. 사치에와 함께 일하고 있는 미도리에게 밉보이면 평생 무료 커피 옵션을 철회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힌 토미는 꾹꾹 참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겉으로는? 좋다고 웃는다.
이제는 자동으로 커피 대령이다. 흐뭇해하는 토미. 하지만 이번엔 감수해야 할 일이 있다. 퓨전 오니기리(주먹밥)를 시식해야 하는 것. 한 달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카모메 식당엔 무료 커피에 목을 멘 토미를 제외하고 단 한 사람의 손님도 오지 않았다. 이를 염려하던 미도리가 사치에에게 퓨전 요리를 만들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한 적이 있는데, 마침 토미가 식당을 찾아온 시간에 순록고기와 청어, 그리고 가재를 조합한 퓨전 오니기리를 만들어 다 함께 시식을 하게 된 것. 하지만 핀란드 청년에게 퓨전 오니기리는 참기 힘든 음식. 돼지 몸뚱이로 날마다 기도한다는 이름을 건네받았을 때도 잘 견뎌냈건만, 생존의 필수요소이자 인간 본능의 최정점에 자리한 식욕의 근간 미각을 타깃 삼아 고문을 해오는 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나 보다. 시치미를 뗄 수가 없다. 나름 신경을 써서 음식을 대접한 두 사람에게 최대한 실례가 되지 않는 말을 골라 대꾸를 할 마음도 들지 않는다. 고통을 부르는 맛이다. 얼굴이 일그러진다. 순록고기와 청어가 들어간 오니기리에 단단히 맛이 간 토미. 결국 마지막에는 오니기리에서 가재만 톡 떼어서 먹는다.
지난날 퓨전 오니기리 시식에서 너무 노골적으로 거부감을 보였던 토미. 지나고 나니 불안하다. 등골이 싸늘하다. 혹시 그 일 때문에 이제 공짜 커피와는 영영 안녕을 하게 되는 건 아닐지. 얼마나 많은 걱정으로 주저하고 머뭇거렸으면 이번엔 뒤에 보이는 세 명의 아주머니들에게 '식당 출입 1빠' 타이틀을 넘겨주기까지 했겠는가. 어떻게 하면 그날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을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이날 토미는 무사도란 글씨가 박힌 티셔츠를 입고 등장한다. 자신은 일본문화를 좋아한다는 티를 바짝바짝 내면서 혹시나 화가 났을지 모르는 사치에와 미도리의 기분을 풀어보려는 고도의 전술! 참으로 영리한 넘이다. 정말이지 공짜 커피가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허나 걱정과는 달리 식당에 들어서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자신을 맞아주는 두 사람.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그 순간 토미는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방심을 하고 있는 사이, 미도리가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해왔다. "넌 친구도 없는 거야?" 보통의 핀란드 청년들과는 달리 하루가 멀다 하고 식당을 찾아와 조용히 커피를 마시고 가는 토미가 그녀의 눈에는 아무래도 수상쩍었던 것. 미도리의 질문을 받은 토미는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모른다. 머리 회전이 빠른 그는 이내 미도리의 말을 못 알아들은 척 발뺌을 하지만, 어느 정도 일본어를 할 수 있는 그가 이처럼 기본적인 단어들로 이루어진 문장의 의미를 모를 리는 만무한 일. 하지만 무방비 상태로 자신의 처지가 밝혀지는 걸 두려워한 토미는 끝까지 시치미를 떼고 마는데, 급기야 사치에에게 대체 이게 무슨 말이냐며 구원을 청하는 듯한 시늉을 하는 장면에서는 왜 그리 가련하고 안타까워 보이던지. 참고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각각의 상처를 지니고 있는데, 부각되지만 않았다 뿐이지 실은 토미에게도 나름의 상처가 있었다. 이를테면 외톨이라는 아픔.
이 시점에서 잠시 미도리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어떻게 하여 토미에게 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을까. 단순히 여자의 육감으로 찍은 것일까. 아니다. 사실은 그녀에게도 토미와 똑같이 외톨이라는 아픔이 있었기 때문. 영화의 초반, 사치에가 서점에서 미도리를 만났을 때 이런 질문을 한다. 왜 핀란드에 왔냐고. 관광하러? 사업차? 기분전환을 위해? 이 모든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을 한 후 미도리는 이렇게 이야기를 잇는다. 세계지도를 펴놓은 상태에서 눈 감고 그냥 찍었다고.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찍은 곳이 핀란드라서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대체 이 말은 무슨 의미일까. 이 세상천지 자신을 받아줄 곳이 없노라 생각했기에 어딘들 상관이 없다는 체념으로 눈을 감았을 것이며, 결국 자신의 의지가 관여되지 않은 그 같은 행동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을 만큼 그녀는 외로웠던 것이다.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할 정도까지 삶에서 궁지로 내몰린 상태였던 것이다.
사치에의 집으로 거처를 옮긴 날 저녁, 미도리는 밥 한 젓가락을 입에 담고는 이내 울먹이고 만다. 미도리가 이 같은 행동을 보인 이유는 영화의 말미에서 자연스레 밝혀지게 되는데, 바로 사치에가 오니기리를 식당의 주메뉴로 정한 이유에 관하여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해주는 대목에 이르러서이다. "오니기리는 자신이 만든 것보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것이 훨씬 더 맛있다." 여기에서도 미도리는 눈물을 흘리고 마는데, 아마도 그것은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건네는 행위, 그리고 그 행위에 담긴 진심 어린 관심과 사랑을 절실하게 바랐었던 과거의 아픈 기억들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치에에게 왜 낯선 자신을 선뜻 식당에서 일하도록 받아줬는가 하고 물은 것도, 그리고 세상이 끝날 때는 반드시 마지막 만찬에 자기를 초대해 달라고 재삼재사 확인한 것도 다 자신이 그렇게 사무치도록 외로웠었기 때문이다.
지난 번 무사도 티셔츠에 이어 이번엔 게이샤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 토미. 그래,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확실한 밀어붙이기 작전이구나. 감탄스럽다.
창가 쪽 자신의 지정석에서 이미 커피 한잔을 마신 토미가 이번엔 조리장에까지 다가와 공짜 시나몬롤에 도전하고 있다. 지독한 넘! 아무 말 없이 그저 사치에에게 특유의 살인미소만을 날리고 있는 토미. 그래, 커피도 공짜로 마시는 판국에 빵까지 지 입으로 직접 달라고는 못하지. 마음씨 좋은 사치에가 먹을 거냐고 의향을 물으니, 이때다 싶어 흥분 섞인 목소리로 잽싸게 오케이를 외친다. 커피에다가 이제는 시나몬롤까지. 과연 그의 무료 음식 탐방기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인지.
자, 그런데 이번에도 그는 예기치 않은 일을 맞닥뜨리게 된다. 퓨전 오니기리를 시식하면서 오만상을 찌푸렸던 지난날의 경험은 앞으로 닥칠 일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언제부턴가 이상한 분위기의 한 핀란드 중년 여인이 카모메 식당의 사치에와 미도리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켜 왔는데, 급기야 이번엔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와 독한 술을 시키기까지 한다. 다소 몽롱한 눈빛과 살짝 휘청거리는 몸짓을 보아하니 다른 곳에서 이미 전작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체구는 작지만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내공이 장난이 아닌 듯한 마사코와 대작을 하는 만용을 부리다가 결국 그 자리에서 뻗어버리고 만다.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한쪽 구석에서 맛있게 시나몬롤을 먹고 있던 토미의 힘이 절실하다. 오늘은 무료 커피에다가 무료 시나몬롤까지 먹은 날! 기분이 업된 토미는 기꺼이 그 여인의 집까지 그녀를 둘러업고 가게 되지만, 식당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보통이 아님을 행여 짐작이나 했겠는가. 시가지의 풍경이 아닌 웬 시골 풍경 속에 놓여있던 집. 기운이 쫙쫙 빠지고 숨이 턱턱 막히는 고행을 얼마나 했던 것일까.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후 소파에 그녀를 내려놓은 토미는 다른 사람들이 말을 걸 새도 없이 즉각 이렇게 말한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타오르는 갈증에 물 한잔으로 목이라도 축이면 좋겠으나 조금이라도 더 머물렀다간 또 어떤 일이 자신에게 닥쳐올지 모르는 일. 아마도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는 것이 토미에겐 최선의 선택이자 최대의 구원이었으리라.
통통한 핀란드 중년 여인을 업은 일로 초주검이 되었던 토미. 하지만 그 결과는 참으로 달았다. 왜냐하면 그때 그 일 이후로는 이제 시나몬롤까지 공짜로 먹을 수 있었기 때문. 보라! 사치에가 가져온 시나몬롤을 맞이하면서 뿌듯해하는 토미의 저 표정을.
두 번째 캡처에서는 무료 음식 쟁취를 위한 그칠 줄 모르는 토미의 욕망을 엿볼 수 있다. 평소엔 커피를 마시며 자신의 일에만 몰두를 했던 토미가 웬일인지 아까부터 줄곧 세 여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그렇다. 미도리와 마찬가지로 마사코도 머지않아 이 식당에서 함께 일하게 되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던 것이다. 지난날 미도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마사코와도 빨리 친해져야지. 그렇게 친분을 쌓아 시나몬롤을 넘어서는 그 무언가를 역시나 공짜로 먹는 행운을 거머쥐어야지. 그 한 가지 생각에 온 신경을 집중하다 보니 그들이 하고 있는 얘기들이 귀에 쏙쏙 들어오기까지 한다. 다 알아듣는다. 파울로 코엘료 표 기적이 다시 한번 일어난 것일까.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처럼 적절히 끼어들 틈을 노리고 있던 차, 마사코가 이런 말을 한다. "왜 핀란드인은 그렇게 고요하고 평화롭게 보일까." 그 순간 나는 자기 전에 자일리톨 껌을 씹기 때문이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역시 나의 경망스러움과는 대조적으로 먹이를 노리는 토미의 대답은 훨씬 격이 있고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핀란드엔 울창한 숲이 있기 때문이랍니다!"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자신을 돌아보는 세 명의 여자에게 토미는 크세르크세스 풍으로 '나는 관대하거든!'이라는 표정을 쏘아주시고.
이제는 곤니찌와 인사하는 과정도 없다. 마치 처음부터 카모메 식당 속의 한 풍경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자신의 지정석에 앉아 커피와 시나몬롤을 먹고 있는 토미.
이미 커피와 빵을 뱃속에 다 챙긴 토미가 미도리와 종이접기 놀이를 하고 있다. 역시 이 둘은 마음속 깊이 서로 통하는 구석이 있었던 것. 능숙한 솜씨로 개구리를 만들어서는 폴짝! 뜀뛰기 시범까지 보이는 미도리. 토미는 그저 흥분과 감탄으로 주체할 수 없는 심정이 되어 미도리의 두 손을 덥석 잡고 만다. 급습을 당한 미도리. 눈 튀어나오지 않은 게 다행이다. 경기 일으키지 않은 게 다행이다. 하지만 이 장면, 왠지 한없이 따뜻하고 정겹게 보인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공짜라면 끝까지 뽕을 뽑아야 직성이 풀리는 토미. 사치에가 마티(아내와 딸에 관하여 말 못 할 상처를 지닌 중년 남성)에게서 받은 원두로 코피루왁을 만들어오자 거부하지 않고 또 한잔 들이켠다. 지금에 와서는 뭐 그다지 새삼스럽지도 않은 풍경이다.
이젠 하이파이브까지 하는 토미와 미도리. 쿵짝이 잘 맞는다. 오늘은 사치에를 비롯한 미도리, 그리고 마사코에게 기념할 만한 날이다. 식당을 연 이후 드디어 최초로 만원 손님을 이루었기 때문. 아, 그런데 대체 이게 어찌 된 일? 토미가 커피와 시나몬롤이 아닌 정식메뉴로 식사를 하고 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토미, 정녕 너는 무료 음식 탐방기를 거두고 만 것인가. 왜? 왜? 왜? 흥분을 가라앉히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해가 가는 대목이 없지 않다. 오늘은 식당이 손님들로 가득 찬 특별한 날 아니던가. 벼룩도 낯짝이 있지. 아무리 토미라고 한들 어떻게 해서 오늘 같은 날까지 무료로 커피와 빵을 먹으며 식당 한 자리를 꿰차고 있겠는가 말이다. 역시 토미도 인간의 도리로써 마지막 기본 양심은 굳건히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덧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사치에, 미도리, 마사코가 '어서 오세요'란 인사말을 놓고 서로 담소를 나누고 있다. 각자의 말투로 옮겨보자면 이런 식이라고나 할까. 마사코, (정중한 자세로) 어서 오십시오! 미도리, (다소 투박한 어투로) 어서 오쇼! 사치에, (산뜻하게) 어서 오세요! 그러나 단지 이런 식으로 영화가 끝나버리면 겁나게 섭섭해할 사람이 있지 않겠는가. 더구나 이 글의 제목도 '공짜 커피 마시는 핀란드 청년의 출근 일지'임을 상기한다면 말이다.
세 사람이 재미있게 얘기를 하고 있는 와중에 식당 문이 열린다. 한 곳으로 몰리는 시선들. 화면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곤니찌와!" 그렇다. 오늘도 공짜 커피와 빵을 위해 출근 도장 찍는 걸 잊지 않은 토미. 한 핀란드 청년의 경쾌한 인사말로 영화는 끝이 나지만, 과연 그가 무료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하는 의문과 호기심에 관객들은 잠을 설치게 될지도 모른다. 참으로 엄청난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 장면. 정말이지 대단한 영화라 하지 아니할 수 없다.